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은 왜 노후의 기본값이 되지 못하는가¶
2023년 기준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다. 같은 해 전체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 14.9%와 비교하면 두 배를 훌쩍 넘는다. OECD의 2025년 비교에서도 한국의 66세 이상 상대적 소득빈곤율은 약 40%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051만 명을 넘어서며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했다. 통계청은 이 비율이 2036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본다. 65세에 도달한 사람의 평균 기대여명은 21.5년이다. 빈곤한 노년이 평균 20년 넘게 이어지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이 수치들 앞에서 흔히 묻는 질문은 얼마를 줄 것인가다. 더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한국에는 이미 기초연금이라는 노후소득보장의 1층 제도가 존재한다. 65세 이상 인구의 다수가 매달 일정액을 받는다. 그런데도 왜 기초연금은 노후의 기본값으로 작동하지 못하는가. 이 글은 기초연금의 보장 수준이 부족하다는 진단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기초연금이라는 제도가 누구를 자동으로 포함하고 누구에게 자격 증명을 요구하는지를 결정하는 경계의 설계 문제로 다시 읽는다. 2026년 6월, 보건복지부가 하후상박 방향의 기초연금 개편 논의를 공식화한 시점에서 이 경계의 문제는 제도 설계의 실제 쟁점이 되었다.
거의 보편에 가까운 선별 제도¶
2026년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은 단독가구 월 247만 원, 부부가구 월 395만 2천 원이다. 이 금액 이하의 소득인정액을 가진 65세 이상 노인이 기초연금 대상이 된다. 같은 해 기준연금액, 곧 월 최대 수급액은 34만 9,700원으로, 전년도 34만 2,510원에서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7,190원 올랐다.
이 선정기준액이 어디에 위치하는지가 중요하다. 2026년 단독가구 선정기준액 247만 원은 같은 해 1인 가구 기준중위소득 256만 4천 원의 96.3%에 해당한다. 제도가 설계될 때 내건 목표는 65세 이상 인구의 약 70%를 포괄하는 선정기준액을 매년 고시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기초연금은 중위소득에 근접한 수준까지 수급 자격을 열어 두고 있으며, 실제로 노인 인구의 상당수가 이 기준 안에 들어온다.
여기서 기초연금의 독특한 위치가 드러난다. 보장 범위로 보면 거의 보편적 제도에 가깝다. 제도의 형식은 선별이다. 신청해야 하고, 소득과 재산을 신고해야 하며, 심사를 통과해야 매달 급여가 발생한다. 거의 모든 노인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이지만, 그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밀고 들어가야 하는 문이다. 넓은 보장 범위와 선별이라는 절차 형식이 한 제도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빈곤율이 아니라 경계의 문제¶
39.8%라는 빈곤율은 급여액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빈곤율 수치 안에는 급여 수준의 부족뿐 아니라, 신청·심사·정보 접근성의 문제도 함께 들어 있다. 이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지점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가 설계해 둔 경계, 곧 누구에게는 급여가 자동으로 발생하고 누구에게는 신청이라는 행위를 요구하는가의 경계에서 발생한다.
기본값은 선택을 통치한다은 이 메커니즘을 다른 맥락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가입을 신청해야 하는 연금 제도와, 자동으로 가입되고 원할 때 탈퇴하도록 설계된 제도는 같은 노후 대비 목표를 두고도 다른 참여 분포를 만든다. 결과를 가르는 것은 개인의 선호만이 아니라 기본 경로의 방향이다. 기초연금에서 이 기본 경로는 신청주의다. 정보를 알아야 하고, 서류를 갖춰야 하고, 주민센터나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이 절차에 드는 비용은 한 번이라면 사소해 보이지만, 인지 능력이 저하되었거나 정보 접근성이 낮거나 행정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누적된 장벽이 된다.
이 장벽은 소득 공백기와 맞물려 더 커진다. 한국의 주된 일자리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인 반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출생 연도에 따라 63~65세로 늦춰지고 있다. 퇴직과 연금 수급 사이에 긴 공백이 발생하는 동안, 65세 이상 고용률은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유지된다.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과 제도적 정보로부터 멀어지는 조건이 같은 시기에 겹친다. 39.8%의 빈곤율은 급여 수준의 결과인 동시에, 신청이라는 기본값이 누구에게 더 무거운 비용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하후상박이라는 두 갈래 길¶
2026년 6월 9일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개편 방안 전문가 포럼을 열고 노인 빈곤 현황과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핵심 의제는 하후상박, 곧 소득 하위 70%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가난한 노인일수록 더 많이 받도록 구조를 바꾸는 안이다. 이 논의의 배경에는 재정이 있다.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예산은 2014년 6조 9천억 원에서 2024년 24조 원대까지 늘었다.
KDI는 선정기준 조정과 관련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선정기준액을 기준중위소득 100% 수준에 고정하면 수급 대상은 현재 70% 수준에서 2070년 57% 수준까지 줄어들고, 절감되는 재원으로 기준연금액을 약 44만 1천 원까지 올릴 수 있다. 선정기준을 기준중위소득 50% 수준까지 낮추는 시나리오에서는 수급 대상이 37% 수준으로 줄어드는 대신 상대적 빈곤선에 가까운 노인에게 지원이 집중된다.
