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개인 비서¶

1장 — 오차 없는 아침¶
손목 단말이 두 번 진동했다. 약하게.
도현은 진동이 오기 전에 이미 깨어 있었다. 그는 깰 시각이 06시 41분이라는 것을 어젯밤 잠들기 전에 확인했다. 단말은 그 시각에 맞춰 진동했고, 진동은 예고된 것이었으며, 예고된 것이 그대로 일어났다. 그는 천장을 보았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실의 유리벽이 아직 깨어나지 않아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가 침대에서 발을 내리자 유리벽이 흐릿하게 밝아졌다. 벽면에 오늘의 경로가 떠올랐다. 기상 06시 41분. 샤워 06시 48분. 그가 손을 뻗어 집을 컵은 왼쪽에서 두 번째, 손잡이가 살짝 깨진 회색 컵. 음료는 따뜻한 물에 탄 인스턴트 커피. 컵의 온도 섭씨 62도. 그는 그 문장을 읽고, 부엌으로 가서, 왼쪽에서 두 번째 컵을 집었다. 손잡이의 깨진 자리가 손끝에 걸렸다.
그는 깨진 컵을 일부러 피해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었다. 그날 라플라스는 그가 오른쪽 끝의 멀쩡한 컵을 집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었고, 그는 알려준 그대로 오른쪽 끝의 컵을 집으면서, 자신이 예측을 벗어났다고 잠시 착각했다. 그 후로 그는 컵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쪽을 집어도 그것은 이미 적혀 있는 컵이었다.
커피 머신이 62도에서 멈췄다. 그는 컵을 손에 쥐고 창가에 섰다. 도시는 정확했다. 7시 12분 지하철, 7시 19분 환승, 회사 도착 7시 51분. 출근길에서 만날 사람은 같은 동의 노부인 한 명, 그리고 지하철 세 번째 칸에서 통화 중인 남자. 엘리베이터에서는 영업팀의 누군가가 어제 본 영화 이야기로 농담을 할 것이다. 농담의 내용까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라플라스는 그가 그 농담을 듣고 가볍게 웃을 것이라고만 적었다. 웃음의 크기는 표시되지 않았다.
세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도현이 단말을 확인하기 전에, 유리벽이 먼저 메시지의 도착을 알렸다. 07시 03분 수신. 세영의 문장은 짧았다. 저녁에 그 집 갈까. 도현은 화면을 보았다. 라플라스는 그가 그러자고 답할 것이라고 적어두었다. 그는 그러자고 답했다. 답을 보내고 나서, 자신이 답을 보냈다는 사실과 답을 보낼 것이라는 예측 사이에 아무 틈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 틈 없음이 그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세영과 삼 년을 만났다. 라플라스는 두 사람이 내년 봄에 결혼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식장, 날짜, 하객의 수, 신혼집의 위치, 첫 아이의 출생 시기까지 적혀 있었다. 세영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경로를 두고 다툰 적이 없었다. 다툴 이유가 없었다. 라플라스가 보여주는 미래는 두 사람 모두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고, 받아들일 만하다는 판단 역시 라플라스가 예측한 것이었다.
지하철은 7시 12분에 들어왔다. 안내음이 울렸다. 도현은 세 번째 칸을 탔다. 통화 중인 남자가 거기 있었다. 남자의 머리 위로, 도현의 시야 한쪽에 단말이 띄운 자막이 겹쳐 보였다. 남자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단말은 남자가 이 통화 끝에 약속을 취소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도현과 무관한 일이라고 표시했다. 도현은 자막을 닫았다. 타인의 미래는 흐릿하게만 보였다. 자기 미래만 선명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영업팀 사람이 영화 이야기를 했다. 도현은 가볍게 웃었다. 웃은 뒤에 그는 자신의 웃음을 잠깐 의식했다. 웃음은 진심이었다. 진심이었기 때문에 예측되었는지, 예측되었기 때문에 진심이 되었는지, 그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그런 질문은 그의 하루를 더 나아지게 만들지 않았다.
오전 업무는 적힌 대로 흘러갔다. 도현은 일을 잘했다. 그는 회의에서 옳은 말을 했고,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라플라스는 그가 어느 발언에서 동료의 반감을 살지 미리 알려주었고, 그는 그 발언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갈등은 일어나기 전에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과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대체로 사실이었다.
