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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뒤 피해자는 어디에서 다시 사라지는가

평화가 끝내는 것과 끝내지 못하는 것

휴전 협정에 서명이 끝나고 마지막 포성이 멎으면, 공적 시선은 전쟁의 종결을 평화의 시작으로 기록한다. 폭격이 멈춘 자리에는 무너진 집과 사라진 사람과 입증되지 못한 손실이 남는다. 종전은 폭력의 진행을 중단시키지만, 그 폭력이 남긴 피해의 회복은 별도의 절차와 시간을 요구한다. 이 글의 중심 논제는 다음과 같다. 평화는 폭력의 중지만으로는 완성 전 단계에 머물고, 배상·실종자 확인·복구·증언의 절차가 빠지면 피해자는 평화의 행정 속에서 두 번째로 삭제된다.

피해자의 첫 번째 소멸은 전장에서 일어난다. 죽음, 실종, 파괴가 그것이다. 두 번째 소멸은 평화의 행정에서 일어난다. 배상 신청이 각하되고, 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고, 복구 예산이 집행 완료로 종결되고, 실종자 명부가 미확인으로 닫힐 때, 피해자는 절차에 의해 사라진다. 전쟁 연구는 전투의 정당화와 자동화를 오래 다뤄왔지만, 전투 이후 피해자가 절차 속에서 비가시화되는 과정은 분석의 사각에 남아 있었다. 이 글은 그 두 번째 소멸의 구조를 다룬다.

2차 비가시화의 운용 정의

이 글에서 2차 비가시화는 다음을 뜻한다. 전투의 종결 이후, 피해자가 배상·복구·기록의 행정 절차에서 누락되거나 각하되거나 종결 처리되면서 공적 가시성을 다시 잃는 과정이다. 1차 비가시화가 폭력의 물리적 결과라면, 2차 비가시화는 평화의 제도적 결과다. 둘은 원인이 다르고 효과는 같다. 피해자가 셈 바깥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함께 고정해야 할 개념은 평화의 행정이다. 평화의 행정은 종전을 행정적으로 마감하는 절차들의 묶음을 가리킨다. 특별법의 적용 시한, 배상 청구의 소멸시효, 지원 사업의 종료일, 복구 완료의 행정 지표가 여기에 속한다. 평화의 행정은 전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장치다. 동시에 그것은 피해의 시간을 행정의 시간에 맞춰 강제로 종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피해의 회복은 행정의 달력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이 속도 차이가 2차 비가시화가 발생하는 구조적 틈이다.

절차는 어디에서 피해자를 떨어뜨리는가

한 사람이 배상 신청 창구 앞에 서 있다. 그는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가족이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창구의 직원은 피해를 입증할 서류를 요구한다. 등기부, 진단서, 사망진단서, 거주 증명. 그가 가진 것은 기억뿐이다. 폭력은 그의 피해를 만들었고, 같은 폭력이 그 피해를 입증할 모든 문서를 함께 태웠다. 이 장면은 평화의 행정이 피해자를 떨어뜨리는 지점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첫 지점은 입증책임이다. 배상 절차는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 인과관계, 손실 규모를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전쟁은 입증의 조건 자체를 파괴한다. 등기소가 불타고, 의료 기록이 사라지고, 증인이 사망하고, 가해의 지휘 계통이 해체된다. 입증을 요구하는 절차와 입증을 불가능하게 만든 폭력이 같은 사건에서 나왔는데, 절차는 그 사정을 고려 밖에 둔 채 입증 실패를 청구 기각으로 번역한다. 증거주의가 평시의 공정성 장치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이, 전후의 피해자에게는 배제의 문턱으로 작동한다.

두 번째 지점은 시간의 종결이다. 소멸시효와 특별법 시한은 청구 가능성을 유한한 시간 안에 닫는 장치다. 전후의 피해자가 청구를 제기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시효보다 길 수 있다. 점령이 지속되거나, 피해자가 국경 밖에 있거나, 증언이 사회적으로 발화 가능해지기까지 한 세대가 걸리는 경우, 시효는 피해자가 말할 수 있게 되기 전에 청구의 문을 닫는다. 이때 종결은 분쟁의 해소이기 이전에 피해의 행정적 폐기로 작동한다.

