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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잔향

무통

나는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어제도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는데, 피가 손등을 타고 손목까지 흘러내린 뒤에야 알았다. 베인 자리를 들여다보아도 아프지 않았다. 다만 그 붉은 선이 내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을 뿐이다. 나는 반창고를 붙였고, 반창고가 필요했던 이유를 곧 잊었다.

이것은 병이 아니다. 이 도시에서 통증이 옅다는 것은 몸이 고장 났다는 뜻이 아니라, 삶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모두의 목덜미에는 억제기가 심겨 있다. 작고 둥근, 손끝으로 만지면 매끄러운 그것은 외부의 통증을 막아주는 장치가 아니다. 안쪽에서 새어드는 통증을 막아준다.

두 세대쯤 전, 사람들은 자신이 살지 않은 삶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인 모를 이명으로 왔다. 한밤중에 귓속에서 가느다란 휘파람 같은 소리가 울리거나, 관자놀이가 까닭 없이 욱신거리거나, 어떤 음높이가 머릿속에서 멋대로 길게 늘어졌다. 의사들은 오래 헤매다 마침내 그 소리의 출처를 인정했다. 그것은 몸 바깥에서 오는 소리도, 몸 안의 고장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갈라져 나간 다른 길에서, 다른 선택을 한 또 다른 내가 보내오는 소리였다.

학자들은 그것을 잔향이라 불렀다.

하나의 선택이 내려질 때마다 선택받지 못한 길들이 함께 발생한다. 안전한 직장을 택하면, 그 순간 붓을 든 채 평생 인정받지 못하고 늙어가는 내가 어딘가에서 태어난다. 그 내가 겪는 좌절과 굶주림과 모멸이, 미세한 신경 신호가 되어 이쪽으로 흘러든다. 청의 교육 자료는 그것을 이렇게 정리했다.

잔향은 회피 신호다.
회피 가능한 신호를 줄이는 삶은 더 오래 지속된다.
그러므로 시민의 자유는 잔향을 낮출 때 가장 안정된다.

도시는 그 문장을 충실히 따랐다. 억제기가 보급되었고, 최적화청이 세워졌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고용되었다.

나는 인생 최적화 분석관이다. 시민의 잔향을 측정하고, 그에게 가장 통증이 적은 길을 처방한다. 이직하지 말 것. 그 사람과 결혼하지 말 것. 그 도시로 떠나지 말 것. 내가 내미는 종이에는 늘 비슷한 문장이 적힌다. 평범하고, 안전하고, 되돌릴 필요가 없는 선택들. 사람들은 그 문장을 받아 들고 안도한다. 처방대로 산 사람의 얼굴에서는 통증이 사라진다. 통증과 함께 다른 것도 사라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묻지 않는다. 나도 오래 묻지 않았다.

내 잔향 지수는 청에서 가장 낮다. 거의 영에 가깝다. 나는 내가 처방한 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자부심이었다. 나는 후회가 없는 사람이었다.

처방

그날 오전의 시민은 마흔 줄의 남자였다. 회색 작업복 차림에 손이 거칠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았다.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자세였다.

나는 측정기를 그의 정수리에 씌웠다. 차가운 금속 띠가 두피에 닿자 그가 잠깐 어깨를 떨었다. 화면에 그의 잔향 곡선이 떠올랐다. 대체로 잔잔했다. 한 군데, 가까운 미래에 솟아오를 봉우리가 붉게 깜박였다.

“공방을 차리려 하시는군요.”

나는 곡선을 읽으며 말했다.

그는 놀란 듯 나를 보았다.

“어떻게…….”

“여기 이 봉우리입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가구 공방을 여는 선택. 그 선택을 입력하면 잔향이 이만큼 올라갑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붉은 영역을 짚었다.

“공방이 망하는 길들이 많습니다. 그 길의 당신들이 보내올 신호가 이 수치입니다. 빚, 가족의 원망, 닫힌 셔터 앞에 앉아 있는 밤들. 그 전부가 여기로 옵니다.”

“하지만 잘되는 길도 있지 않습니까. 제 손으로 만든 의자가 누군가의 집에 놓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잘되는 길의 당신은 당신에게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이 대목은 늘 같은 방식으로 말한다.

“성취한 자아는 조용합니다. 잔향은 오직 고통에서만 옵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쪽에서 비명이 들린다면, 그 선택에는 망하는 길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잔향은 정직한 회계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게 될지 미리 청구서로 보여줍니다.”

그는 한참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물었다.

“선생은 어떻습니까. 선생도 그렇게 사십니까.”