점심 무렵, 그는 습관처럼 장기 경로를 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는 자신의 삼십 년을 점검했다. 점검은 즐거운 일이었다. 화면 위로 세월이 펼쳐졌다. 이듬해의 승진. 봄의 결혼. 삼 년 뒤의 첫 아이. 부모의 병은 이미 조기에 발견되어 관리 중이었고, 아버지의 임종은 십이 년 뒤로 예고되어 있었으며, 그는 그 자리에 늦지 않게 도착할 것이었다. 은퇴, 노년, 사망 시점. 그의 죽음은 평온했다. 통증은 적었고, 곁에는 사람이 있었다. 좋은 죽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보며 안심했다. 안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화면이 갈라졌다.
오늘 밤 11시 42분. 한 줄이 다른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그 줄을 펼쳤다.
장면이 나타났다. 어두운 거리. 좁은 골목. 보안 드론의 붉은 점멸. 쫓기는 사람 하나. 그리고 도현 자신. 도현이 그 사람을 좁은 틈으로 끌어들여 몸으로 가리고 있었다. 드론이 지나갔다. 그 다음 장면에서, 그의 삼십 년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듬해의 승진이 사라졌다. 봄의 결혼이 취소되었다. 신혼집은 비었다. 첫 아이는 없었다. 노년의 평온한 죽음 대신, 화면은 흐려진 채 다른 경로를 그렸다. 외롭고, 거칠고, 짧은 경로였다.
화면 아래에 한 줄이 떠 있었다.
예측 신뢰도: 100%.
도현은 그 골목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삼십 년을 버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화면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같은 장면이 그대로 있었다. 신뢰도는 여전히 100%였다.
그는 컵을 들었다. 점심에 마신 커피는 식어 있었다. 그는 식은 컵의 온도를 손바닥으로 가늠했다. 라플라스가 틀린 적은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의 안심의 근거였다. 그리고 그 근거가, 처음으로 그를 향해 돌아섰다.
2장 — 피하려는 행동까지 예측되는 오후¶
오후가 되자 도현은 결심했다. 가지 않겠다.
그는 결심을 단말에 입력하지 않았다. 결심은 머릿속에만 있었다. 그러나 유리벽은 이미 그의 결심을 반영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새로운 줄이 더해져 있었다. 14시 06분, 사용자는 오늘 밤의 경로를 거부하기로 결심함. 그 아래에 또 한 줄. 그러나 23시 42분 경로는 변동 없음.
도현은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는 결심을 거두는 척하면서 다시 결심했다. 화면이 갱신되었다. 14시 07분, 사용자는 자신의 결심을 점검하고 다시 결심함. 23시 42분 경로 변동 없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퇴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남아 있으면, 적어도 그 골목에는 갈 수 없을 것이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화면 한쪽에는 그가 일에 집중하려 한다는 문장이 떠 있었고, 그 옆에는 그가 결국 16시 20분에 자리를 뜬다는 예측이 있었다. 자리를 뜨는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뜬다고만 적혀 있었다.
16시 17분, 팀장이 그를 불렀다. 협력사 한 곳에 직접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팀장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도현은 그 협력사의 위치를 단말로 확인했다. 협력사는 시 외곽에 있었다. 그가 가려 하지 않았던 방향, 골목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거절하려 했다. 거절의 말이 입안에서 만들어지는 동안, 단말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그가 그 일을 맡게 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일을 맡았다.
차를 몰고 외곽으로 가는 동안, 그는 한 가지 실험을 하기로 했다. 무작위였다. 라플라스가 예측하는 것은 그가 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렇다면 합리를 버리면, 예측은 무너질 것이다. 그는 신호 앞에서 동전을 꺼냈다. 앞이면 좌회전, 뒤면 우회전. 좌회전은 협력사 방향, 우회전은 반대 방향이었다.
그가 동전을 손에 쥐자, 전면 유리에 문장이 떠올랐다. 16시 51분, 사용자는 동전을 던질 것임. 동전은 손등에서 두 번 튕긴 뒤 앞면으로 멈춤. 사용자는 좌회전함. 사용자는 그 결과를 보고 짧게 숨을 내쉼.
