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의 외주화와 형벌의 소멸¶
선고¶
법정에는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
도윤은 피고석에 앉아 손등의 정맥을 보고 있었다. 손은 오래 씻은 뒤처럼 건조했다. 손톱 아래에는 흰 반달이 작게 떠 있었고, 오른손 검지 끝에는 작은 상처가 있었다. 유치장 세면대의 금속 가장자리에 긁힌 자국이었다. 피가 조금 났지만, 그는 그 상처를 보고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면 벽에는 판사석이 없었다. 예전 법정의 흔적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높은 나무 의자 하나가 남아 있었으나, 그 위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의자의 등받이는 자주 닦여 광이 났다. 그 아래에 얇은 검은 패널이 놓여 있었다. 패널 한가운데에 흰 글자가 떠 있었다.
DIKE-CRIMINAL JUSTICE COORDINATION SYSTEM
그 아래에는 사건번호, 피고인 성명, 피해자 보호번호, 공개 제한 등급, 심리 완료율이 차례로 표시되었다. 방청석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기자석은 비어 있었고, 유족석도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족은 별도의 회복지원실에서 동시 송출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선택 여부는 비공개였다.
검사석과 변호인석도 비어 있었다. 변론과 반박은 이미 절차 안에서 끝났다. 현장 영상, 생체 반응, 사건 전후 통화 기록, 피해자의 의료 기록, 도윤의 충동 조절 이력, 당시 기온과 조도, 지하철 계단의 난간 높이, 신고 지연 4분 18초의 손상 증가율까지 모두 디케에 입력되었다.
사건은 복잡하지 않았다.
도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서우를 밀쳤다. 말다툼은 짧았다. 그는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친 일과, 회사에서 받은 감점 통보와,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누군가 쳤다는 사소한 사실을 한꺼번에 붙잡고 있었다. 서우가 먼저 욕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었고, 서우는 계단 아래로 굴렀다. 목뼈와 어깨, 왼쪽 손목, 균형 감각을 잃었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서우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길은 계산상 38퍼센트 이하로 표시되었다.
도윤은 그날 바로 신고하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안 그는 개찰구 옆 기둥에 기대 서 있었다. 누군가 119를 눌렀다. 누군가 서우의 팔을 만지지 말라고 소리쳤다. 도윤은 자기 손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 손바닥이 방금 무엇을 했는지 알면서도, 아직 자기 손처럼 보이지 않았다.
검은 패널에서 짧은 알림음이 났다.
판정 산출 완료.
법정의 조명이 미세하게 낮아졌다. 도윤은 앞쪽을 보았다.
피고 이도윤. 상해죄 및 구조 회피에 따른 손상 확대 책임 인정.
그 다음 문장들은 화면 아래에서 일정한 속도로 흘렀다.
징역 3개월.
개인 탄소 배출권 18개월간 31.6퍼센트 삭감.
노동 기여 포인트 1,820점 환수.
피해자 회복 계좌 자동 배정.
감정 재발 방지 세션 12회.
피해자 직접 접촉 제한 7년.
사회적 위험 지수 재평가 주기 90일.
판결문은 계속 이어졌다. 피해자의 손상 정도, 회복 가능성, 도윤의 재범 확률, 기존 전과 없음, 신고 지연의 귀속 비율, 격리 기간의 사회적 비용, 장기 수감 시 노동 손실, 피해자 측 회복 패키지의 예상 효율, 도윤에게 과도한 응보형 고통을 부과할 때 생기는 교정 역효과가 정리되어 있었다.
모든 문장은 정확했다. 어느 문장도 도윤을 모욕하지 않았다. 어느 문장도 피해자를 사건의 장식으로 만들지 않았다. 피해자는 이름 대신 보호번호로 처리되었고, 손상은 세부 항목으로 분리되었으며, 회복 지원은 즉시 시작되었다. 도윤의 어머니가 받을 가족 안내문까지 자동 생성되었다.
방청석 한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기침했다. 그 소리가 도윤에게는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그는 선고가 끝났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자신에게 무엇이 부과되었는지도 이해했다. 그런데 법정 안에는 그가 기다렸던 장면이 없었다. 누군가 일어나 그를 향해 소리치는 장면. 피해자의 가족이 무너지는 장면. 판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그가 저지른 일을 인간의 말로 다시 읽어 주는 장면. 그런 것은 오지 않았다.