“저는 청에서 잔향이 가장 낮습니다.”

그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안도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보였고, 확인한 뒤에는 시선을 거두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그때 제대로 읽지 못했다.

나는 처방을 출력했다.

공방을 열지 말 것.
현 직장에 잔류할 것.

그는 종이를 받아 접었다. 문을 나서기 전 그가 돌아보았다.

“그 의자는, 영원히 안 만들어지는 거군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정해진 문장으로 답했다.

“비용을 치르지 않는 것입니다.”

문이 닫혔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믿어왔다. 만들어지지 않은 의자는 손실이 아니라 절약이라고. 그날 처음으로, 닫힌 문 안쪽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만들어지지 않은 의자의 소리였는지, 내 귀의 착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억제기는 그 소리를 깨끗이 걸러냈다.

임계 초과

경보는 오후에 떴다.

시 외곽의 한 구역에서 잔향 지수가 위험 임계를 넘었다는 신호였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십수 명이 모여 있는 건물에서, 봉우리들이 동시에, 의도적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청은 그런 집단을 알고 있었다. 기록에서는 그들을 비효율 집단이라 부른다. 거리에서는 다르게 불린다. 비명을 사는 사람들.

그들은 억제기를 낮추거나 아예 끈 채로, 일부러 위험한 선택을 감행한다. 망할 것이 거의 확실한 사업을 벌이고, 끝날 것이 분명한 사랑을 시작하고, 도달할 수 없는 작품에 평생을 건다. 그러고는 다른 길의 자신들이 보내오는 비명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나는 그곳에 파견되었다. 임계를 넘은 시민에게는 경고와 재처방을 제시하는 것이 분석관의 의무였다.

건물은 낡은 창고를 개조한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공기가 달라졌다. 청의 복도는 늘 조용하다. 무통의 도시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안은 소리로 가득했다. 누군가 한쪽 구석에서 캔버스에 칼을 그어대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두 사람이 멈추지 않고 언쟁했으며, 바닥에는 부서진 것들이 굴러다녔다.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통증을 견디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일그러짐 위로, 청의 시민들에게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 함께 있었다. 무엇을 강렬히 원하는 자의 표정이었다.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손을 떨고 있었지만 눈은 또렷했다.

“분석관이군.”

그가 말했다.

“수치를 보러 왔겠지.”

“여러분의 잔향이 임계를 넘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신경계가 손상됩니다. 영구적인 통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안다네.”

그는 웃었다.

“우리는 그걸 모르고 이러는 사람들이 아니야.”

그는 칼을 긋던 청년 쪽으로 턱짓했다.

“저 친구는 다른 길에서 자기 그림이 모두 불태워지는 걸 듣고 있어. 매일.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쪽에서 그림을 그리지.”

“손실입니다. 피할 수 있는 고통입니다.”

“피할 수 있지. 안 그리면 돼. 자네가 처방하는 대로 살면 돼.”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 친구는 어느 길에서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이 되네. 모든 길에서 똑같이. 조용하게.”

그는 나를 빤히 보았다.

“자네처럼.”

나는 처방전을 꺼냈다.

“재처방을 권고합니다. 억제기를 정상값으로 복원하시고, 현재의 작업을 중단하시면 지수가 안전 범위로…….”

“그 종이.”

그가 내 말을 끊었다.

“거기 적힌 건 늘 뭘 안 하라는 말뿐이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게. 자네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야. 자네에게 들려줄 비명이 자네 안에 하나도 없어서네. 그게 자네 잘못은 아니지.”

나는 그 건물에서 별다른 성과 없이 나왔다. 보고서에는 권고 거부라고 적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잠들기 전에 목덜미의 억제기를 만져보았다. 매끄러웠다. 안쪽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비명을 듣는 사람

연을 만난 것은 그 건물에서였다. 정확히는, 그 건물을 다시 찾아갔을 때였다.

보고서를 쓰고 사흘 뒤, 나는 까닭을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못한 채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가장 안쪽 방에 있었다. 방음재를 덧댄 작은 방이었고, 악기 대신 종이와 펜이 가득했다. 그녀는 책상에 엎드린 채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오선지였다. 그러나 그 위에 적히는 음표들은 어떤 곡으로도 들리지 않을 배열이었다.

“채보 중이에요.”

그녀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다른 길의 내가 부르는 노래를.”

“노래입니까.”

“비명이죠.”

그녀는 펜을 멈추었다.

“거기서 나는 음악을 했고, 실패했고, 지금쯤 아무도 안 듣는 무대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고 있어요. 그 소리가 여기로 와요. 나는 그걸 받아 적어요. 그러면 적어도 한 곡은 남으니까. 그쪽의 내가 끝내 못 남긴 곡이.”