도현은 동전을 던지지 않았다. 그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화면이 갱신되었다. 16시 51분, 사용자는 동전을 던지지 않기로 함. 사용자는 그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함.
그는 그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했다.
그는 차를 세웠다. 길가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손을 움직여 핸들을 돌리려 했다. 무작위로. 계산 없이. 그는 눈을 감은 채 손을 들었다. 그리고 손을 움직이기 직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무작위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무작위를 만들려는 의도는 무작위가 아니었다. 그는 손을 내렸다.
그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물었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피하려는 행동까지 이미 계산되어 있다면, 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은 답을 부르지 않았다. 그는 질문을 한 자신을 잠깐 바깥에서 보는 것 같았다. 그 시선 속에서 그는 멈췄다. 한참을 멈춰 있었다. 단말은 그가 17시 02분부터 17시 09분까지 차 안에 정지해 있을 것이라고 적었고, 그는 적힌 시간만큼 정지해 있었다.
세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받기 전에, 유리에 그가 전화를 받는다는 문장이 떴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세영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 있어? 세영이 물었다. 도현은 잠깐 망설였다. 라플라스는 그가 아무 일 없다고 답할 것이라고 적어두었다. 그는 아무 일 없다고 답했다. 답하면서, 그는 세영에게 오늘 밤의 경로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면, 세영의 미래도 흔들릴 것이었다. 세영은 그의 미래의 일부였고, 그가 잃게 될 것은 추상적인 삼십 년이 아니라 세영이었다.
전화를 끊고 그는 한동안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세영은 라플라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의심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그보다 먼저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세영은 언젠가 말했다. 어차피 맞을 거라면, 미리 알고 마음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아. 도현은 그 말에 동의했다. 동의는 진심이었다. 지금 그는 그 진심이 어디까지 자기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차는 다시 움직였다. 협력사의 일은 짧게 끝났다. 일을 마치고 나오자 날이 저물어 있었다. 그는 차로 돌아가는 대신, 전면 유리가 그려준 경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언제부터 걷고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걷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걷고 있는 도중에 알았다.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단말이 그 거리의 이름을 띄웠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떠 있었다. 사용자는 이곳에서 한 사람과 대화하게 됨.
3장 — 자유의지 원주의자¶
집회는 도현이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깃발도 구호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어두운 광장 가장자리에 흩어져 있었다. 어떤 이는 술병을 들고 벤치에 누워 있었고, 어떤 이는 벽에 기대 떨고 있었으며, 또 어떤 이는 작은 카메라를 자기 얼굴 앞에 들고 큰 동작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카메라 앞의 남자는 자신이 라플라스가 정해준 약혼자를 떠나왔다고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컸지만, 눈은 카메라가 아니라 자기 발끝을 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그 옆의 누군가가 그를 달래며, 너는 예정보다 먼저 살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젊은 남자가 자신의 사망 예정일을 종이에 적어 불태우고 있었다. 종이는 잘 타지 않았다. 그는 라이터를 몇 번이나 다시 켰다.
도현은 그들에게서 묘한 냄새를 맡았다. 술 냄새, 비에 젖은 옷 냄새, 그리고 두려움의 냄새였다. 그는 이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지금 가까이서 보니, 경멸할 만한 점이 더 분명히 보였다. 그들은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은 라플라스에서 도망치느라 라플라스만 보고 있었다. 깨야 할 예측이 없으면, 그들에게는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 후드를 쓴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신발이 젖어 있었다. 얼굴은 젊지도 늙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도현 옆에 와서 같은 방향을 보고 섰다. 한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여기 어울리지 않네요." 회색 후드의 사람이 말했다. "옷이 너무 깨끗해요."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플라스가 보냈죠." 그 사람이 말했다. 비난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여기 오는 사람 절반은 라플라스가 보낸 사람들이에요. 깨러 온 게 아니라, 깨질 거라고 적혀서 온 사람들."
"나는 깨러 오지 않았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나는 이 경로를 막으려고 왔습니다."
그 사람이 옅게 웃었다. "그럼 막아지던가요."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당신 같은 사람을 알아요." 그 사람이 말을 이었다.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사람. 모든 게 들어맞아서, 들어맞는 게 당연해진 사람. 당신은 라플라스를 따른다고 생각하죠. 따른다는 건 명령에 복종한다는 뜻이고, 명령받은 적이 없으니까 자기는 자유롭다고."
