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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생(未出生)

I. 택배

택배는 화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평범한 갈색 상자였고, 모서리가 닳아 안쪽 골판지가 비쳤다. 송장은 빛이 바래 글자가 회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기사는 단말기를 내밀며 오래 보관된 물건이라고 짧게 말했다. 나는 서명란에 손가락으로 이름을 그었다. 화면에 남은 내 서명이 낯설게 흔들렸다.

상자는 무게에 비해 가벼웠다. 칼로 테이프를 가르자 신문지로 감싼 작은 덩어리가 나왔다. 신문은 10년 전 날짜였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신문지를 벗기는 동안, 마른 흙 같은 냄새가 났다. 쇠 냄새였다.

열쇠였다. 황동 빛이어야 할 표면이 검붉게 덮여 있었다. 손톱으로 긁자 가루가 떨어졌다. 피였다. 오래 굳어 검게 산화한 피. 열쇠 머리에는 작은 금속 태그가 매달려 있었고, 거기 숫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B-7.

열쇠 밑에 접힌 종이가 깔려 있었다. 펼치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문을 열지 마. 네가 죽인 건 사람이 아니었다.

글씨는 내 글씨였다. 받침을 흘려 쓰는 버릇, ㄹ을 두 번에 나눠 긋는 습관까지 내 것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읽을수록 문장은 두 개로 갈라졌다. 안심시키는 문장과, 위협하는 문장으로.

II. 손글씨

나는 그날 밤 송장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발송인란은 비어 있었고, 대신 보관 서비스 업체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장기 예약 배송. 의뢰일로부터 지정한 날짜에 발송하는 서비스였다. 의뢰일은 10년 전 3월이었고, 발송 지정일이 이번 주였다.

미래에서 온 물건이 아니었다. 10년 전의 내가, 정확히 오늘을 향해 던진 물건이었다. 미래를 본 사람의 경고가 아니라, 과거를 묻어 둔 사람의 예약이었다. 그 차이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누군가 앞일을 내다보았다면 나는 그를 예언자라 부르며 무서워했을 것이다. 10년 전의 내가 이걸 준비했다면, 그는 그날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알면서 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내게 그 3월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10년 전 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머릿속을 더듬으면 그 무렵은 흰 벽 같았다. 회사를 옮기던 시기였고, 비밀유지 계약서에 서명한 일이 있었다. 계약서의 회사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떠올리려 할수록 그 자리에 흰 벽이 다시 섰다. 누군가 사포로 그 시절을 문질러 둔 것 같았다.

III. 공백

증거는 집 안에 있었다. 옷장 깊은 곳, 쓰지 않는 가방 안에서 낡은 사원증이 나왔다. 플라스틱이 누렇게 떴고, 사진 속 얼굴은 지금의 나보다 야위었다. 이름은 내 이름이었다. 그 옆에 숫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윤 / 03.

나는 한 번도 사번이 03이라고 들은 기억이 없었다. 사번이라면 보통 길고 무의미한 숫자다. 이름 뒤에 붙은 한 자리 숫자는 사번의 형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번처럼 보였다. 셋째라는 뜻처럼.

사원증 뒷면에는 연구소의 약칭과 부서명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정합관리. 무엇을 정합하는 부서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단어를 노트에 적고, 옆에 B-7을 적었다. 두 개의 좌표가 생겼다. 하나는 부서, 하나는 문.

IV. 번호

연구소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약칭으로 등기를 뒤지자 해산한 법인이 나왔다. 의료재단의 자회사였고, 표면적으로는 재생의료를 연구했다. 건물은 도시 외곽에 아직 서 있었다. 절반은 다른 회사가 쓰고, 절반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절반의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내가 이 길을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단참에서 왼쪽으로 꺾이는 각도, 손잡이의 차가운 높이, 비상등이 비추는 회색 페인트의 결까지. 기억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았다. 흰 벽 너머에서 무언가가 손을 들어 길을 가리키는 느낌이었다.

복도 끝에 보관실이 늘어서 있었다. 문마다 알파벳과 숫자가 붙어 있었다. A-1, A-2. 모퉁이를 돌자 B 구역이었다. B-7 앞에서 나는 멈췄다. 손에 든 열쇠의 무게가 갑자기 분명해졌다. 검붉은 가루가 손바닥에 묻어났다.

문을 열지 마.