세 번째 지점은 지표의 완료다. 복구는 행정 지표로 측정된다. 도로 개통률, 주택 재건 호수, 예산 집행률이 그것이다. 지표가 목표치에 도달하면 행정의 시간 안에서 복구는 끝난다. 귀환하지 못한 주민, 재건되었지만 비어 있는 집, 끊어진 생계와 돌봄의 관계망은 지표 밖에 남는다. 여기서 작동하는 논리는 재난 이후의 책임 공백과 같다. 재난 보도는 언제 끝나는가가 보도의 책임을 가시성의 소멸보다 복구의 시간이 닫히는 시점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전후 복구의 책임도 지표의 완료보다 생활세계의 회복을 기준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지표는 복구의 종료를 선언할 권한을 갖지만, 그 선언은 피해의 종료와 구별된다.

네 번째 지점은 확인의 종결이다. 실종은 죽음과 다른 시간을 갖는다. 죽음은 시신과 함께 확정되지만, 실종은 확정 이전 상태로 지속된다. 행정은 실종자 명부에 기한을 부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미확인 상태로 명부를 닫거나 사망으로 의제 처리한다. 명부가 닫히는 순간 실종자는 찾는 일의 대상에서 통계의 항목으로 바뀐다.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절차가 끊기면, 남은 가족은 애도할 대상도 추적할 절차도 갖지 못한 채 남는다. 확인 전의 죽음은 책임의 주소를 갖지 못하고, 주소를 잃은 책임은 누구의 의무로도 귀속되기 어렵다.

비용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번역된다

전쟁의 비용은 전투가 끝난 뒤에도 계속 번역된다. 호르무즈의 보험료는 왜 전쟁의 언어가 되는가는 전쟁이 보험 견적서와 운임표와 유가와 생활물가로 번역되는 경로를 분석했다. 같은 번역의 논리는 종전 이후로도 이어진다. 다만 전후의 번역은 방향이 반대다. 전시의 비용이 시장 가격을 통해 사회 전체에 분산되었다면, 전후의 비용은 입증과 청구의 부담으로 피해자 개인에게 다시 집중된다. 사회가 분담했던 비용이 평화의 행정을 통과하면서 피해자의 어깨로 되돌아온다.

이 재집중은 절차의 설계 효과다. 배상 재원은 유한하고, 행정은 청구를 선별해야 하며, 선별의 기준은 입증 가능성이다. 입증할 수 있는 피해가 우선 배상되고, 입증이 어려운 피해는 뒤로 밀리거나 탈락한다. 그 결과 가장 철저하게 파괴된 피해, 곧 기록과 증인과 공동체가 함께 사라진 피해일수록 배상에서 멀어진다. 폭력의 강도와 배상의 접근성이 반비례하는 이 역설이 2차 비가시화의 핵심 동력이다.

증언의 보존도 같은 구조 안에 있다. 증언은 입증의 자료이면서 공적 기억의 토대다. 증언을 누가 수집하고, 어디에 보관하며, 어떤 절차로 다시 호출할 수 있는지가 설계가 빠지면, 증언은 기록되는 순간 그 주체의 통제권에서 멀어진다. 기억 인프라의 독점이 보여주듯, 기록을 보유한 쪽이 증언의 권위를 독점하면 피해자는 자기 증언의 저자 자리에서 밀려난다.

보존된 증언은 보호인 동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배상 심사, 재판, 행정 재심이 같은 피해자에게 같은 사건을 거듭 진술하게 만들 때, 증언은 재외상의 통로로 바뀐다. 한 번의 증언이 여러 절차에서 효력을 갖도록 연결 구조가 빠지면, 피해자는 자기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그 피해를 반복해서 다시 살아내야 한다. 전후 증언 절차의 과제는 증언을 남기는 단계 이후까지 이어진다. 증언의 주체가 그 증언에 대한 접근과 정정의 권한을 유지하고, 한 번의 진술이 여러 절차에서 받아들여지도록 설계하는 것까지가 과제다.

평화에는 종결이 필요하다는 반론

여기에는 강한 반론이 있다. 평화의 정착에는 청구의 종결과 사회적 망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피해의 청구를 무한히 열어두면 사회는 과거의 분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멸시효와 사면은 공동체가 적대의 회로를 끊고 공존으로 이행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피해자를 계속 절차 안에 등장시키는 일은 피해자를 피해자의 자리에 묶어두는 일이 될 수 있고, 계속 열리는 청구는 화해의 조건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 반론은 전환기 정의가 오래 마주해온 실제 딜레마를 정확히 짚는다.