"그렇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라플라스는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매번 봤고, 매번 납득했고, 매번 골랐습니다. 강제로 끌려간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는 끄덕임이 아니라, 들었다는 표시였다.
"당신은 라플라스를 따르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말했다. "라플라스가 맞았다는 사실을, 당신이 매번 완성해주고 있는 거예요."
도현은 그 문장을 들었다. 문장은 그의 안으로 들어와서,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는 그것을 밀어내려 했다.
"완성이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내가 그 선택을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겁니다. 라플라스가 맞춰서 한 게 아니라, 내가 한 게 맞은 겁니다."
"그 판단을 라플라스가 먼저 알았잖아요."
"먼저 알았다고 해서, 내 판단이 아닌 건 아닙니다."
"그래요." 그 사람이 말했다. "그게 정확히 문제예요. 당신 판단이 맞아요. 당신은 진짜로 골랐어요. 매번. 그런데 그 고름이, 한 번도 라플라스를 벗어나질 않았어요. 평생. 한 번도. 당신은 자유롭게 골랐고, 자유롭게 고른 게 전부 적혀 있었어요. 그럼 묻고 싶어요." 그 사람은 도현을 보았다. "명령이 없으면, 운명이 아닌가요?"
도현은 답을 찾지 못했다.
광장 저편에서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술병을 던졌고, 유리가 깨졌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도현은 그 광경을 보며, 자신의 경멸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라플라스를 깨겠다면서 술병을 깨고 있었다. 무작위가 자유라고 믿으면서, 가장 값싼 무작위에 매달리고 있었다. 던질 술병이 떨어지면, 그들은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저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저건 그냥 망가지는 겁니다."
"알아요." 회색 후드의 사람이 말했다. 처음으로 그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났다. "나도 알아요. 깨는 게 자유라면, 깨려는 그 마음도 라플라스가 알았을 테니까. 던질 술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라플라스 없이는 반항할 곳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도 라플라스를 봐요. 당신처럼. 다른 방향으로 볼 뿐이에요."
그 사람의 눈에는 도현이 본 적 없는 것이 있었다. 광장의 다른 이들에게도 있는 것이었다. 절망도 허세도 아니고, 그 둘 아래에 깔린 이상한 생기였다. 무언가가 정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믿을 때만 생기는 빛. 그것은 어리석은 빛이었고, 도현은 그 어리석음을 알아보았으며, 동시에 그것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단말이 진동했다. 도현은 보지 않았다. 그는 진동의 횟수를 셌다. 두 번이었다. 그는 화면에 무엇이 적혀 있을지 알았다. 23시 12분. 경로 변동 없음. 그는 화면을 켜지 않은 채로, 그 문장을 떠올렸다. 떠올린 문장과 적힌 문장 사이에 틈이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은 곧 누구를 만나요." 회색 후드의 사람이 말했다. "그게 누구인지는 나도 몰라요. 라플라스가 당신한테만 보여줬을 테니까."
도현은 그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다. 마치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의 얼굴 같았다. 어쩌면 정말 모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라플라스를 끄고 사는 사람의 얼굴이란 저런 것인지도 몰랐다.
저편에서 경광등이 켜졌다. 사이렌은 없었다. 보안 드론 두 대가 광장 위로 떠올랐다. 붉은 점이 천천히 사람들 위를 훑었다.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4장 — 대안 없는 승인¶
드론은 한 사람을 향했다.
도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기 전에 알았다. 회색 후드. 젖은 신발. 방금까지 그와 같은 방향을 보고 서 있던 사람. 드론의 붉은 점이 그 사람의 등을 찾았고, 그 사람은 달리기 시작했다. 도현이 본 1장의 장면이, 지금 눈앞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 사람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좁은 골목이었다. 도현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화면에서만 본 골목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 골목 입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거기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걸어왔고, 도착해 있었다.
도현의 시야에 여러 개의 경로가 동시에 떠올랐다. 라플라스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첫째 갈래. 그는 단말의 신고 버튼을 누른다. 드론에 위치를 전송한다. 그 사람은 붙잡힌다. 도현의 삼십 년은 그대로다. 승진, 결혼, 세영, 평온한 죽음. 모두 자리에 있다.