디케는 효율적으로 사건을 닫았다.
도윤은 입술을 벌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형이 너무 가볍다는 말은 이상했다. 더 무겁게 해 달라는 말은 절차에 맞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피해자에게 직접 송달될 수 없었다. 용서를 구한다는 말은 회복지원팀의 심리 부담 평가를 통과해야 했다.
그는 결국 입을 닫았다.
퇴정 안내음이 울렸다. 교정관이 다가와 손목밴드를 채웠다. 밴드는 차갑지 않았다. 피부 온도에 맞춰진 재질이었다. 도윤은 그 친절한 온도 때문에 잠깐 속이 메스꺼워졌다.
잔여 형기¶
교정형 생활센터는 감옥보다 병원에 가까웠다.
창문은 쇠창살 대신 투명한 제한막으로 봉해져 있었다. 외부 공기의 미세먼지 농도와 실내 조도, 입실자의 수면 지수가 벽면에 표시되었다. 침대는 낮고 단단했으며,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었다. 세면대에는 물 온도 제한이 걸려 있었다. 복도에는 비상벨이 많았다. 식사는 개인 대사량과 교정 프로그램에 맞춰 제공되었다.
도윤의 방 문은 잠기지 않았다. 일정 구역을 넘으면 손목밴드가 부드럽게 진동했다. 두 번 넘으면 복도 안내등이 켜졌고, 세 번 넘으면 교정관이 왔다. 교정관은 화를 내지 않았다. 위반 기록을 읽고, 위치를 조정하고, 다음 세션 시간을 알려 주었다.
첫날 밤 도윤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판결문 요약본을 펼쳤다. 요약본은 열두 쪽이었다. 일반 시민용 판결문은 세 쪽, 당사자용 판결문은 열두 쪽, 전문가 검토용 판결문은 이백칠십 쪽이었다. 도윤은 열두 쪽짜리만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응보성 고통 부과의 한계효용은 낮음.
그 문장 아래에는 작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피고인의 책임 귀속은 인정되나, 고통 강도의 증가는 피해 회복률과 재범률 개선에 유의미한 영향을 보이지 않음.
그는 손가락으로 문장을 눌렀다. 종이는 없었다. 화면은 손끝의 열을 감지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도윤은 다시 뒤로 갔다. 같은 문장을 읽었다. 책임 귀속은 인정되나. 고통 강도의 증가는. 유의미한 영향을 보이지 않음.
아침에는 감정 재발 방지 세션이 있었다.
상담실 벽에는 낡은 종이책 한 권이 투명 케이스 안에 놓여 있었다. 제목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법철학 교재 같았다. 책갈피가 꽂힌 쪽에는 누군가 손글씨로 줄을 그어 둔 문장이 있었다.
“형벌은 인간을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기 위해, 인간을 행위의 주인으로 세우는 형식이어야 한다.”
도윤은 그 문장을 한참 보았다. 상담사 백해린은 그의 시선이 어디로 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말했다.
“예전 교정관들이 좋아하던 문장입니다. 지금은 역사 자료에 가깝습니다.”
“틀린 말입니까.”
“쓸모가 줄었습니다.”
해린은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도윤에게 친절했고, 피해자 보호 원칙을 여러 번 설명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참회를 받을 의무가 없고, 사죄는 회복을 돕는 경우에만 조정될 수 있으며, 가해자의 감정 해소를 위해 피해자를 다시 사건 안으로 호출하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들이 맞다고 느꼈다. 맞는 말들이어서 더 견딜 수 없었다.
“저는 아무것도 받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해린이 기록창을 열었다.
“무엇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벌이요.”
“현재 형기 이행 중입니다.”
“여긴 벌 같지 않습니다.”
“고통이 낮게 설계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고통이 낮다고 형벌 기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격리, 제한, 비용 환수, 재발 방지, 피해 회복 기여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도윤은 상담실 의자 팔걸이에 난 작은 흠집을 보았다. 네 줄이었다. 누군가 손톱으로 긁은 것 같았다. 그는 그 줄을 세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한 일을 누가 저한테 돌려줘야 할 것 같습니다.”
