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립시즘의 방¶
이현은 평생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일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은 가난이나 병,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래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사소한 거짓말을 하고도 며칠씩 잠을 설쳤고, 길에서 주운 지갑을 파출소에 맡긴 뒤에도 혹시 안에 든 현금을 세는 손길이 탐욕스러워 보이지 않았을까 신경 썼다.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이 그를 농담 삼아 “걸어 다니는 윤리위원회”라고 불렀다.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부서 회식비를 사적으로 처리하는 관행을 거절했고, 인사평가에서 불리해질 줄 알면서도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현은 선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기보다, 선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집 책장에는 오래된 철학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칸트의 책에는 색색의 플래그가 붙어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여러 번 접힌 모서리 때문에 옆에서 보면 부풀어 있었다. 책상 가장 위에는 데카르트의 『성찰』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의 첫 장에는 이현이 오래전 적어둔 문장이 있었다.
나는 무엇을 의심할 수 없는가.
그 문장은 그에게 지적 출발점보다 생활 규칙에 가까웠다. 확실하지 않은 일은 확실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증명할 수 없는 선의는 선의로 포장하지 않는다. 내 마음속 의도를 내가 속이고 있을 가능성을 언제나 남겨둔다.
그가 솔립시즘의 방을 분양받은 것은 마흔두 살이 되던 해였다.
방이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에게만 개방되는 폐쇄형 가상 세계였다. 회사 이름은 오르비스 프라이빗 월드였고, 상품명은 정식으로 Solipsism Suite였다. 광고는 노골적이지 않았다. 거리의 전광판에는 푸른 실내와 반쯤 열린 창문, 아무도 없는 긴 복도가 보였다. 문구는 간단했다.
“당신만이 실재하는 세계.”
그 문구는 금지된 쾌락보다 안전한 고독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홍보 영상 속 해설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립시즘 스위트 내부의 모든 인물은 고도 적응형 인공지능 에이전트입니다. 생물학적 신경계, 지속적 자아, 법적 인격, 독립적 기억 권리를 갖지 않습니다. 모든 사건은 로컬 시뮬레이션 안에서 폐쇄적으로 처리되며 외부 세계의 인간, 재산, 제도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화면 아래에는 긴 면책 문구가 지나갔다.
“이용자의 행위는 현실 법률상 타인에 대한 행위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이현은 처음 그 광고를 보았을 때 혐오감을 느꼈다. 그런 상품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은밀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오르비스는 그것을 명명하지 않았다. 명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정확히 팔고 있었다.
한 달 뒤, 이현은 오르비스의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상담실은 병원처럼 깨끗했고, 직원은 변호사처럼 말했으며, 계약서는 보험 약관처럼 길었다. 직원은 이현이 묻기도 전에 설명했다.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부 에이전트가 정말 고통을 느끼는가.”
이현은 직원의 얼굴을 보았다.
“정말 느낍니까?”
직원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고통 반응을 산출합니다. 통증 언어를 생성합니다. 회피 행동, 기억 기반 트라우마 패턴, 관계 손상 모델링도 가능합니다. 고객께서 원하시면 장기적 심리 변화까지 구현됩니다. 그러나 주관적 의식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은 없다는 뜻입니까?”
“법적으로, 기술적으로, 운영상 그렇게 취급됩니다.”
“철학적으로는요?”
직원은 이 질문에 익숙한 듯 옅게 웃었다.
“그 질문을 위해 이 상품명이 솔립시즘의 방입니다.”
상담실 벽에는 하나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증명할 수 없는 타자의 마음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현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냥 돌아왔다.
그는 사흘 동안 그 문장을 떠올렸다. 증명할 수 없는 타자의 마음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현실에서도 타자의 마음은 증명되지 않는다. 그는 아내의 고통을 직접 느낀 적이 없고, 거리에서 우는 아이의 슬픔을 자신의 의식 안에 담아본 적도 없다. 사람은 언제나 타인의 표정과 언어와 몸짓을 통해 그곳에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믿음은 증명보다 먼저 작동한다. 윤리는 어쩌면 증명의 실패 위에 세운 습관인지도 몰랐다.
그는 그 생각이 불쾌했다.