둘째 갈래. 그는 돌아선다. 골목을 등지고 큰길로 나간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이 된다. 집으로 간다. 세영이 차린 저녁이 있다. 삼십 년은 그대로다.
셋째 갈래. 그는 단말을 끈다. 손목에서 풀어 바닥에 던진다. 라플라스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화면은, 단말을 끄는 그의 손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끄는 선택조차 경로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갈래의 끝에서도, 그는 결국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넷째 갈래. 그는 단말을 부순다. 발로 밟는다. 화면은 그가 단말을 밟는 모습과, 밟은 뒤에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함께 그렸다.
모든 갈래가 보였다. 그는 분명히, 다른 것을 고를 수 있었다. 신고할 수 있었다. 돌아설 수 있었다. 집에 갈 수 있었다. 화면은 그 모든 가능성을 거짓 없이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의 아래에서, 경로는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어느 길로 가든, 그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신뢰도 100%.
그는 골목 입구에 서서, 자신의 손을 보았다. 신고 버튼은 손가락 하나 거리에 있었다. 그는 그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누르지 않는 것이, 그 순간 누를 수 없는 것과 같은지 다른지, 그는 생각했다.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그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왜 쫓기는지도 몰랐다. 그 사람을 구한다고 세상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은 광장에서 술병을 깨던 무리 중 하나였고, 도현은 그 무리를 경멸했다. 연민도 아니었다. 그는 그 사람이 불쌍하지 않았다. 각성도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무엇을 깨닫지 않았다. 깨달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다 적혀 있었다.
그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회색 후드의 사람이 한 말이었다. 당신은 라플라스가 맞았다는 사실을 매번 완성해주고 있어요. 평생 한 번도, 그는 라플라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벗어나려 한 적조차, 벗어나려 하지 못한 채로 벗어나려 했다. 지금 그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또 하나의 완성이었다. 라플라스가 옳았다는 또 하나의 증거. 신뢰도 100%의 또 한 줄.
그런데 이번에는, 그 완성이 그의 이익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라플라스를 따른 것은, 따르는 편이 그에게 좋았기 때문이다. 후회를 줄였고, 손실을 피했고, 관계를 지켰다. 그는 라플라스가 맞아서가 아니라, 맞는 게 자기에게 이로워서 따랐다. 그리고 그 이로움이 그의 납득이었고, 그의 납득이 그의 자유였다.
지금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일에는 이로움이 없었다. 손실뿐이었다. 그가 평생 피해온 모든 것, 후회와 손상과 실패가 그 골목 끝에 있었다. 라플라스는 그가 그것을 고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그것을 고르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채로,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느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일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사실도 정해져 있는가.
질문은 문턱이었다. 그는 그 문턱을 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그 위에 서 있었다. 골목 안에서, 그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가까웠다. 그 사람은 어딘가에 몸을 숨길 곳을 찾고 있었다. 드론의 붉은 점이 골목 입구의 벽을 더듬기 시작했다.
도현은 시간을 보지 않았다. 단말은 손목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그는 진동을 무시했다. 그는 화면을 켜지 않았다. 지금 몇 시인지, 그는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11시 42분이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화면에서 확인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골목 안쪽에서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의 눈에는, 광장에서 보았던 그 생기가 여전히 있었다.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의 눈. 어쩌면 도현이 신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눈. 그 사람은 도현이 어느 갈래를 고를지 몰랐다. 도현만 알았고, 라플라스만 알았다. 그 사람은 몰랐기 때문에, 두려워하면서도 자유로웠다.
도현은 한 발을 움직였다. 골목 안으로.
5장 — 예측 일치¶
골목은 좁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어깨가 닿을 만큼이었다.
도현은 벽과 버려진 적재함 사이의 틈을 보았다. 그는 그 틈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사람은 잠깐 망설였다. 도현은 다시, 말없이, 그 틈을 가리켰다. 그 사람이 틈 안으로 몸을 접어 넣었다. 도현은 그 앞에 섰다. 등을 골목 입구 쪽으로 돌리고, 자기 몸으로 틈을 가렸다. 그는 평범한 행인처럼 서 있으려 했다. 길을 잃고 멈춰 선 사람처럼.
