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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자리

영점

밤 열한 시, 세진은 그날의 장부를 폈다.

작은 수첩에는 아침부터의 항목이 빼곡했다. 물 1.8리터, 보일러 미가동, 도보 4.2킬로미터, 발화 음절 추정 삼백 미만, 폐기물 0. 오른쪽에 환산값을 적고, 합산하고, 끝에 한 줄을 그었다. 0에 가까운 수. 그것을 보고 나서야 세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입김이 방 안에서 하얗게 풀렸다.

창밖에는 숫자가 떠 있었다.

세진이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 있었고, 도시 어디에서나 보였다. 두 번째 달처럼 창백하게, 다만 둥글지 않고 길게. 앞자리 31은 세진이 살아온 동안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었다. 소수점 아래 첫 자리, 둘째 자리도 거의 정지해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한참 아래, 사람들이 눈을 가늘게 떠야 겨우 읽히는 끝자리였다. 그 마지막 자리만이 재가 날리듯, 촛불의 심지 끝처럼 가늘게 떨렸다. P_extin. 인류가 끝까지 가지 못할 확률. 도시 전체가 매일 그 끝자리를 올려다보며 잠들었다.

세진은 장부를 덮고, 스탠드를 켰다.

그것이 하루의 마지막 항목이었고, 장부에 적지 않는 단 하나의 항목이었다. 전구 하나의 빛이 책상 위에 둥글게 고였다. 세진은 그 빛 안에 책을 펼쳤다. 동생 세영이 쓰던 낡은 철학책이었다. 표지가 닳아 제목의 금박이 절반쯤 벗겨졌고, 책등은 여러 번 꺾인 자국으로 부드러웠다. 미래를 향한 책임에 관한 책. 인류가 앞으로도 인류로 남으려면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묻는 책. 세진이 매일 밤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숫자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 책은 차분한 문장으로 적어두고 있었다.

세영은 그 책의 거의 모든 면에 연필로 무언가를 적어두었다. 밑줄, 물음표, 짧은 반박. 동의보다 시비가 많았다. 세진은 매일 밤 그 글씨를 따라 읽었다. 세영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이 그것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세진은 책의 마지막 장만은 펴지 않았다. 거기에 세영의 마지막 글씨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읽는 일을 삼 년째 미루고 있었다.

전구는 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면 세진은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끝자리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누웠다. 매일 밤 같은 죄였고, 같은 사면이었다. 세진은 자신이 하루 동안 세상에 보탠 무게를 0으로 맞추는 데 거의 성공했고, 오직 이 한 시간만 0을 넘었다. 그 사실이 세진을 살게 했고, 동시에 세진을 견딜 수 없게 했다.

내려간 자리

세영은 삼 년 전 봄에 죽었다.

병은 흔했고 빨랐다. 세영은 두 달 만에 가벼워졌고, 마지막 며칠은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세진은 병실 의자에서 잤다. 난방이 제한된 병동은 차가웠고, 세영의 손도 차가웠다. 세진은 그 손을 자기 외투 안에 넣고 데웠다. 데워지지 않았다.

세영이 멈춘 것은 새벽이었다. 모니터의 선이 길게 누웠고, 경보음이 울렸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세진은 비켜서서 창가에 붙어 있었다. 그때 세진은 창밖을 보고 말았다. 멀리, 도시의 숫자가 떠 있었다. 세진은 보지 않으려 했다. 보았다.

끝자리가 한 칸 내려갔다.

아주 미세하게, 누구도 자기 동생 한 사람 때문이라고 증명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세상 어느 계기로도 세영의 죽음을 그 하강에서 따로 떼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진은 보았다. 세영이 멈춘 그 순간에 숫자가 내려가는 것을. 한 사람이 사라지면 그가 마실 물도, 켤 불도, 뱉을 말도 함께 사라진다. 가장 안전한 인간은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다. 시스템은 세영의 죽음을 인류 생존에 대한 미세한 기여로 계산했고, 그 계산은 정확했다.

세진은 그날 이후 자신을 0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그것은 애도였고, 항의였고, 무엇보다 거래였다. 세영이 내려간 그 칸을, 세진이 자기 삶 전체를 눌러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처럼. 세진이 충분히 가벼워지면, 세영의 죽음이 세상에 보탠 그 작은 안도를 세진이 무를 수 있을 것처럼. 세진은 난방을 끊고, 말수를 줄이고, 발걸음을 셌다. 몸이 마르고 손끝이 늘 시렸다. 세진은 점점 세영이 죽던 새벽의 그 차가운 손을 닮아갔고, 그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세진이 끝내 0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한 시간의 전구뿐이었다. 세진은 그 한 시간을 미워했다. 그 한 시간이 세진이 아직 0이 아니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 시간이 세진이 아직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이기도 했다.