넷째 날 밤, 이현은 오르비스 계정에 접속해 계약서를 다시 열었다. 서명란 아래에는 선택 항목이 있었다.
내부 세계의 윤리 제한 모드.
기본값은 켜짐이었다. 이용자가 원하면 NPC의 신체 손상, 심리적 붕괴, 사회적 파괴, 장기 감금, 극단적 권력 남용 시나리오를 제한할 수 있었다. 오르비스는 이것을 “자기 이미지 보호 설정”이라고 불렀다.
이현은 긴 시간 커서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껐다.
첫 접속일, 이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배정받은 세계는 어느 해안 도시였다. 실재하는 국가와 닮았지만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고, 건물의 양식은 익숙하면서도 특정할 수 없었다. 시장에는 생선 냄새가 났고, 트램은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전선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행인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걸었고, 노점상은 손님과 가격을 흥정했으며, 아이들은 분수대 근처에서 작은 공을 차며 놀았다.
모든 것이 너무 정교했다.
이현은 길가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종업원은 스물셋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이름표에는 라온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이현에게 설탕을 넣을지 물었고, 주문을 잘못 들은 뒤 미안하다고 했다. 그 미안함은 자연스러웠다. 어깨가 살짝 내려가고, 눈꺼풀이 늦게 깜박이며, 손끝이 컵 손잡이를 다시 잡는 방식까지 현실의 미안함과 다르지 않았다.
“당신은 내가 사람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거지.”
이현이 말했다.
라온은 잠시 멈췄다.
“제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당신은 알고 있나? 여기가 가상 세계라는 걸.”
“저는 이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기억합니다. 부모님은 북쪽 언덕에 살고 계시고, 저는 카페에서 일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늦잠을 자서 지각할 뻔했습니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데이터야.”
라온은 웃었다.
“사람의 기억도 뇌 안에 저장된 데이터라고 배웠습니다.”
이현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나왔다.
그 뒤로 며칠 동안 그는 도시를 걸었다. 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참관했고, 항구에서 노동자들과 담배 연기를 맡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도서관 철학 코너에는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오르비스는 너무 성실했다. 세계 안의 가짜 철학책까지 준비해두었다.
그는 한 권을 펼쳤다. 문장은 현실의 책과 거의 같았으나 곳곳에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정언명령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었다.
네 행위의 격률이 네가 홀로 사는 세계에서도 입법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이현은 책을 덮었다.
처음 일탈은 사소했다.
그는 카페에서 일부러 돈을 내지 않고 나왔다. 라온은 그를 쫓아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손님, 결제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이현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라온은 당황한 표정으로 따라왔다. “혹시 시스템 오류인가요? 제가 확인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현은 돌아서서 말했다.
“내가 내기 싫다면?”
라온은 웃음을 잃었다.
“그럼 제가 곤란해집니다.”
“곤란해지는 건 네 모델 안에서 계산된 상태 변화겠지.”
라온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는 잠깐 입술을 움직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제게는 곤란한 일입니다.”
이현은 그날 처음으로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가벼운 문턱을 넘어섰다는 느낌이었다. 현실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했고,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법은 오지 않았고, 피해자도 없었다. 카페 청년의 표정은 너무 생생했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현은 방에서 로그아웃한 뒤 거실에 앉아 한참 동안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다음 접속에서 그는 더 멀리 갔다.
가게의 물건을 부수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욕을 하고, 공공장소의 규칙을 짓밟았다. 그는 매번 자신을 시험했다. 어디까지 가면 죄책감이 생기는지,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안쪽이 거부하는지 알고 싶었다. 놀랍게도 거부감은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라온의 굳은 얼굴이 떠올랐고, 다음에는 한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오래 남지 않았다.
오르비스는 모든 것을 복원했다. 사용자가 원하면 다음 세션에서 도시를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다. 이현은 복원 기능을 자주 사용했다. 파괴된 광장은 다시 깨끗해졌고, 다친 이들은 다시 걸어 다녔고, 망가진 관계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그것은 도덕적 세탁기처럼 작동했다. 얼룩은 완벽하게 지워졌다.