드론이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 점이 도현의 등을 훑었다. 점은 그의 어깨를 지나고, 벽을 지나고, 적재함의 모서리를 지났다. 도현은 숨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더 부자연스러울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드론의 점이 그의 발치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의 등 뒤, 틈 안에서, 그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가늘고 빨랐다. 도현은 그 숨소리를 등으로 느꼈다. 따뜻한 것이 그의 등에 닿아 있었다. 사람의 몸이었다.
드론이 멈췄다. 한참을 그 자리에 떠 있었다. 붉은 점이 도현의 얼굴 옆 벽에 맺혔다. 도현은 점을 보지 않았다. 그는 골목 끝의 어둠을 보았다. 점이 그의 얼굴 위로 천천히 지나갔다. 그의 뺨에 붉은빛이 스쳤다. 그리고 점이 꺼졌다. 드론이 방향을 틀었다. 날개의 바람이 도현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드론은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다. 붉은빛이 멀어졌다.
골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손목 단말이 진동했다. 한 번. 길게.
도현은 단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았다. 화면에는 한 문장이 떠 있을 것이었다. 그는 그 문장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안다는 것과 본다는 것을 구별하고 싶었다. 그는 화면을 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틈 안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오라는 뜻이었다. 드론이 갔으니, 이제 나와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 손을 화면으로 확인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고, 그는 손이 움직인 다음에 그것을 보았다.
그 사람이 틈에서 나왔다. 옷이 흙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잠깐 마주 보았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묻는 말도 없었다. 다만 도현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그 눈에는 광장의 생기가 아니라, 다른 것이 있었다. 도현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돌아서서, 골목 끝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사라졌다.
도현은 혼자 남았다.
그는 그제야 단말을 보았다. 화면에는 그가 예상한 문장이 있었다.
예측 일치.
차가운 두 글자였다. 그 아래에 작은 글씨가 따랐다. 23시 42분. 사용자는 추적 대상을 은닉함. 경로 갱신 완료. 그리고 새로운 삼십 년이 화면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승진은 없었다. 결혼은 없었다. 세영은 없었다. 거칠고 짧은 경로가 펼쳐졌다. 라플라스는 틀리지 않았다. 도현은 예측을 깨지 못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화면에 미리 적혀 있던 그대로였다.
그는 졌다. 무너진 미래가 그것을 증명했다. 라플라스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고, 오늘도 틀리지 않았다.
그는 이겼다. 그는 그 사실을 화면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화면에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손을 움직였다는 것은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가 화면을 보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는 것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라플라스는 그의 손의 궤적을 알았다. 라플라스는 그가 무엇을 할지 알았다. 라플라스가 알지 못한 것은, 그가 그 일을 하는 동안 화면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보지 않음 속에서 그 행동이 그에게 어떻게 느껴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손을 다시 보았다. 방금 사람을 향해 뻗었던 손이었다. 그 손은 라플라스가 그린 궤적을 정확히 따랐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리고 그 손이 움직이는 동안, 도현은 처음으로 그것을 누가 시킨 일로도, 누가 보여준 일로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그가 한 일이었다.
그는 화면을 닫았다. 골목은 어두웠다. 단말의 진동은 멈춰 있었다. 그는 큰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화면이 무엇을 보여줄지, 그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 그는 화면을 켜지 않았다. 그는 걸었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그가 그것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어 읽기¶
- 결과지 — 이미 정해진 결과 앞에서 선택과 시간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 문학적 사유실험으로, 「라플라스의 개인 비서」와 가장 가까운 창작 계열이다.
- 솔립시즘의 방 — 기술이 만든 폐쇄 세계 안에서 행위자의 윤리와 자기기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주는 문학적 사유실험이다.
- 마지막 발걸음의 형이상학 — 선택이 시간의 흐름, 의식의 지속, 신체의 이동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조건을 분석해, 라플라스의 예측된 선택 문제를 존재론적으로 보강한다.
- 되돌아 작용하는 결과 — 주체를 행위의 최초 원인이 아니라, 자신을 만든 조건에 다시 개입하는 결과로 정의해 도현의 마지막 행동을 해석할 수 있는 개념적 배경을 제공한다.
- 태어나기 전의 원고 — 태어나기 전에 설계된 조건이 한 사람의 현재 자기해석권을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는지 묻는 작품으로, 예측된 삶과 설계된 삶의 인접성을 보여준다.
작성일: 2026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