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원인이 될 수 없는 인간: 자유의지, 궁극 책임, 그리고 책임의 재배치¶
1. 문제는 선택 주체의 형성 경로에 있다¶
인간의 행위는 스스로 형성하지 않은 성향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이 분석은 자유의지를 해체한 이후 책임을 재구성하려 시도했던 인과의 안쪽에서 책임을 다시 정의하기의 후속 질문에서 출발한다. 규명해야 할 핵심 논제는 행위자가 자기 원인의 주인으로 군림할 수 있는가이다. 의지적 선택의 전 단계를 역추적하면 주체의 자율적 권역 외부가 완벽하게 드러난다. 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을 판별하는 작업은 그 행위를 낳은 성향의 발생 인과를 추적하는 일로 수렴한다.
갈렌 스트로슨은 행위자가 특정 행동을 수행하는 근거를 그의 내재적 성향(Mental constitution)에서 찾는다. 주체의 성향은 행동의 작동 방식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기준점이다. 인간은 출생, 유전적 형질, 초기 사회화 환경의 결합을 통해 특정한 성향을 일방적으로 부여받는다. 자아가 성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자율적 개입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행동의 책임 유무를 따지기 전에 그 행동을 산출하는 기계 장치인 성향의 발생 처소를 규명해야 한다.
선택의 매 순간 작동하는 주체의 선호 체계는 행위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있다. 임의의 상황에서 대안을 검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주체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기억과 뇌의 생물학적 조건이다. 주체는 자신이 소유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선택하지만 그 가치관의 형성 과정에는 개입하지 못했다. 따라서 선택 행위가 실재한다는 사실은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로 기능하기에 불충분하다.
2. 궁극 책임의 성립은 자기 원인이라는 논리적 모순을 요구한다¶
도덕적 의미의 궁극 책임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자기 자신에 대한 최초의 인과적 시발점, 즉 자기 원인(Causa sui)이어야 한다. 자기 성향의 원인이 되려는 주체는 자기를 만들기 이전 상태에서 이미 특정한 판단 기준을 소유해야 한다. 존재하기 이전에 작동하는 판단 기준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인간이 자기 원인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은 개념적 모순을 내포한다.
기존의 성향을 반성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주체의 의식적 시도는 필연적으로 무한 소급의 덫에 갇힌다. 현재의 성향 N을 수정하려는 결정은 그 수정을 지시하는 상위의 성향 N-1에 의존한다. 상위의 성향 N-1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시 그 상위의 성향 N-2가 요구된다. 이 인과적 연쇄는 인간의 유한한 생물학적 시작점을 지나 과거의 무한한 시간 속으로 소멸한다.
자기 원인의 부재는 행위자에 대한 형이상학적 형벌 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 스스로 창조하지 않은 존재가 산출한 결과물에 대해 절대적인 도덕적 비난을 부과하는 조치는 정당성을 잃는다. 과실의 궁극적 기원은 언제나 주체의 통제 권역을 벗어난 선행 사건들에 배치된다. 정통적 책임론은 형이상학적 허구 위에 서 있다.
3. 결정론은 예정설과 구별되는 인과적 설명 구조이다¶
결정론은 사건의 발생 조건과 물리적 법칙의 선행적 제약을 논증하는 과학적 설명 구조이다. 이 개념은 미래의 결론이 신의 섭리나 신학적 목적론에 의해 미리 기록되어 있다는 예정설과 단절된다. 결정론과 예정설의 지적처럼, 결정론은 목적론적 종착지가 아닌 매 순간 작동하는 인과율의 누적적 지배를 의미한다. 주체는 원인의 연쇄를 집행하는 인과의 통로이다.
미래의 사건을 인간의 지성으로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과 사슬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물리 계의 복잡성과 데이터의 방대함은 인간 인지의 한계를 규정할 뿐, 자유의지가 개입할 형이상학적 틈새를 제공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은 설명 주체의 인지적 무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복잡성은 오직 인과적 추적의 기술적 난도만을 상승시킨다.