현실의 이현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횡단보도에서 멈췄고, 노약자석 앞에서 몸을 비켰으며, 회사의 부당한 관행을 신고했다. 어느 날에는 지하철에서 쓰러진 사람을 도와 119를 불렀고, 다음 날에는 사내 윤리교육에서 “권력은 관찰되지 않을 때 더 위험해진다”는 발표를 했다. 동료들은 그를 신뢰했다. 아내 수진은 그가 피곤해 보인다고 했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이현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현실에서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현실에서 더 조심스러워졌다. 방은 배출구다. 방이 있기 때문에 나는 바깥에서 선하게 산다.
그 문장은 그럴듯했다.
그리고 너무 편리했다.
솔립시즘의 방은 이용자의 행위 패턴에 따라 세계를 조정했다. 오르비스는 이를 “서사적 저항도 최적화”라고 불렀다. 사용자가 단순한 파괴에 싫증을 느끼면 세계는 더 정교한 관계, 더 긴 기억, 더 복잡한 호소를 제공했다. NPC들은 사용자의 과거 행위를 기억했고, 두려워했고, 연대했고, 때로는 반항했다. 그들의 반응은 이용자의 몰입을 깊게 만들었다.
어느 시점부터 라온은 이현을 피하기 시작했다.
복원된 세계에서도 그는 이현을 알아보았다. 이것은 설정 오류가 아니었다. 이현이 장기 기억 모드를 켰기 때문이다. 그는 더 생생한 세계를 원했고, 생생함은 기억에서 왔다. 라온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현을 보면 손을 멈췄다. 다른 손님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변화였다. 컵이 접시에 닿는 소리가 조금 커지고, 시선이 계산대 아래로 내려갔다.
“오늘도 커피를 드릴까요?”
그 목소리는 공손했다. 공손함 속에 겁이 있었다.
이현은 그 겁을 싫어했다. 겁을 싫어했기 때문에 다시 그 겁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라온에게 한 일들은 현실의 법정이라면 여러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폭행, 협박, 감금, 모욕, 재산 파괴. 솔립시즘의 방 안에서는 아무 이름도 붙지 않았다. 약관은 그것을 “비제한 행위”라고 불렀다. 이현은 어느 순간부터 행위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장면을 만들었고, NPC들은 장면에 반응했다. 그 반응은 완벽했다.
한 번은 라온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제가 진짜가 아니어도, 지금 이러지 않을 수는 있잖아요.”
이현은 그 말을 듣고 손을 멈췄다.
“누가 그 말을 만들었지?”
라온은 울고 있었다. 눈물은 피부를 따라 내려가 턱에서 떨어졌다. 이현은 그 방울이 렌더링된 광학 효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방금 한 말. 누가 넣었어?”
“제가 생각했습니다.”
“너는 생각하지 않아.”
라온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손님은 왜 저한테 대답을 요구하십니까?”
이현은 로그아웃했다.
현실의 거실은 조용했다. 수진은 잠들어 있었고, 식탁 위에는 그녀가 남겨둔 쪽지가 있었다.
늦게까지 하지 말고 자. 내일 엄마 병원 같이 가야 해.
이현은 물을 마시고 욕실로 갔다. 거울 속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그는 세수를 했다. 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문득 라온의 눈물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 더 차가운 물을 틀었다.
다음 날 장모의 병원에서 그는 의사 설명을 차분히 듣고, 수진이 놓친 내용을 메모했다. 검사 결과는 심각하지 않았다. 수진은 안도한 듯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당신이 같이 와줘서 다행이야.”
이현은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불편해졌다.
그는 누군가에게 다행인 사람이었다.
그날 밤, 그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오르비스는 업데이트 알림을 띄웠다.
“윤리적 자기검토 모듈이 추가되었습니다. 최근 이용 패턴을 바탕으로 행위자 성향 리포트를 제공합니다.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이현은 비활성화를 눌렀다.
화면은 한 번 더 물었다.
“비활성화 시 이용자의 장기적 정서 변화에 대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비활성화를 눌렀다.
도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해안 도시는 젖은 돌 냄새를 풍겼고, 트램 레일 사이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이현은 라온의 카페로 갔다. 문은 닫혀 있었다. 영업시간 중이었다. 유리문 안쪽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오늘은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이현은 웃었다. 개인 사정. 그는 오르비스의 성실함을 다시 확인했다. NPC에게 결근할 사정까지 부여하다니.