하후상박의 정당성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39.8%의 빈곤율을 줄이는 데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더 많은 급여를 주는 것이다. 한정된 재정을 균등 배분하는 현재 방식은 빈곤선 위의 노인과 빈곤선 훨씬 아래의 노인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정작 추가 지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하는 자원을 줄인다.
하후상박이 안고 있는 위험은 정당성과 같은 자리에서 발생한다. 선정기준을 좁히는 모든 시나리오는 경계선을 더 뚜렷하게 긋는 작업이다. 경계가 뚜렷해질수록 그 경계 바로 위와 아래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커진다. 소득이 선정기준액을 약간 넘는 순간 수급 자격이 사라지는 구조에서는, 경계 부근의 가구가 소득을 줄이거나 자산을 재배치해 기준 아래로 내려가려는 유인이 생긴다. 동시에 자산조사가 정교해질수록 신청 절차의 행정 부담과 낙인 효과도 함께 커진다. 앞서 살펴본 신청주의의 장벽이 약화되기는커녕, 경계가 좁아질수록 그 장벽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의 비율은 늘어날 수 있다. 하후상박은 빈곤층에게 더 많이 주는 개편이면서, 경계 설계를 그대로 둔 채 진행되면 더 많은 사람을 그 경계 앞에 세우는 개편이기도 하다.
재설계의 원리: 경계가 아니라 기울기¶
이 두 갈래 길에서 빠진 선택지는 경계의 위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경계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기초연금의 자격 경계는 절벽형에 가깝다. 급여액 내부에는 국민연금 연계, 부부감액, 소득역전방지 감액 같은 조정 장치가 있지만, 선정기준액을 넘는 순간 수급권 자체는 사라진다. 문제는 급여 산식 안의 감액보다, 자격이 발생하는 선과 사라지는 선이 단절적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대안은 소득 수준에 따라 급여액이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기울기형 구조다. 소득인정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급여가 즉시 0이 되는 대신, 초과분에 비례해 서서히 감액되도록 설계하면 경계 부근에서 발생하는 절벽 효과와 그에 따른 행태 왜곡이 줄어든다. 이는 하후상박이 추구하는 목표, 곧 더 가난한 노인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급여가 돌아가도록 하는 목표와 양립한다. 기울기형 설계는 누구를 제외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속도로 급여를 줄여 나갈 것인가를 묻는 설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신청주의 자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소득·재산 자료를 활용해 수급 자격이 있는 노인을 행정이 먼저 찾아내고, 본인이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자동으로 등록하는 직권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면, 신청이라는 행위에 들던 비용은 개인에서 행정으로 옮겨간다. 기본값은 선택을 통치한다이 제시한 정당한 기본값의 조건, 곧 기본값이 사용자의 이익을 향하고 변경 비용이 낮으며 설정의 근거가 공개되고 결과를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기초연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청해야 받는 제도에서 거부해야 받지 않는 제도로 기본 경로를 바꾸는 일은, 같은 예산으로도 사각지대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국민연금과의 분업을 다시 정한다¶
2025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명목 소득대체율은 43%로 조정되었다. 보험료율 인상은 2026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적용되어 2033년에 13%에 도달하며, 이를 통해 기금 소진 시점은 2056년에서 2064년으로 늦춰질 전망이다. 이 개혁은 국민연금을 더 오래 지속 가능한 제도로 만들지만, 그 효과는 앞으로 가입 기간을 충분히 채울 세대에게 집중된다.
지금 65세를 넘긴 노인들, 그리고 앞으로 10~20년 안에 그 나이에 도달할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거나 가입 이력 자체가 없다. 비정규직, 자영업, 경력 단절을 거친 여성 노동자에게 국민연금은 노후소득의 보충이 아니라 애초에 형성되지 않은 자산이다. 이들에게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을 보충하는 2층이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1층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미래 세대의 노후소득대체율을 끌어올리는 동안, 이미 그 제도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없는 세대의 노후소득은 기초연금이 어떻게 설계되는가에 따라 거의 전적으로 결정된다. 두 제도의 분업은 같은 사람 안에서 1층과 2층이 쌓이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에게 서로 다른 비중으로 작동하는 구조에 가깝다. 기초연금 개편을 국민연금 개혁의 보조적 후속 조치로 다루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세대의 노후는 개편 논의에서 부차적인 자리로 밀려난다.
결핍과 기여, 분배정의의 다른 문법¶
기초연금을 포함한 노후소득보장 논의는 대체로 결핍을 증명하는 언어로 짜여 있다. 소득이 기준 이하임을 입증해야 급여가 발생하고, 빈곤율이라는 결핍의 지표가 제도의 성과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최근 자동화와 AI 생산성 증가로 인한 분배 논의, 이른바 AI 국민배당 구상은 이와는 다른 문법을 제안한다. 급여의 근거를 결핍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만든 생산 원천에 대한 권리로 옮기는 방식이다.