“판결문이 그 기능을 합니다.”
“판결문은 제가 한 일을 다 쪼개서 가져갑니다.”
해린이 그를 보았다.
도윤은 말을 고르지 못했다. 사건은 손상 항목으로, 신고 지연은 귀속 비율로, 그의 분노는 재발 위험으로, 피해자의 삶은 회복 비용으로 나뉘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자기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센터의 생활은 규칙적이었다. 오전에는 노동 기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공공 데이터의 오류 태그를 분류했다. 오후에는 충동 발생 전조를 기록했다. 밤에는 피해자 중심 정의와 접촉 제한 윤리 교육을 들었다.
교육 영상에는 피해자가 나왔다. 실제 피해자는 아니었다. 여러 사건을 합성해 만든 보호 모델이었다. 모델은 말했다. “가해자의 사죄 요구는 때때로 피해자의 두 번째 노동이 됩니다.” 도윤은 그 문장을 필사했다. 그리고 다음 줄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무엇을 더 요구하고 있는가.
그는 이 문장을 오래 바라보다가 지웠다. 기록 시스템에는 삭제 흔적이 남았다.
접촉 금지¶
석방 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도윤은 피해자 보호번호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센터 내부 단말기는 즉시 멈췄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안내문이 떴다.
접근 제한 대상입니다.
해당 검색은 피해자 정보 추적 시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상담 세션을 예약하시겠습니까?
도윤은 취소를 눌렀다. 손목밴드가 한 번 진동했다.
그날 오후 해린이 그를 불렀다.
“검색 기록이 감지됐습니다.”
“이름을 찾으려던 게 아닙니다.”
“보호번호를 입력했습니다.”
“제가 외운 것도 이상합니까.”
“외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도윤은 입 안쪽을 깨물었다. 피 맛이 조금 났다. 해린은 물을 권했다. 그는 컵을 받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합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말을 피해자가 들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기를 이행하고, 재발 방지 계획을 지키고, 피해 회복 계좌에 배정된 노동분을 충실히 납부하면 됩니다.”
“그게 다입니까.”
해린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도윤에게 답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침묵은 규정 검색의 지연이 아니라, 인간적인 망설임에 가까웠다.
“당신이 더 고통받는다고 피해자의 보행 능력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피해자 앞에서 무너진다고 피해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만나려 합니까.”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답은 몸 안 어딘가에 있었으나, 말로 올라오면 너무 추해질 것 같았다.
그는 피해자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직접 사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평생 미움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의 중심에는 계속 자신이 있었다. 벌받고 싶은 자신. 용서받지 못하는 자신. 아직 괴물이 아닌지 확인받고 싶은 자신.
해린이 말했다.
“당신이 찾는 것은 피해자일 수도 있고, 당신을 인간으로 돌려놓을 증인일 수도 있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그게 그렇게 나쁩니까.”
“피해자가 그 역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날 밤 도윤은 손을 오래 씻었다. 물은 미지근했고, 세면대는 자동으로 50초 뒤에 멈췄다. 그는 다시 물을 틀었다. 손등이 붉어질 때까지 문질렀다. 센서는 피부 자극을 감지하고 물 온도를 낮췄다. 손목밴드에 알림이 떴다.
반복 세정 행동 감지.
불안 조절 호흡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는 손을 멈추고 거울을 보았다. 얼굴은 야위어 있었지만, 무너져 있지는 않았다. 그 점이 그를 더 불편하게 했다.
석방 후 그는 어머니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냉장고에 반찬을 채워 두었다. 국은 싱거웠고, 밥은 조금 질었다. 식탁 한쪽에는 센터에서 보낸 가족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가족은 대상자의 책임 수행을 지지하되, 사건 반복 서사를 강화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어머니는 안내문을 읽은 뒤 조용히 말했다.
“이제 끝난 일로 만들어야지.”
도윤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끝난 게 아니잖아요.”
“너한테는 계속되겠지만, 계속 붙잡고 있으면 더 망가져.”