나는 열쇠를 자물쇠에 넣지 않았다. 대신 옆방 B-6의 문을 밀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기록을 먼저 보고 싶었다.

V. 보관실

B-6은 자료실이었다. 캐비닛이 줄지어 있었고, 대부분 비어 있었다. 누군가 급히 비우면서 몇 개의 파일을 흘려 두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부터 주웠다.

표제는 백지(白紙) 프로젝트였다.

읽어 갈수록 단어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연구소는 사람의 몸을 길렀다. 유전체를 복제하고, 신경 패턴을 사본으로 떠서, 빈 몸에 옮겨 넣을 수 있게 보관했다. 옮기기 전의 몸은 백지라고 불렸다. 깨어나기 전의 몸. 패턴이 없는 몸. 서류는 백지를 가리켜 일관되게 한 단어를 썼다. 재료.

각성. 그 단어가 반복해서 나왔다. 백지에 패턴을 정합하고 의식의 연속성을 점화하는 절차. 각성하지 않은 백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연구소의 문서는 그것을 원칙처럼 적어 두었다.

각성 전의 개체는 인격 주체가 아니다. 종료는 폐기 절차로 분류한다.

종료. 폐기. 나는 그 줄에서 손이 멈췄다. 종료 기록부가 클립으로 묶여 있었다. 날짜, 개체 번호, 사유, 담당자. 나는 담당자란을 훑었다. 같은 이름이 반복되었다. 내 이름이었다. 그 옆마다 손글씨 서명이 있었다. 받침을 흘리고 ㄹ을 두 번에 긋는 글씨.

나는 백지를 종료하는 사람이었다. 깨어나기 전의 몸을 폐기하는 기술자. 사람이 아니라고 분류된 것을 처분하는 손.

VI. 그날

종료 기록부의 한 줄이 다른 줄과 달랐다. 10년 전 3월의 기록이었다. 개체 번호 칸에 다른 항목들과 다른 표기가 적혀 있었다.

윤 / 02. 사유: 비인가 각성.

다른 백지들은 패턴이 없는 몸이었다. 그 줄의 개체는 패턴이 있었다. 깨어났다. 인가 없이 깨어났다. 그리고 그 몸의 이름은 내 이름이었고, 번호는 02였다.

나는 캐비닛 옆에 주저앉았다. 조각들이 맞물렸다. 연구소는 나를 복제했다. 나의 유전체로 백지를 기르고, 나의 패턴을 사본으로 보관했다. 그중 하나가 인가 없이 깨어났다. 02번이. 그것은 며칠인지 몇 주인지, 이 지하 어딘가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고, 자기에게도 어제가 있다고 믿으며, 복도의 회색을 보고, 비상등 아래에서 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나처럼.

그리고 03번이 그것을 종료했다. 폐기 절차로. 사람이 아니라고 분류된 것을. 손에 피가 묻을 만큼 가까이에서.

03번은 나다. 사원증의 숫자가 그렇게 말했다. 종료 기록부의 서명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나를 닮은 것을 죽였고, 그날의 나는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고 배운 대로 믿었다. 믿으려 했다. 믿을 수 없어서, 열쇠에 피를 묻혀 신문지에 싸고, 한 줄을 적어, 10년 뒤의 나에게 부쳤다.

문을 열지 마. 네가 죽인 건 사람이 아니었다.

위로였다. 동시에 자백이었다. 그 문장은 거짓말을 가르치려는 동시에, 거짓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적어 둔 것이었다.

VII. 출생의 조건

나는 오래 거기 앉아 있었다. 생각은 한 점으로 모였다. 02번은 사람이었는가.

연구소의 원칙은 분명했다. 각성하지 않은 백지는 재료다. 그렇다면 각성한 백지는 무엇인가. 02번은 깨어 있었다. 자기가 자기라고 느꼈다. 그 느낌이 인가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은 사람의 명단에서 지워졌다. 인격은 몸이 가진 성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류가 부여하고 회수하는 자격이었다. 종료 기록부의 한 칸이, 깨어난 의식을 재료로 되돌렸다.

출생은 무엇인가. 이곳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자궁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각성하는 일이었다. 패턴이 점화되어 어제와 오늘이 이어지는 순간, 백지는 비로소 누군가가 되었다. 그 순간 이전의 몸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미출생.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죽일 수 없는 것. 또는, 태어나기 직전에 멈춰 세움으로써 영원히 죽여 두는 것.