통지

통지는 종이가 아니라 벽에서 왔다.

화요일 아침, 세진의 집 단말에 안내가 떴다. 세진의 야간 전력 사용에 일정한 주기성이 확인되었고, 누적 패턴이 관리 기준선을 넘었다는 내용이었다. 세진은 이제 보류 등급의 양성 인자로 분류되었다. 양성. 검사지의 두 줄처럼, 무언가가 검출되었다는 뜻의 양성. 세진의 한 시간이, 매일 밤 그 둥근 빛이, 몇 백 일 동안 쌓여 마침내 하늘의 끝자리에 자기 이름을 새긴 것이다. 안내는 정중했다. 세진에게 가까운 보정 센터의 위치와, 권장 방문 일자와, 협조하지 않을 경우의 절차를 차례로 일러주었다.

세진은 오래 그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완벽하게 가벼워지려던 사람조차 너무 무거웠다. 세진은 거의 0이었고, 그 거의가 문제였다. 시스템은 세진의 거의 0을, 0이 아닌 것으로 읽었다. 세진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이 도시에서 무게 없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이해했다. 살아 있는 한, 세진은 끝자리를 떨게 하는 무엇이었다.

세영도 한때 양성 인자였다. 세진은 그것을 기억해냈다. 세영은 통지를 받고 웃었다. 언니, 나 드디어 위험한 사람이 됐대, 하고. 그때 세진은 그 웃음이 무서웠다. 지금은 그 웃음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세진은 권장 일자에 보정 센터에 가기로 했다. 거기서 세진은 한 시간의 전구를 끄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었다. 세진을 마지막 0이 아닌 자리에서 0으로 끌어내리는 법을. 세진은 외투를 입었다. 그리고 가방에 세영의 책을 넣었다. 왜 넣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불을 켜는 사람들

센터로 가는 길에, 세진은 그 건물을 보았다.

도시는 어두웠다. 사람들은 빛을 아꼈고, 거리의 조명도 최소한이었다. 그 어둠 한가운데 한 동의 낡은 건물이 모든 창에 불을 켜고 서 있었다. 일층부터 옥상까지, 빈 창 하나 없이. 그것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등불 같았고, 가까이 가면 도발 같았다. 세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 건물 위에서, 끝자리가 또렷이 한 칸 올라가 있었다. 저 안의 사람들은 그 떨림을 일부러 만들고 있었다.

순찰 드론이 건물 주위를 낮게 돌았다. 확성된 목소리가 해산을 명령했다. 건물 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빛만 더 환해졌다.

“처음 보면 다 그렇게 봐요. 미친 사람들이라고.”

세진 옆에 누군가 서 있었다. 두꺼운 외투에 머리가 짧고, 한쪽 뺨이 햇볕에 그을려 거칠었다. 도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도시 사람들은 햇볕도 아꼈다. 그 사람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가, 아직 켜지 않은 채 손바닥 안에서 굴렸다. 오래 쥔 물건처럼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재이예요.” 그 사람이 말했다. 세진이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 세영이 언니죠.”

세진의 발이 멈췄다.

“닮았어요. 세영이가 그랬거든요. 우리 언니는 자기를 0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재이는 건물의 빛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영이가 저 안에 있던 사람이에요. 한동안.”

세진은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발화 음절. 세진의 입 안에서 오래 쓰지 않은 말들이 굳어 있었다.

“오늘 밤에도 켤 거예요.” 재이가 건물 쪽으로 턱짓했다. “저거 보러 와요. 끄러 가는 길이라면, 한 번쯤 켜는 것도 보고 가요.”

세진은 자기 가방을 의식했다. 그 안의 책을. 세영이 한동안 저 안에 있었다는 말을. 세진은 세영이 양성 인자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세영이 저 빛을 만드는 쪽에 서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세진이 세영을 위해 자기를 끄는 동안, 세영은 세상을 향해 자기를 켜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짓을 해요.” 세진이 겨우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숫자가 올라가면, 정말로 누군가 더 죽을 수도 있잖아요.”

재이는 잠시 세진을 보았다. 비웃지 않았다. 손전등의 스위치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가 떼었다.