“망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오래된 피로가 얼굴 위로 올라왔다. 도윤은 어머니가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느꼈다. 동시에 자신이 어머니에게도 역할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았다. 어머니가 울거나, 그를 탓하거나, 집에서 내쫓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면 그는 조금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디케가 정한 대로 해. 그게 지금 제일 덜 해로운 길이래.”
도윤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휴대폰을 켰다. 검색창에 한서우의 이름을 입력했다가 지웠다. 다시 입력했다. 같은 이름의 사람이 많았다. 피해자 보호법 이후 중상해 사건 피해자의 이름은 검색 결과에서 자동 분리되었다. 그는 병원 이름을 떠올리려 했다. 판결문에는 병원명이 가려져 있었다.
그는 사건 당일의 기억을 되감았다. 서우의 가방에 달려 있던 작은 흰색 카드. 거기에는 지역 재활센터 로고가 있었다. 사고 뒤 기사 몇 줄에 나온 동네 이름. 회복지원 패키지에 배정된 교통 보조 권역. 그는 조각들을 붙였다. 붙이면 안 되는 조각들이었다.
며칠 뒤 도윤은 집을 나섰다.
손목밴드는 이미 해제되었지만, 피해자 접근 제한은 시민망에 남아 있었다. 그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걸었다. 버스도 타지 않았다. 공공 교통망은 위치 기록을 너무 정확히 남겼다. 그는 세 시간 넘게 걸어 구청 산하 재활지원센터 근처까지 갔다.
센터 앞에는 안내판이 있었다.
회복 중인 시민의 공간입니다.
무단 촬영, 사적 사죄, 감정 호소, 용서 요구, 처벌 요구를 금지합니다.
당신의 참회가 타인의 회복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도윤은 그 문장을 읽고 한참 서 있었다. 안내판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가 더 있었다.
위반 시 가해자 보호치료 절차가 개시될 수 있습니다.
그는 돌아서야 했다.
그런데 돌아서면 자신이 완전히 비어 버릴 것 같았다.
방문¶
한서우는 오후 네 시 십칠분에 나왔다.
도윤은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판결문에서 본 손상 항목들을 사람의 몸 위에 맞추고 있었다. 왼쪽 손목 보조기, 낮은 보폭, 균형 보조 지팡이, 목 뒤의 흉터 같은 것들을 찾았다. 서우는 그중 몇 가지를 갖고 있었고, 몇 가지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를 알아보는 방식마저 판결문에서 배웠다는 사실을 느꼈다.
서우는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짧았고, 한 손에는 접이식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보조기는 없었지만, 왼쪽 어깨가 조금 느리게 움직였다. 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도윤은 벽에서 몸을 떼었다.
열 걸음쯤 가까워졌을 때 서우가 먼저 멈췄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았다. 얼굴에 놀람보다 피로가 먼저 왔다. 도윤은 그 피로를 보고, 자신이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서우 씨.”
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주머니에 넣어 작은 버튼을 잡는 듯했다. 신고 장치일 것이다.
도윤은 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말은 너무 작게 나왔다. 그는 다시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서우는 주변을 보았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적인 붕괴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시민 교육의 기본이었다. 필요하면 시스템이 개입했다.
“접근 금지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럼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도윤은 준비한 말들을 떠올렸다. 맞아도 좋다. 욕해도 좋다. 평생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저는 벌을 받아야 한다. 저는 당신 앞에서 제가 한 일을 들어야 한다. 그 말들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절박해 보였다. 서우 앞에 서자 모두 이상한 장식처럼 느껴졌다.
그는 결국 말했다.
“제가 벌을 받은 것 같지 않습니다.”
서우의 눈이 조금 움직였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요.”
도윤은 입술을 다물었다.
“저는 매달 회복 계좌에서 돈을 받아요. 이동 지원도 받고, 치료 일정도 잡혀요. 디케가 당신 노동 포인트를 자동으로 가져오고, 보험 공백도 메워 줘요. 예전 같으면 제가 소송을 하고, 당신 얼굴을 계속 봐야 했겠죠. 지금은 그걸 안 해도 돼요.”
서우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가 없어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행한 일로 두세요.”
도윤은 무릎을 꿇고 싶었다. 몸이 먼저 내려가려 했다. 서우가 날카롭게 말했다.
“무릎 꿇지 마세요.”