반론이 타당한 지점은 분명하다. 절차에는 끝이 있어야 하고, 무한한 청구 가능성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안정을 낳는다. 그러나 이 반론은 종결과 삭제를 구분하지 못한다. 개별 청구를 닫는 것과 피해의 기록과 발언의 자격을 지우는 것은 다른 일이다. 잘 설계된 절차는 개별 배상 청구를 시한 안에서 종결하면서도, 증언의 기록을 보존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을 때 재심을 요청할 통로를 남기며, 피해자가 공적 기억 안에서 셈해질 자격을 유지시킨다. 사회적 망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청구의 종결을 정당화할 수 있을 뿐, 피해자의 가시성 자체를 폐기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종결을 설계하는 일과 피해자를 사라지게 하는 일을 같은 것으로 취급할 때, 평화는 두 번째 폭력의 행정적 형식이 된다.

책임의 층위를 구분하면 이 차이가 분명해진다. 전후의 책임은 법적 처벌 책임, 기록 책임, 복구 추적 책임, 증언 보존 책임, 신원 확인 책임, 제도 설계 책임으로 나뉜다. 처벌 책임은 가해의 주소를 묻고, 기록 책임은 피해의 존재를 보존하며, 복구 추적 책임은 생활세계의 회복을 확인하고, 신원 확인 책임은 실종자의 시간을 계속 붙든다. 제도 설계 책임은 이 책임들이 종전과 함께 흩어짐을 막는 절차의 형태로 묶는 책임이다. 거부권을 가진 무기는 누구의 양심인가가 무기의 정지를 기계의 양심보다 사전에 설계된 책임 절차로 읽었듯이, 전후 피해자의 가시성도 누군가의 선의보다 사전에 설계된 절차의 산물이어야 한다. 책임의 절차화에 실패하면, 책임은 종전과 함께 소멸한다.

이 책임들을 절차로 번역하면 평화의 행정은 다르게 설계된다. 입증책임은 피해의 유형에 따라 완화되거나 전환되어, 폭력이 문서를 파괴한 경우 정황과 증언으로 사실을 추정하는 조항을 둔다. 기록의 보존은 배상 절차의 종결과 분리되어, 청구 창구가 닫힌 뒤에도 증언과 자료를 관리하는 독립 기구가 남는다. 신원 확인은 명부의 시한과 무관하게 유해 발굴이 가능한 한 지속되고, 종결된 사안이라도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다시 열 수 있는 재심 통로가 유지된다. 이 설계의 목적은 청구의 무한 개방보다 청구의 종결과 피해자의 가시성을 분리하는 데 있다. 즉 절차가 닫힌 뒤에도 피해자가 공적 기억과 행정의 셈 속에 남도록 만드는 데 있다.

평화는 절차의 설계다

전쟁의 종결은 피해의 종결과 다르다. 폭격이 멎은 자리에서 피해자는 두 번 사라질 수 있다. 한 번은 폭력에 의해, 또 한 번은 그 폭력을 마감하는 평화의 행정에 의해. 입증책임이 입증의 조건을 파괴당한 피해자에게 부과되고, 시효가 발화의 시간보다 먼저 닫히고, 지표가 생활세계의 회복보다 먼저 완료를 선언하고, 명부가 신원 확인보다 먼저 닫힐 때, 피해자는 절차의 정상 작동을 통해 비가시화된다.

그러므로 평화는 폭력이 멈춘 상태를 넘어, 피해자를 절차 속에 계속 등장시키는 제도의 이름이다. 입증의 부담을 피해의 조건에 맞게 재분배하고, 종결의 시한과 기록의 보존을 분리하며, 복구의 측정을 지표에서 생활세계로 옮기고, 증언의 권한을 증언의 주체에게 남기는 설계가 평화를 완성한다. 피해자가 평화의 행정 속에서도 셈해질 때, 비로소 전쟁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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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정보

초안 작성: Claude CoWork · Claude Opus 4.8 · Max
검토·개고: ChatGPT · GPT-5.5 · 높음

인포그래픽

작성일: 2026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