“그럴 수도 있죠.” 재이가 말했다. “그게 무서운 거예요, 우리도. 가벼운 일이 아니에요.” 재이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봐요. 저 끝자리가 진짜로 당신 전구를 보고 있을까요. 저 아래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자리를. 세상 어느 기계가 당신 방 하나를 도시 전체의 잡음에서 떼어내서 잴 수 있겠어요. 그냥 정한 거예요. 당신 몫이 이만큼이라고.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보고 있다고 우기는 거죠.”

세진은 그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세영의 글씨로.

보정실

보정 센터의 벽에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너의 모든 행위가 곧 만인의 행위다.

세진은 그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세영의 책 어딘가에서 본 옛 철학자의 말과 비슷했다. 다만 그 철학자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쓰려 했다. 네 행위의 준칙이, 네가 스스로 그것이 만인의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게 하라. 핵심은 의욕에 있었다.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 안에서 법을 세우는 일. 그 자유가 그 문장을 도덕으로 만들었다.

벽의 글귀에서 의욕은 지워져 있었다. 자유도 지워져 있었다. 남은 것은 사실의 진술이었다. 너의 행위는 이미 만인의 것으로 합산되고 있다는 통보. 거기에는 세진이 스스로 세울 법이 없었다. 따를 숫자만 있었다. 세진은 그 문장이 한때 인간을 자유롭게 하려던 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정반대의 용도로 벽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상담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진의 장부를 칭찬했다. 거의 모범적이라고 했다. 끝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인상적이라고. 다만 한 가지, 야간 전력의 주기성만 정리하면 세진은 완전히 관리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상담사는 화면을 돌려 세진에게 보여주었다. 감산 계획. 취침 시간을 앞당기고, 야간 조명을 차단하고, 그 시간의 활동을 대체할 권장 목록. 그 목록 어디에도 한 시간의 전구는 없었다. 한 시간의 책도 없었다. 세영의 글씨를 따라 읽는 일도 없었다.

“이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십니까.” 상담사가 물었다.

세진은 대답할 수 있었다. 책을 읽습니다. 죽은 동생의 책을. 그 애의 글씨를 보면서. 그 한 시간만 제가 아직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세진은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그리고 삼켰다. 그 한 시간을 말로 꺼내는 순간, 그것 역시 항목이 되고, 측정되고, 감산될 것이었다.

상담사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태어나지도 못할 세대. 그들을 위해 지금의 우리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라고. 세진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그 말은 옳았다. 적어도 옳은 자리에서 출발했다.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은 말이 없고, 우리에게 갚을 것도 없고,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자신을 맡긴다. 세영의 책도 그렇게 시작했다.

세진은 다른 말 없는 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다녀간 사람들. 세영처럼, 다녀가서 더는 말이 없는 사람들. 미래는 갚지 못하므로 우리에게 자신을 맡기고, 과거는 갚지 못하므로 우리에게 기억을 맡긴다. 시스템은 미래의 말 없음만 들었다. 세진은 과거의 말 없음을 들고 있었다. 세영을 끝자리의 한 칸으로 환산하지 말라는, 그 말 없는 요구를.

세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상담사는 세진을 붙잡지 않았다. 다만 화면의 권장 일자가 조용히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것을, 세진은 등 뒤로 느꼈다.

세영의 마지막 장

그날 밤, 세진은 마침내 책의 마지막 장을 폈다.

전구 아래에서, 종이는 따뜻한 빛을 머금었다. 본문은 끝나 있었고, 그 뒤 빈 면에 세영의 글씨가 가득했다. 연필이 눌린 자국이 깊었다. 세영은 그것을 죽기 한참 전에 썼을 것이었다. 글씨에 병의 흔적이 없었다. 세진은 손끝으로 첫 줄을 짚었다.

언니에게.

세진은 거기서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다.

언니, 이 책은 우리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해. 맞는 말이야. 나도 우리가 살아남으면 좋겠어. 그런데 저 사람들은 한 가지를 빼먹었어. 저 숫자는 우리가 죽으면 내려가. 가장 안전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거든. 아무것도 안 먹고, 안 켜고, 아무 말도 안 하니까. 그러니까 저 숫자가 0이 되는 날은, 우리가 구원받는 날이 아닐지도 몰라. 그냥 위험한 게 하나도 남지 않은 날일 수도 있어. 위험한 건 살아 있는 거야. 살아 있다는 건 늘 조금 초과하는 일이거든. 숨을 한 번 더 쉬고, 불을 한 번 더 켜고, 필요도 없는 걸 한 번 더 사랑하는 거. 저 숫자를 끝까지 내리려면 그 초과를 전부 없애야 해. 그런데 초과를 전부 없앤 사람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게 무서워.

세진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자기 장부에도 없는, 숨 한 번.