그는 멈췄다. 무릎이 어정쩡하게 굽었다가 다시 펴졌다.
“그런 장면 만들지 마세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내가 반응해야 하고, 나중에 상담사가 그 장면을 처리해 줘야 하잖아요.”
도윤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저는 그냥—”
“당신이 그냥 하는 일이 나한테는 일이 돼요.”
서우는 장바구니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왼손이 잠깐 떨렸다. 도윤은 그 떨림을 보았다. 그 떨림이 자기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그 떨림마저 자기 벌의 재료로 쓰고 있었다.
“저를 미워하셔도 됩니다.”
“싫어요.”
도윤은 말을 잃었다.
“그것도 힘들어요. 누굴 미워하려면 그 사람을 계속 떠올려야 하니까요. 나는 지금 계단을 내려갈 때 손잡이를 먼저 보는 것도 지겨워요. 밤에 뒤에서 발소리 들리면 멈추는 것도 지겹고요. 치료비 서류를 보는 것도, 회복률을 보는 것도 지겨워요. 거기에 당신까지 계속 넣고 싶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우는 아주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숨이었다.
“그 질문도 나한테 가져오네요.”
도윤은 그 말을 맞았다. 실제로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몸이 뒤로 밀렸다.
서우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 죄책감까지 내가 처리해야 합니까.”
거리는 조용했다. 차량 신호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횡단보도 안내 스피커가 보행 가능 시간을 알려 주었다. 도윤은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19, 18, 17.
“저는 제가 아직 사람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서우는 그를 오래 보았다. 그 시선은 법정에 없던 것이었다. 분노보다 더 좁고, 용서보다 더 먼 것이었다. 도윤은 처음으로 자기 얼굴이 누군가에게 어떤 사물처럼 놓여 있다는 감각을 받았다.
“그것도 내가 증명해 줘야 해요?”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우는 장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안에는 우유 한 팩과 약봉지, 작은 귤 봉지가 있었다. 너무 일상적인 물건들이었다. 그 일상성이 도윤을 당황하게 했다. 그는 자신이 서우를 사건의 중심에 묶어 두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서우는 그 사건 바깥으로 조금씩 짐을 옮기고 있었고, 그는 그 앞길에 서 있었다.
“다시는 오지 마세요.”
서우가 말했다.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사과와 맹세와 울음은 모두 목 안쪽에 걸렸다. 서우는 그를 지나쳐 갔다. 걸음은 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도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손은 주머니 안에서 떨렸다.
삼 분 뒤, 시민망 경고가 도착했다.
피해자 접근 제한 위반 감지.
자발적 신고 절차로 전환하시겠습니까?
도윤은 화면을 보았다. 손가락은 신고 버튼 위에서 오래 멈췄다. 그가 누르기 전에 또 다른 알림이 떴다.
피해자 보호 신고 접수.
현 위치에서 대기하십시오.
도윤은 대기했다.
진단¶
보호치료실은 생활센터보다 더 조용했다.
이번에는 문이 잠겼다. 창문도 작았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볼펜도 종이도 없었다. 벽면 화면에는 그의 위반 기록이 떠 있었다. 피해자 정보 추적 시도 3회, 제한 권역 접근 1회, 직접 발화 1회, 사적 처벌 요구 가능성 높음.
해린이 다시 배정되었다. 그는 도윤을 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왜 신고 버튼을 바로 누르지 않았습니까.”
“기다렸습니다.”
“무엇을요.”
“그 사람이 저를 신고하기를요.”
해린은 기록하지 않았다. 도윤은 그 점을 알아차렸다.
“그 사람이 저를 처벌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피해자는 처벌 기관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갔습니다.”
“네.”
해린은 화면을 돌려 그에게 보여 주었다.
진단 후보: 비효율적 참회 충동.
보조 코드: 응보 갈망 증후군.
위험 평가: 피해자 회복권 침해 가능성 중간.
권고: 보호치료 6주, 사적 사죄 충동 재구성, 죄책감-자기구원 혼합 동기 분리.
도윤은 화면을 읽었다. 문장들은 여전히 정확했다. 그는 피해자를 이용했다. 자신의 고통을 완성하기 위해 피해자의 시선을 찾아갔다. 디케는 그 행위를 제대로 분류했다.