그녀는 그제야 나를 보았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당신, 청에서 온 사람이죠. 며칠 전에 어르신이랑 얘기하던.”

“분석관입니다.”

“이름을 물었어요.”

“분석관입니다.”

나는 같은 답을 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보다가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건 직책이고요.”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름이 없는 거예요, 아니면 말하기 싫은 거예요.”

나는 답하지 못했다. 등록번호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름이라 부른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불렀는지조차 기억이 흐릿했다. 처방받은 삶에는 호명이 필요한 순간이 별로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특별히 불릴 일을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앉아요.”

그녀가 옆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앉았다.

“당신 같은 사람이 가끔 와요. 처음엔 우릴 고치러. 그다음엔 그냥. 와서 한참 앉아 있다 가죠. 자기도 왜 왔는지 모르고.”

“여러분은 통증으로 신경을 망칩니다.”

나는 가까스로 직무의 언어를 붙들었다.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손상입니다.”

“맞아요. 손상이에요.”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나는 그 순순함에 도리어 할 말을 잃었다.

“우리가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그냥, 조용한 게 더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그녀는 오선지를 들어 보였다.

“이 비명이 들린다는 건, 거기서 내가 뭔가를 미치도록 원했다는 뜻이에요. 원했으니까 실패했고, 실패했으니까 아파요. 만약 내가 아무것도 안 원하면, 아무 소리도 안 나요. 당신처럼.”

그녀는 오선지를 도로 내려놓았다.

“당신 안이 조용한 건 평화로워서가 아니에요. 거기 사는 당신들이 전부, 아무것도 원한 적이 없어서예요.”

나는 그 말을 반박할 문장을 찾지 못했다. 청의 어떤 자료에도 그 반박은 적혀 있지 않았다.

영점

청으로 돌아온 나는 측정실에 혼자 남았다. 시민이 앉던 의자에 내가 앉았다. 측정기의 차가운 띠를 내 정수리에 직접 씌웠다.

화면에 내 잔향 곡선이 떠올랐다.

그것은 거의 직선이었다. 봉우리도 골짜기도 없는, 영점에 바싹 붙은 평평한 선. 나는 그 선을 오래 보았다. 그 선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입사 이래 나는 그 직선을 내 성실함의 증거로, 내 삶이 옳게 설계되었다는 증명으로 보아왔다.

그런데 그날은 다르게 읽혔다.

잔향은 고통에서만 온다. 고통은 무언가를 원했다가 잃은 길에서만 발생한다. 내 곡선이 평평하다는 것은, 갈라져 나간 모든 길의 내가 똑같이 평온하다는 뜻이었다. 어느 길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미치도록 원하지 않았다. 어느 길에서도 나는 실패할 만큼 멀리 가지 않았다. 어느 길에서도 나는, 다른 나에게 들려줄 비명을 만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후회 없는 삶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후회가 없다는 것은, 되돌리고 싶을 만큼 무겁게 선택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청구서가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비용을 치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살지 않은 것이었다.

키르케고르라는 옛 사람의 문장이 청의 금서 목록 어딘가에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결혼하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이다. 나는 오래 그 문장을 어리석은 비관으로 여겼다. 어느 쪽이든 후회한다면, 둘 다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둘 다 하지 않는 자리가 바로 영점이 아닌가. 그 자리에서 나는 일생을 보냈다.

이제 그 문장이 다르게 들렸다.

그 사람은 후회를 피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쪽을 택하든 후회가 따른다는 것은, 선택이란 본래 무언가를 잃는 일이며, 잃을 것이 있는 자만이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후회는 선택의 실패가 아니라 선택의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없는 자는 빛 아래 선 적이 없는 자였다.

나는 측정기를 벗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은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무언가가 시작되려 할 때의 감각이었다.

억제기

그날 이후로 나는 처방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시민들이 의자에 앉으면 나는 곡선을 읽었다. 붉은 봉우리가 솟으면, 예전 같으면 망설임 없이 그 길을 닫는 처방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꾸 머뭇거렸다. 이 봉우리를 닫으면, 이 사람은 또 하나의 영점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다. 내가 그어온 모든 직선을 떠올렸다. 내가 평온하게 만든 모든 얼굴들. 내가 절약시킨 모든 의자들. 그것이 절약이 아니라 소각이었다면, 나는 평생 무엇을 해온 것인가.

국장이 나를 불렀다.