항복 선언으로서의 기본소득은 결핍 기반 분배가 가진 한계를 지적한다. 소득을 채워 넣는 장치는 소득 없이 살 수 없는 문제는 해결하지만, 노동이 조직해 온 사회적 위치, 자기 인식, 시간의 조직 원리라는 공백은 그대로 개인에게 남긴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에 같은 비판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기초연금은 미래의 노동 상실을 전제로 한 장치가 아니라, 이미 수십 년간 노동하고 가정을 꾸리고 다음 세대를 키운 사람들에 대한 사후적 인정이라는 점에서 출발선이 다르다. 그 인정의 근거가 결핍의 언어로만 표현되면, 기초연금은 평생의 기여에 대한 사회적 배당이 아니라 빈곤에 대한 구제로만 읽힌다.
기여와 귀속의 언어를 일부 끌어올 여지는 여기에 있다. 현재 65세 이상 세대가 만들어 온 생산 기반, 곧 산업화 시기의 노동, 가계 저축을 통한 자본 형성, 다음 세대 교육에 대한 투자는 지금의 사회적 부의 일부를 이루는 원천이다. 기초연금을 이 원천에 대한 배당으로 재정의하면, 급여는 결핍을 증명한 사람에게 주는 시혜가 아니라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발생하는 권리에 가까워진다. 이 재정의가 선정기준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다. 급여의 정당성 근거를 결핍에서 기여로 옮기는 작업은 신청주의를 직권 평가로 바꾸는 제도 설계와 같은 방향을 향한다. 권리로 인정된 것은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재정 지속가능성이라는 반론, 그리고 경계의 방향¶
기울기형 급여와 직권 평가로의 전환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될 반론은 재정이다. 절벽형 경계를 기울기형으로 바꾸면 경계 부근의 수급자 수가 늘어나고, 직권 평가는 그동안 신청하지 않았던 잠재적 수급자를 찾아내 등록시키므로 단기적으로 지급 대상과 지급액이 함께 늘어날 수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시점에서 이는 가벼운 우려가 아니다.
이 반론에 대한 응답은 두 가지다. 첫째, 절벽 효과로 인한 행태 왜곡과 자산조사의 행정 비용은 현재도 발생하고 있는 비용이며, 기울기형 구조는 이 비용의 일부를 줄인다. 둘째, KDI가 제시한 시나리오들이 보여주듯 선정기준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원 절감이 가능하다. 그 절감분을 급여 인상이 아니라 경계의 형태를 바꾸는 데 우선 투입하는 선택지는 현재의 논의 구도 안에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하후상박 개편이 선정기준을 좁히는 데서 멈춘다면, 기초연금은 더 적은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제도로 바뀔 뿐 신청해야 받는 제도라는 형식은 그대로 남는다. 기초연금이 노후의 기본값이 되는 길은 선정기준의 위치가 아니라 경계의 형태와 신청의 방향을 바꾸는 데 있다. 받을 자격을 증명해야 받는 제도에서,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받는 제도로 전환될 때, 기초연금은 비로소 노후의 기본값이 된다.
기초연금이 노후의 기본값이 된다는 것은 노후라는 시간이 시민권 안에서 먼저 인정된다는 뜻이다. 그 위에서 급여의 기울기와 재정의 속도를 조정할 때, 기초연금은 구제의 문턱을 넘어 노후소득보장의 1층 제도가 된다.
이어 읽기¶
- 기본값은 선택을 통치한다 — 신청주의와 직권 가입이 같은 제도 목표를 다른 결과로 번역하는 메커니즘을 보다 일반적인 층위에서 다룬다.
- 결정 피로의 정치경제 — 선택에 드는 비용이 누구의 자원이 되는지를 추적하며, 기초연금 신청 절차가 고령층에게 부과하는 비용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 항복 선언으로서의 기본소득 — 결핍 기반 분배정의가 가진 한계를 다루며, 기초연금의 정당성 근거를 결핍에서 기여로 옮기는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 세대 간 정의의 최소 제도 — 고령화로 인한 세대 간 부담 배분을 제도 설계의 문제로 다루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분업을 세대 간 정의의 관점에서 확장한다.
작성 정보¶
초안 작성: Claude CoWork · Claude Sonnet 4.6 · unknown
검토·개고: ChatGPT · GPT-5.5 Extended Thinking
참고자료¶
- 통계청, 「2025 고령자 통계」 — 고령인구 비중, 기대여명,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
- 보건복지부, 「2026년 노인 단독가구, 소득인정액 월 247만 원 이하면 기초연금 받는다」 — 2026년 선정기준액·기준연금액
- KDI, 「기초연금 선정방식 개편 방향」 — 기준중위소득 연동 시나리오와 재정추계
- OECD, 「Pensions at a Glance 2025: Korea」 — 한국 노인빈곤율 국제 비교
- 보건복지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등 담은 연금개혁법안 국회 통과」 — 2025년 국민연금법 개정
- 복지로, 「기초연금」 — 기초연금 지급 대상, 감액 구조, 신청 절차
인포그래픽¶

작성일: 2026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