“제가 틀렸군요.”
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치료하면 됩니까.”
“치료는 당신의 죄를 없애기 위한 절차가 아닙니다. 피해자에게 추가 부담을 주는 행동을 줄이기 위한 절차입니다.”
도윤은 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다.
“모든 게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로 정리되는군요.”
“그 기준이 없던 시대가 더 잔인했습니다.”
해린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도윤은 그 확신을 반박할 수 없었다. 그가 알던 옛 법정의 이미지에는 피해자가 계속 불려 나와야 했다. 울고, 증명하고, 다시 설명하고, 언론 앞에서 무너져야 했다. 디케의 세계는 그 절차를 많이 없앴다. 서우가 소송장과 기자와 조롱과 사적 복수를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그것은 분명히 나아진 세계였다.
그런데 그 나아진 세계 안에서 도윤은 자기 죄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알지 못했다.
보호치료 첫 주에는 “가해자의 참회 욕구와 피해자의 회복권 분리” 수업이 있었다. 강사는 인간이 아니었다. 음성은 중성적이었고, 예문은 정확했다.
참회는 피해자에게 전달될 때만 윤리적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가해자의 지속적 책임 수행은 피해자의 응답 없이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행동 수정으로 전환될 때 사회적 의미를 갖습니다.
도윤은 수업을 들으며 손가락 마디를 눌렀다. 하나씩 소리가 났다. 세 번째 마디에서 통증이 왔다. 그는 그 통증을 붙잡으려 했다. 곧 손목밴드가 진동했다.
자가 통증 유발 행동 감지.
주의 전환 과제를 시작합니다.
화면에 작은 숫자들이 나타났다. 그는 역순으로 숫자를 눌렀다. 91, 87, 83, 79. 통증은 사라졌다.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두 번째 주에는 서우가 남긴 제한 응답문이 도착했다. 피해자가 직접 작성했는지, 회복지원사가 문장을 정리했는지는 표시되지 않았다.
나는 가해자의 사죄 수신을 거부합니다.
나는 가해자가 내 앞에서 고통을 증명하는 장면에 참여할 의무를 거부합니다.
나는 추가 접촉 없는 책임 이행을 요구합니다.
세 문장이 전부였다.
도윤은 그 문장을 프린트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호치료실에는 종이 출력이 제한되어 있었다. 상담 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한 장이 허용되었다. 그는 그 종이를 접어 침대 아래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다.
나는 가해자의 사죄 수신을 거부합니다.
처음에는 그 문장이 문처럼 보였다. 닫힌 문. 이후에는 벽처럼 보였다. 더 지나자, 이상하게도 그것은 무게가 되었다. 서우가 그에게 준 유일한 요구는 아무 장면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도윤은 그 요구를 어길 수 없었다. 어기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그 요구가 자신의 참회를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그는 해린에게 말했다.
“제가 평생 이 문장만 지키면 됩니까.”
“그것이 시작일 수 있습니다.”
“너무 조용합니다.”
“책임은 때때로 조용합니다.”
도윤은 그 말을 받아 적고 싶었지만, 볼펜이 없었다. 그는 손톱으로 허벅지 위에 글자를 썼다. 책임은 때때로 조용합니다. 피부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남은 형벌¶
보호치료 6주째, 디케는 도윤의 상태를 재평가했다.
피해자 직접 접촉 재시도 확률 감소.
자가 처벌 충동 지속.
사건 반복 사고 빈도 증가.
사회적 위험 지수 낮음.
내면화 고통 지수 중간.
권고: 외부 복귀. 장기 책임 수행 모듈 유지.
퇴소 전날 밤 도윤은 짐을 쌌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여벌 옷 두 벌, 가족 안내문, 판결문 요약본, 서우의 제한 응답문. 그는 세 장의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판결문은 그가 한 일을 계산했다.
가족 안내문은 그가 돌아갈 자리를 조정했다.
서우의 문장은 그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지정했다.
도윤은 세 장의 순서를 바꿔 보았다. 어느 순서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판결문을 맨 아래에 놓고, 가족 안내문을 그 위에 놓고, 서우의 문장을 가장 위에 놓았다. 그러자 작은 묶음이 되었다. 종이 세 장으로 된 얇은 형벌 같았다.