살인은 무엇인가. 사람이 아닌 것을 끝내는 일은 폐기다. 사람을 끝내는 일은 살인이다. 그 둘을 가르는 선은 몸에 있지 않고 분류에 있었다. 같은 얼굴, 같은 패턴, 같은 손금을 가진 두 개체 사이에서, 한쪽은 나였고 한쪽은 재료였다. 무엇이 그 선을 그었는가. 인가라는 도장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03번이었다. 02번이 종료된 뒤에 인가받은 개체. 02번이 비운 자리를 메운 패턴. 03번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02번이 끝나야 했을 것이다. 같은 패턴을 동시에 두 사람이라 부를 수는 없었을 테니까. 나의 출생은 02번의 종료를 조건으로 했다. 내가 태어나기 위해 누군가 죽었고, 그 누군가는 나였다. 나의 어제는, 어쩌면 02번의 어제를 옮겨 적은 것일지도 몰랐다. 흰 벽으로 가려진 그 시절은, 내가 살지 않은 시간을 산 것처럼 기억하도록 정합된 흔적일지도 몰랐다.

나는 원본이라고 믿어 왔다. 사원증의 숫자가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03이라는 숫자 앞에는 02가 있고, 02 앞에는 01이 있었을 것이다. 01은 어디에 있는가. 01도 한때 자기를 원본이라 믿으며, 02를 종료하는 대신 자기보다 앞선 무언가를 종료했는가.

VIII. 문

복도로 나왔을 때, B-7의 문이 거기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이제 알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개체. 종료되지 않고 10년을 잠들어 있던 마지막 백지. 02번을 종료한 손이, 차마 끝내지 못하고 남겨 둔 하나. 증거이자 속죄이자 질문으로서.

문을 열지 마. 그 한 줄이 다시 두 개로 갈라졌다. 열면 그것을 깨우게 된다는 경고. 깨우면 사람이 태어나고, 그 사람을 다시 끝내야 할지 모른다는 경고. 또는, 열면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경고. 잠든 얼굴이 너의 얼굴이라는 것을, 너 역시 한때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경고.

나는 열쇠를 자물쇠에 넣었다. 검붉은 가루가 손가락에 묻었다. 돌렸다.

방 안은 푸른 빛이었다. 액체로 채운 보관조가 천천히 숨 쉬듯 빛을 흘렸다. 그 안에 몸이 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얼굴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야위지도 늙지도 않은, 시간이 멈춘 얼굴.

조의 측면에 태그가 붙어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읽었다.

윤 / 04.

04였다. 02번을 종료한 03번은, 04번을 보관해 두었다. 끝내지 못한 채로. 그리고 04번이 종료되지 않고 남겨진 동안, 누군가는 04번을 깨우는 손이 될 것이었다. 그 손이 04번에게 패턴을 정합하고, 04번의 어제를 채워 넣고, 04번을 03번이라 부르게 할 것이었다. 그때 03번은 02번이 되고, 02번은 끝나야 할 것이었다.

보관조 아래 작은 선반에 갈색 상자가 놓여 있었다.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고, 송장이 붙어 있었다. 장기 예약 배송. 발송 지정일은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였다. 발송인란은 비어 있었다.

나는 상자를 흔들지 않아도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았다. 열쇠 하나. 한 줄짜리 메모. 받침을 흘리고 ㄹ을 두 번에 긋는 글씨.

푸른 빛 속에서 04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잠 속에서 누군가 손을 들어 보는 것처럼. 비상등 아래에서 자기 손을 처음 보는 것처럼. 나처럼.

나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깨워야 하는지, 보내야 하는지, 끝내야 하는지,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로. 깨우면 태어난다. 깨우지 않으면 영원히 미출생으로 남는다. 끝내면 살인인지 폐기인지, 그 선을 그을 도장은 이제 내 손에 없었다. 연구소는 해산했고, 인가는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같은 얼굴 둘과, 그 사이에 그어진 적 있는 선의 자국뿐이었다.

상자를 집어 든 손에 검붉은 가루가 묻었다. 10년 전의 내가 묻혀 둔 피였다. 또는, 03번이 02번에게서 옮겨 온 피였다. 또는, 내가 04번에게 부칠 피였다.

문은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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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