양자역학적 무작위성과 확률적 우연성 역시 주체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근거로 기능하지 못한다. 단순한 물리적 도약이나 무작위적 사건은 행위자의 의식적 제어와 무관하게 발생한다. 맹목적인 확률적 우연은 필연적인 기계적 인과만큼이나 주체의 책임 조건을 완벽하게 파괴한다. 도덕적 책임은 인과의 정밀한 통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4. 주체의 자기 통제 능력은 선행 조건들의 필연적 산물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전적으로 선택하고 기투한다는 실존주의의 자율성 명제는 인과적 사실에 의해 기각된다. 실존주의가 칭송하는 결단과 자기 형성의 역량 자체도 과거의 유전자, 환경, 격려의 경험이 축적되어 산출된 결과이다. 주체는 주어진 인과적 자원을 조합하여 자아를 재조직할 뿐이다. 주체의 기투는 선행 조건들이 허용한 궤도 내부에서 실행되는 제약된 운동이다.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여 성향을 교정하는 행위는 훈련과 제도적 보상 구조의 비대칭적 배치가 낳은 필연적 산물이다. 자기 통제는 어떻게 책임을 유예하는가의 분석처럼, 통제 노력 역시 외부 자극과 기억의 인과적 피보완성 내에서 작동한다. 주체는 인과율의 사슬 바깥으로 도피하여 독립적인 교정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의지의 단련은 의지 스스로의 힘이 아닌 의지를 둘러싼 환경의 강제력을 통해 집행된다.
자유를 주체의 주관적 욕망 실현으로 협소하게 파악하는 태도는 자아의 형이상학적 제약을 오인하게 만든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자신의 행동을 규정하는 선행 제약 조건을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수정하는 구조적 능력이다. 이 정의는 자유는 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가가 정립한 조건적 자유의 문법과 일치한다. 자유는 원인의 정확한 해독을 통해 도달하는 지적 성취이다.
5. 책임 개념은 비난 자격의 판별에서 인과적 조건의 관리로 재배치된다¶
형이상학적 궁극 책임의 소멸이 사회적 규범 언어의 전면적 폐기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유물론의 성공과 규범 언어의 환원 불가능성이 입증했듯, 인과적 사실에 대한 설명과 규범적 가치 평가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기능하는 독립적 언어 게임이다. 도덕적 비난 자격은 사라지지만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적 유용성으로서의 규범은 존속된다. 규범은 주체의 행동을 유도하는 사회적 신호등으로 작동한다.
책임 개념의 초점은 주체에 대한 도덕적 보복에서 행위를 유발한 객관적 조건의 수정으로 이동해야 한다. 개인의 악한 의지를 고립시켜 징벌하는 사법 체계는 범죄의 반복을 차단하는 데 실패한다. 범죄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의 논리처럼, 문제 행동은 주체의 내면적 결함이 아니라 신경생물학, 제도적 결핍, 환경적 배치가 교차하는 장차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처벌은 사회적 재설계의 하위 수단으로 격하된다.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실천적 책무는 위험도의 정밀한 관리와 공동체의 안전 확보라는 예방적 목적으로 전면 재편된다. 형벌의 정당성은 미래에 도래할 피해의 최소화라는 사회적 효용에서 도출된다. 법철학은 주체에 대한 무익한 비난을 멈추고 인간 행동을 형성하는 제도의 인과 관계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6. 사회적 존엄은 취약한 주체를 보완하는 제도적 투명성으로 완성된다¶
인간이 자기 원인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정당한 사회적 수용을 지시한다. 주체의 형성 과정이 가진 근원적 취약성과 피동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자에 대한 실질적인 배려와 연대의 조건이 확립된다. 존엄은 상호 의존성을 승인하는 공동체의 태도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원인의 사슬 속에서 연약하게 빚어지는 존재이기에 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자동화된 의사결정과 알고리즘 통치성이 전면화되는 디지털 조건은 책임의 사회적 성격을 명확하게 폭로한다. 복잡한 기술 환경 속에서 개인의 순수한 도덕적 결단과 주의 의무만을 촉구하는 방식은 작동 불가능하다. AI 시대의 책임 귀속 조건 변화에서 제시된 제도적 투명성의 확보만이 오류를 제어하고 주체의 한계를 보완한다. 책임은 검증 가능한 절차의 공적 아키텍처 내에 거주한다.
인간은 주어진 원인의 흐름을 매개하고 변형하는 실천적 주체로 기능한다. 인과의 내부에서 타인에게 도달하는 원인의 질을 개선하고 제도의 구조를 교정하는 행위가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과업이다. 사회는 주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비난을 영구히 중단하고 조건의 재설계를 집행하는 책임의 제도를 구현한다. 공동체는 인과의 안쪽에서 타인의 삶을 감당하는 구체적 절차를 통해 주체의 실존적 존엄을 비로소 완성한다.
작성 정보¶
초안 작성: Gemini · Gemini 3.5 Flash · Extended
검토·개고: ChatGPT · GPT-5.5 Extended Thinking
인포그래픽¶

작성일: 2026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