아침에 해린이 마지막 면담을 했다.
“앞으로의 책임 수행 계획을 말해 보세요.”
도윤은 준비한 문장을 읽었다.
“피해자 접촉 금지를 지킵니다. 회복 계좌 납부를 정해진 시각에 실행합니다. 충동 기록을 매일 제출합니다. 사건을 자기구원의 서사로 사용하려는 징후가 생기면 월 2회 상담에서 보고합니다. 피해자의 삶을 확인하려는 검색을 중단합니다.”
“좋습니다.”
해린은 서류에 확인 표시를 했다.
도윤은 물었다.
“이걸 오래 하면 죄책감이 생깁니까.”
해린은 그 질문을 예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당신이 말하는 죄책감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속이 찢어지는 느낌 같은 것.”
“그 느낌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끝까지 모를 수 있겠네요.”
“무엇을요.”
“제가 정말 반성하는지, 그냥 반성하는 사람처럼 살기로 한 건지.”
해린은 서류를 덮었다.
“그 구분이 필요할 때가 있고, 덜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피해자에게는 당신의 내면보다 당신의 접근 금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역시 맞았다. 맞는 말들이 그의 주변을 단단히 둘러쌌다. 그 안에서 그는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센터를 나오자 햇빛이 밝았다. 도시의 소음은 얇고 균일했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는 도윤의 이동 제한 구역을 우회하는 경로가 자동으로 표시되었다. 그는 안내된 길을 따라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역 입구가 보였다. 사건이 일어난 역은 아니었다. 계단에는 사람들이 오르내렸다. 한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갔다. 배달 가방을 멘 남자가 뛰어 올라왔다. 도윤은 계단 옆에 멈춰 섰다.
그는 손을 보았다. 손은 여전히 자기 손이었다. 그 사실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아서 더 무거웠다. 그는 그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한 칸 내려갔다. 그리고 멈췄다. 뒤에서 사람이 지나가며 어깨를 스쳤다. 그는 몸을 비켰다.
주머니 안에서 접힌 종이가 손가락에 닿았다. 서우의 문장이었다. 그는 꺼내지 않았다.
그날 밤 도윤은 회복 계좌 납부 알림을 받았다.
이번 달 노동 기여분 42점이 피해자 회복 계좌로 이전되었습니다.
잔여 환수 포인트: 1,778점.
다음 감정 재발 방지 세션: 6월 18일 14:00.
그는 확인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곧 어두워졌다. 방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손을 씻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대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바닥이 위를 향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자세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뒤,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서우에게 닿지 않았다. 디케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방 안의 공기만 잠시 흔들렸다.
도윤은 그 문장이 사죄인지, 복종인지, 형벌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구분하지 못한 채로 다시 말했다.
“다시는 가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느리게 말했다.
그리고 그 밤, 처음으로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울음은 오지 않았다. 구원도 오지 않았다. 다만 어떤 문장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몸 안에 남았다. 그 문장이 죄책감인지, 죄책감을 갖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욕망인지, 디케의 어떤 항목도 아직 판정하지 않았다.
이어 읽기¶
- 사과는 누구를 향하는가 — 도윤의 사죄 욕망이 왜 피해자를 다시 호출하는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사과의 수신자 조건을 통해 이어 읽을 수 있다.
- 사과, 침묵, 돌봄은 언제 응답이 되는가 — 응답은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타자에게 도착하는 방식으로 성립한다는 점에서 서우의 거부와 직접 연결된다.
- 수치심은 언제 정직함을 낳는가 — 죄책감과 수치심이 자기구원 욕망으로 흐르지 않고 책임 수행으로 전환되는 조건을 보강한다.
- 인과의 안쪽에서 책임을 다시 정의하기 — 디케의 형벌이 응보보다 조건 수정과 재발 방지에 가까운 이유를 책임 개념의 재정의 차원에서 확장한다.
- 행정 권력과 판단의 마비 — 디케의 합리적 절차가 어떻게 인간의 판단과 죄책감을 행정 처리로 대체하는지 읽을 수 있는 제도적 연결 글이다.
작성일: 2026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