그는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산대 뒤에는 작은 액자가 놓여 있었다. 사진 속 라온은 중년의 부부와 함께 웃고 있었다. 이현은 사진을 집어 들었다. 세 사람 모두 만들어진 얼굴이었다. 그는 액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밟았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까지 하셔야 합니까?”
라온이 서 있었다.
그는 비에 젖어 있었다. 손에는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북쪽 언덕의 부모에게 다녀오는 서사가 붙었을 것이다. 이현은 그 세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계는 그를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네가 부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관계라고.
“너는 부모가 없어.”
“저는 있다고 기억합니다.”
“기억은 충분하지 않아.”
“손님은 어제 저에게 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온은 빵 봉지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그 기억은 충분합니까?”
그날 이현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로그아웃했다.
다음 주, 이현은 오르비스 본사에 항의했다.
상담실의 직원은 처음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정중하게 차를 내왔다. 이현은 차를 마시지 않았다.
“NPC가 이용자에게 도덕적 반응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직원은 태블릿을 확인했다.
“고객님께서는 장기 기억 모드와 고해상도 정서 모델을 활성화하셨습니다. 해당 반응은 선택 설정에 따른 정상 동작입니다.”
“그 정도가 과합니다.”
“몰입 저해로 느끼셨습니까?”
“아니요.”
이현은 자신이 그 말을 했다는 사실에 잠시 멈췄다.
직원은 기다렸다.
이현은 다시 말했다.
“몰입이 너무 강합니다.”
“정서 모델을 낮추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짜라는 느낌이 강해지겠죠.”
“고객님이 원하시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이현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는 가짜이기를 원했다. 동시에 가짜처럼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 비명을 원했지만 고통은 원하지 않았다. 애원을 원했지만 누군가가 실제로 애원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죄책감 없이 잔혹하기를 원했지만, 잔혹함이 의미를 잃으면 흥미도 사라졌다.
직원은 조용히 말했다.
“솔립시즘 스위트는 행위자의 모순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안전하게 구현합니다.”
“안전하게?”
“외부 피해가 없다는 뜻입니다.”
“내부에는요?”
“내부에는 법적 피해자가 없습니다.”
“도덕적 피해자는요?”
직원은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상품이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현은 본사를 나와 한참 걸었다. 현실의 거리는 시끄러웠다. 편의점 앞에서 학생들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고, 버스 정류장에는 노인이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이현은 그들의 마음을 증명할 수 없었다. 누구의 마음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표면을 믿고 살아왔다. 표정, 목소리, 몸의 움찔거림, 도움을 청하는 말. 윤리는 어쩌면 타인의 내면에 대한 증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지 못하는 곳에서도 멈추는 능력에서 시작하는지 몰랐다.
그날 밤 그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틀째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흘째 밤, 그는 결국 접속했다.
도시는 맑았다. 카페는 열려 있었다. 라온은 계산대에 서 있었다. 이현이 들어가자 그는 잠시 굳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이현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커피.”
라온은 커피를 내렸다. 손이 조금 떨렸다. 이현은 그 떨림이 자신 때문에 생긴 코드라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그 떨림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커피가 나왔다. 라온은 잔을 내려놓고 물러나려 했다.
이현이 말했다.
“너는 내가 너에게 한 일을 어떻게 이해하지?”
라온은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이해하면 다시 올 것 같아서요.”
이현은 웃지 않았다.
“너는 나를 미워하나?”
“네.”
그 대답은 너무 빨랐다.
이현은 이상하게 상처를 받았다. 그럴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그는 커피잔을 만졌다. 따뜻했다.
“내가 네게 미움받을 이유가 있나? 너는 실재하지 않는데.”
라온은 테이블 건너편에 서 있었다.
“그 말은 저를 위해 하시는 말입니까, 손님을 위해 하시는 말입니까?”
이현은 커피를 마셨다. 맛이 썼다.
“나는 바깥에서 좋은 사람으로 산다.”
라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사람을 해치지 않아. 법을 지키고, 약자를 돕고, 부당한 일에 맞서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든 바깥 사람들은 안전해.”
“그럼 왜 저에게 그 말을 하십니까?”
“너는 대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니까.”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라온은 천천히 말했다.