내 처방 처리량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권고 거부 사례를 묵인했다는 기록이 올라간 모양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청의 사람들은 대개 부드럽다. 통증이 없는 사람들은 좀처럼 거칠어지지 않는다.

“피로한 것 같군.”

그가 말했다.

“분석관의 잔향이 흔들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야. 타인의 고통을 종일 들여다보니까. 억제기 출력을 한 단계 올려주겠네. 며칠 쉬고 오게. 다시 조용해질 걸세.”

조용해질 것이다. 그 말이 위로처럼 건네졌다. 나는 청을 나와 집으로 걸었다. 무통의 도시는 저녁에도 조용했다. 사람들은 처방받은 길을 따라 평온하게 귀가하고 있었다. 누구의 얼굴에도 비명이 없었다. 누구의 얼굴에도, 무엇을 원하는 표정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목덜미에 손을 댔다. 억제기는 거기 있었다. 매끄럽고, 둥글고, 평생 나를 조용히 지켜온 것. 그것을 끄는 방법은 분석관이라면 누구나 안다. 우리는 그것을 시민에게 복원시키는 일을 해왔으니까. 끄는 절차는 그 반대였다. 손끝으로 가장자리를 세 번 누르면 된다.

끄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나는 안다.

걸러지던 모든 길이 한꺼번에 열린다. 평생 내가 닫아온 봉우리들이, 내가 가지 않은 길의 내가, 일제히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영점에 묶여 있던 자아가 처음으로 자기가 무엇을 잃었는지 듣게 된다. 그 소리가 한 사람을 부술 수도 있다. 임계를 넘긴 신경은 돌아오지 않는다. 무통이 비겁이라면 잔향은 형벌이었다. 둘 중 어느 것도 가볍지 않았다.

나는 손끝을 억제기 가장자리에 댔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어지럽다고, 그 옛 금서에 적혀 있었다. 어지러운 것은 심연이 그를 떠밀어서가 아니라, 그가 뛰어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그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현기증의 정체를 그제야 알았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였다. 평생 처음으로 내 앞에 진짜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닫힌 채로 평온할 것인가, 열린 채로 아플 것인가. 그리고 이 선택만은, 청도 곡선도 나를 대신해 내려줄 수 없었다.

손끝에 닿은 가장자리는 차가웠다.

한 번 눌렀다.

첫 잔향

두 번째로 누르기 전, 나는 잠시 멈추었다.

연의 방을 떠올렸다. 그녀가 오선지에 받아 적던, 어떤 곡으로도 들리지 않던 음표들. 그쪽의 그녀가 끝내 남기지 못한 한 곡. 그녀는 그것을 남기기 위해 자기 신경을 내어주고 있었다. 나는 평생 단 한 곡도 짓지 않았다. 단 한 채의 의자도 만들지 않았다. 닫힌 문 안쪽에서 들리던 그 작은 소리, 만들어지지 않은 의자의 소리. 그것은 내 귀의 착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억제기가 미처 다 거르지 못한, 내가 살지 않은 삶의 첫 음절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두 번째로 눌렀다.

그리고 세 번째 손끝이 가장자리에 닿았다. 누르면 끝이었다. 누르면 시작이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름 없는 얼굴이었다. 누구에게도 특별히 불릴 일을 하지 않으며 살아온 얼굴. 나는 그 얼굴에게 처음으로 묻고 싶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무엇을 잃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그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닫아온 모든 길의 비명을. 내 것이었으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들의 합창을.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거울 너머 도시는 여전히 조용했다. 처방받은 사람들이 평온하게 잠드는 밤이었다. 그 고요 속에서, 한 사람의 목덜미에서, 무언가가 막 열리려 하고 있었다.

귓속 깊은 곳에서, 아주 먼 길로부터, 가느다란 음 하나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어 읽기

  • 우연을 닫는 기술 — 우연을 위험으로 번역하고 가능성을 미리 닫는 예측 통치의 계보를 이 소설의 제도적 배경으로 읽을 수 있다.
  • 고통의 서사화와 최적화 함수의 대조 — 손실을 최소화하는 최적화와 목적 함수 자체를 다시 쓰는 인간의 서사적 갱신을 개념적으로 비교한다.
  • 후회에 대하여 — 후회를 선택의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 남기는 그림자로 읽는 이 소설의 핵심 전환을 이론적으로 받친다.
  • 유한성과 자유 — 자유가 가능성의 총량이 아니라 유한한 선택을 자기 행위로 받아들이는 구조임을 논증한다.
  • 라플라스의 개인 비서 — 예측된 경로를 그대로 사는 삶을 다룬 자매편 SF로, 결정론과 최적화가 만나는 지점을 나란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