그러니까 언니. 제발 조금은 초과해. 나는 언니가 자꾸 자기를 0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무서워. 0이 된 언니는 안전하겠지. 그런데 그건 언니가 아니잖아. 그건 그냥 저 숫자가 바라는 거잖아. 언니가 매일 밤 그 한 시간만이라도 불을 켜고 있으면 좋겠어. 그게 언니가 아직 언니라는 뜻이니까. 끝자리가 올라가도 괜찮아. 그 한 칸이 언니야.

밑에는 날짜도, 다른 말도 없었다.

세진은 한참을 그 면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세영은 자기 죽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죽음이 어떻게 계산될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세영은 자신이 그 숫자가 없애고 싶어 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을 켜는 사람. 초과하는 사람. 그리고 세영이 정말로 죽었을 때, 세상은 세영의 글씨가 적어둔 그대로 했다. 끝자리를 한 칸 내렸다. 세진이 그것을 보았다. 세영의 마지막 장은, 세영이 죽기도 전에 쓴, 자기 죽음에 대한 부고였다. 세진이 삼 년 동안 펴지 못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 면을 읽는 일은, 그 새벽의 하강을 다시 한번 두 눈으로 증명하는 일이었으니까.

전구가 한 시간을 알리며 미세하게 깜빡였다. 끌 시간이었다.

세진은 끄지 않았다.

점등

세진은 일어나 거실의 불을 켰다.

그다음 부엌의 불을, 복도의 불을, 욕실의 불을 켰다. 삼 년 동안 한 번도 켜지 않았던 방의 문을 열었다. 세영의 방이었다. 세진은 그 방의 불도 켰다. 먼지가 빛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세진은 보일러의 잠금을 풀었다. 차가운 관 속에서 물이 데워지기 시작하는 소리가, 오래 잊었던 소리가 벽을 타고 올라왔다.

세진은 집 안의 모든 빛을 켰다.

작은 집은 금세 환해졌다. 창에서 빛이 새어 나가, 어두운 거리 위로 둥근 자국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아주 작은 등불이었을 것이다. 도시의 어둠에 찍힌 한 점. 그 낡은 건물에 비하면 우스울 만큼 작은. 그러나 세진의 것이었다. 세진은 외투를 벗었다. 데워지는 방 안에서, 삼 년 만에 세진의 손끝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세진은 창가로 갔다. 하늘에 숫자가 떠 있었다. 31. 그 아래로 정지한 자리들. 그리고 한참 아래, 떨리는 끝자리.

세진은 그것을 올려다보며 기다렸다. 올라가기를. 자기 집 안의 모든 빛이 그 끝자리를 한 칸 밀어 올리기를. 세영이 적었던 그 한 칸. 그 한 칸이 언니야.

끝자리가 떨렸다.

세진은 그것이 올라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칸 올라간 것도 같았고, 그 자리에서 본래부터 떨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세진의 집은 도시의 수많은 불빛 가운데 하나였고, 도시는 행성의 잡음 가운데 하나였다. 세상 어느 계기도 세진의 빛을 그 떨림에서 따로 떼어내지 못할 것이었다.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보고 있다고 우기는 거죠, 하던 재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시스템의 거짓이라면, 동시에 그것은 세진의 작은 자유이기도 했다. 측정될 수 없는 것은, 끝내 소유될 수도 없었다.

세진은 자기가 그 떨림을 만들었는지 영영 모를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름 안에서, 세진은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숫자의 채무도 채권도 아닌, 그냥 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한 시간 뒤에도 세진은 불을 끄지 않을 것이었다. 그다음 밤에도, 통지가 다시 와도. 끝자리가 올라가든 떨든, 그것은 이제 세진의 몫이 아니었다. 세진의 몫은 켜는 일이었다.

남은 빛

새벽이 오기 전, 세진은 켜진 거실에서 세영의 책을 무릎에 펴고 앉아 있었다.

밖에서는 어느 먼 동의 건물이 또 모든 창에 불을 켜는 중이었다. 도시의 어둠 위로 두 점의 빛이, 세진의 작은 창과 그 먼 건물이, 서로를 모른 채 같은 시간에 타올랐다. 드론의 낮은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하늘의 숫자는 그대로였다. 31. 그 아래의 정지. 그 한참 아래의 떨림.

세진은 그 떨리는 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것은 촛불 같았다. 혹은 재 같았다. 누가 보고 있어서 떠는 것인지, 본래 그렇게 생긴 것인지, 세진은 끝내 묻기를 그만두었다.

방은 따뜻했고, 빛은 둥글었고, 세진은 거기 있었다. 조금, 초과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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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년 6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