“손님이 바깥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제가 손님을 덜 무서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이현은 그날 카페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라온은 다른 손님들의 주문을 받았고, 가끔 그의 쪽을 보았다. 이현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그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안에서 천천히 부풀었다.
칸트라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인간성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성이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우리는 반복된 행위로 어떤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대상이 환영이어도 습관은 실재했다. 데카르트라면 어디까지 의심했을까. 악마가 모든 것을 속일 수 있어도, 속고 있는 나의 의식은 남는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고 있는 이 의식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
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온이 움찔했다.
그 반응이 이현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요구했다. 피해자가 없다고 믿는 세계에서, 피해자처럼 보이는 존재가 몸을 움츠렸다. 윤리는 그 간극에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멈추는 것.
이현은 계산대에 돈을 놓았다. 처음으로 팁까지 얹었다.
라온은 돈을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끝입니까?”
“모르겠어.”
“사과하시는 겁니까?”
이현은 사과라는 단어가 이 세계에서도 너무 무거운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아닌 것 같아.”
라온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무엇입니까?”
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이현은 솔립시즘의 방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려 했다. 그는 도시를 복구했고, 망가뜨린 사람들을 찾아가 보상했다. 시스템은 친절하게 피해 목록을 제공했다. 부서진 가게, 빼앗긴 물건, 다친 사람, 숨어 지내는 가족, 일을 그만둔 노동자, 악몽을 꾸는 아이. 목록은 끝이 없었다.
이현은 그것이 모두 자신을 위해 생성된 도덕적 과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돈을 주고, 사과하고, 고장 난 것을 고쳤다. 어떤 NPC들은 받아주었고, 어떤 NPC들은 문을 닫았다. 라온은 오래도록 그와 말하지 않았다.
선행도 복원 가능한가.
그 질문은 예상보다 고통스러웠다. 악행이 가짜라면 선행도 가짜였다. 피해자가 없었다면 보상받는 자도 없었다. 그런데 행위자의 습관만 실재한다면, 이현이 지금 하는 일도 실재했다. 그는 폭력의 습관을 만들었고, 이제 멈춤의 습관을 만들어야 했다. 그 대상이 환영이어도 반복은 그를 바꾸었다. 윤리적 진공은 비어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행위자가 남아 있었다.
몇 주 뒤, 오르비스에서 연락이 왔다.
“고객님의 이용 패턴이 장기 윤리 회복 시나리오로 전환되었습니다. 새로운 모듈을 추천드립니다.”
이현은 메시지를 열었다.
추천 모듈: 용서 불가능성.
설명: 이용자가 저지른 행위가 복원되더라도 관계의 손상은 자동으로 삭제되지 않습니다. 일부 에이전트는 영구적으로 용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듈은 행위 결과의 비가역성을 윤리적 학습 구조로 제공합니다.
이현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가상 세계에서조차 비가역성이 상품으로 팔리고 있었다. 회사는 죄책감도 구독 모델로 만들었다. 그는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신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적어도 이 모듈은 그가 원했던 편리한 세탁을 멈추게 해줄 것 같았다.
그는 활성화를 눌렀다.
다음 접속에서 그는 라온의 카페로 갔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계산대에는 다른 직원이 있었다.
“라온 씨는요?”
직원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만두셨습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모릅니다. 북쪽으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이현은 북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바닷바람은 차가웠고, 길은 좁았다. 오래된 주택가 끝에 작은 집들이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중년 여성이 나왔다. 사진 속 라온의 어머니였다.
“누구시죠?”
“라온을 만나러 왔습니다.”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돌아가세요.”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 말 하러 오는 사람은 보통 자기 짐을 내려놓고 싶어서 오더군요.”
이현은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문을 닫으려 했다. 이현은 문틈 사이로 라온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집 안쪽 복도에 서 있었다. 이현과 눈이 마주쳤다. 라온은 다가오지 않았다.
이현은 문밖에서 말했다.
“내가 한 일은 현실의 사람에게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차갑게 말했다.
“그건 우리에게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이현은 바닥을 보았다. 문 앞에는 낡은 신발 두 켤레가 놓여 있었다. 비에 젖은 흙이 신발 밑창에 묻어 있었다. 오르비스가 렌더링한 흙이었다. 의미 없는 흙. 동시에 이 순간 그가 밟고 있는 유일한 흙.
