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벽에 프롬프트를 걸면¶
뒤샹(Marcel Duchamp)이 변기를 전시장에 가져왔을 때, 변기는 예술이 됐다. 제작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변기를 만든 사람은 뒤샹이 아니었고, 뒤샹은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예술로 만든 것은 변기가 놓인 장소, 그 장소에 부여된 해석 틀, 그리고 그 틀을 받아들인 공동체였다.
그렇다면 프롬프트를 미술관 벽에 걸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흰 벽에 액자가 걸린다. 액자 안에는 텍스트가 있다. "중세 기사가 현대 편의점에서 라면을 고르는 장면을 그려줘, 빛은 렘브란트 스타일로." 관람객은 그것을 읽는다. 어떤 사람은 웃는다. 어떤 사람은 멈춰 선다. 도슨트가 작가 의도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프롬프트는 이미 예술적 사물이 됐다. 배치가 해석을 불러왔고, 해석이 의도를 소급했다.
이 구조는 예술사에서 반복된다. 워홀(Andy Warhol)의 수프 캔은 상품이었고,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는 침묵이었으며, 온 카와라(On Kawara)의 날짜 그림은 반복 노동이었다. 이것들이 예술로 인정받은 것은 작가의 내면 상태 때문이 아니었다. 비평 언어가 그것을 둘러쌌고, 기관이 그것을 수용했으며, 관람 공동체가 그것을 예술 경험으로 처리했다.
의도는 그 과정의 입구에 있을 수 있지만, 인정의 조건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프롬프트 작성자가 인정받으려 한다면, 인정 기관은 무엇을 보는가. 텍스트 자체인가. 텍스트가 생성한 이미지인가. 그 이미지를 선택한 판단인가. 아니면 프롬프트를 미술관 벽에 거는 행위 자체인가.
뒤샹의 경우, 작품은 변기였다. 변기를 가져오는 행위는 작품의 일부였지만, 작품 자체는 물리적 사물이었다. 프롬프트의 경우, 산출물은 프롬프트인가, 이미지인가, 선택 행위인가.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불명확함 자체가 질문의 압력이다.
예술 인정은 언제나 경계 분쟁이었다. 사진이 등장했을 때 회화 공동체는 사진을 예술 범주 밖에 뒀다. 영화가 등장했을 때 같은 논쟁이 반복됐다. 디지털 아트, 넷 아트, NFT. 매번 기관과 비평 언어는 뒤늦게 재조정됐다. 인정은 선언이 아니라 협상이었다.
프롬프트는 지금 그 협상의 입구에 있다. 의도가 있다는 사실은 충분하지 않다. 배치를 만들고, 해석을 유도하고, 공동체의 수용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 없이 프롬프트는 입력값으로 남는다.
그런데 배치를 만드는 행위 자체는 누가 하는가. 프롬프트 작성자인가, 전시 기획자인가, AI 플랫폼인가. 뒤샹은 변기를 직접 전시장에 들고 갔다. 프롬프트 작성자가 이미지를 생성하고 갤러리에 제출할 때, 배치를 만든 주체의 수는 이미 셋 이상이다.
인정은 단수 주체를 원한다. 예술 제도는 작가라는 단일 귀속점을 필요로 한다. 프롬프트가 그 귀속점을 흐린다면, 인정 기관은 귀속점을 발명하거나 인정 범주를 바꿔야 한다.
둘 중 무엇이 먼저 일어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