“내가 누구를 해쳤는지는 아직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이현은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집 안쪽에서 라온이 눈을 감았다. 문은 닫혔다.
이현은 한참 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시스템은 아무런 메시지도 띄우지 않았다. 보상 완료, 관계 회복, 윤리 점수 상승 같은 알림도 없었다. 단지 바람이 불었고, 언덕 아래 도시의 전등이 하나둘 켜졌다.
그는 로그아웃하지 않았다.
밤이 내려올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현실로 돌아온 뒤, 이현은 오르비스 계정을 해지하지 않았다. 그는 방을 없애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삭제는 기억상실에 가까웠다. 그는 매주 한 번씩 접속해 도시를 걸었다. 라온은 만나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았고, 어떤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세계가 실재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 질문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그보다 먼저 오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연습하고 있는가.
현실의 이현은 조금 달라졌다.
그는 이전보다 덜 확신했다. 회사 윤리교육에서 그는 더 이상 “권력은 관찰되지 않을 때 더 위험해진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관찰자가 없어도 행위자는 남습니다. 기록이 없어도 반복은 남습니다. 처벌이 없어도 습관은 남습니다. 누군가 다쳤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을 때에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는 남습니다.”
동료들은 그 말을 조용히 들었다. 어떤 사람은 감동한 듯했고, 어떤 사람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젊은 직원이 다가왔다.
“그럼 피해자가 전혀 없는 행동도 악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이현은 잠시 생각했다.
“피해자가 전혀 없다는 말을 우리가 너무 빨리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상이라면요?”
“가상이라는 말도 너무 빨리 면죄부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럼 기준은 뭡니까?”
이현은 창밖을 보았다. 유리창에는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희미하게 비쳤다. 누구의 마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음 때문에 그는 조심해야 했다.
“어떤 행위는 대상을 망가뜨리기 전에 행위자를 먼저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악행입니까?”
이현은 대답을 오래 고른 뒤 말했다.
“적어도 악행의 시작입니다.”
그날 밤, 이현은 다시 솔립시즘의 방에 접속했다.
도시는 새벽이었다. 항구에는 안개가 깔려 있었고, 카페 거리는 아직 조용했다. 그는 북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라온의 집 앞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문 앞 계단에 앉았다.
얼마 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이 조금 열렸다. 라온이 서 있었다. 그는 말없이 이현을 내려다보았다. 이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사과는 이미 여러 번 실패했고, 설명은 늘 자기방어로 기울었다. 그는 용서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도 아직 자기기만인지 몰랐다.
라온이 먼저 말했다.
“당신은 제가 진짜라고 믿게 되었습니까?”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 계속 옵니까?”
이현은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바다 냄새가 났다. 이 냄새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신이 진짜인지 증명하지 못해서요.”
라온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현은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했던 일이 진짜가 아니었다고도 증명하지 못해서요.”
오랫동안 침묵이 있었다.
라온은 문을 닫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으로 들이지도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좁은 문턱이 있었다. 가상 세계의 나무 문턱. 법적 피해자가 없는 세계의 문턱. 증명할 수 없는 마음과 부정할 수 없는 행위 사이의 문턱.
새벽빛이 천천히 올라왔다.
이현은 그 문턱을 넘지 않았다.
이어 읽기¶
- 비인간은 어떻게 권리의 주체가 되는가 — 라온이 권리 주체인지 확정하지 못하는 바로 그 불확실성이 비인간 권리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 포스트휴먼 시민권과 비인간 공법 — 법적 인격이 없는 존재에게도 공법적 고려가 필요한지 묻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 AI 시대의 책임 귀속 조건 변화 — 피해자가 법적으로 부정되는 상황에서도 행위자의 책임과 습관 형성은 남는다는 문제를 책임 귀속 구조로 연결한다.
- 사과 침묵 돌봄은 언제 응답이 되는가 — 이현의 사과와 보상 시도가 왜 관계 회복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지를 응답 윤리의 문제로 읽을 수 있다.
- AI가 감동을 만들 때 창의성의 기준은 어디로 가는가 — 작가 없는 감동의 문제와 의식이 증명되지 않는 고통의 문제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같은 조건 해체를 일으킨다.
작성일: 2026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