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왜 언제나 폐허를 필요로 하는가: 테크 제국이 발명한 고통의 화폐¶
테크 자본주의의 성장 서사는 고통에 면죄부를 발행하는 구조 위에서만 작동한다. 이 구조는 산업 자본주의가 "불가피성"의 언어로 제조업 노동자의 실존을 폐기했던 반세기 전의 방식과, 오늘날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역동성"이라는 단어로 수천 명의 퇴직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같은 면죄부의 두 판본이다. 어휘는 갱신되었지만 구조는 유지되었다. AI 대성장 국면이 가속화될수록 이 면죄부의 다음 판본은 더 빠르고, 더 비가시적이며, 더 정교하게 작동할 것이다.
같은 말이 두 번 울렸다¶
1977년 9월 19일, 오하이오(Ohio) 주 영스타운(Youngstown)의 캠벨 공장(Campbell Works) 노동자 약 5,000명은 출근길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영스타운 시트 앤 튜브(Youngstown Sheet and Tube)의 소유권을 인수한 라이크스 코퍼레이션(Lykes Corporation)은 생산을 시카고 인근 공장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이 날은 이후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로 불렸다. 5년 안에 40,000개의 일자리가 마호닝 밸리(Mahoning Valley)에서 사라졌다. 해고 소식은 지역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안전한 노동조합 일자리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2026년 5월, 저커버그는 메타(Meta) 전직원 메모를 통해 약 8,000명 해고와 약 7,000명의 AI 중심 조직 재배치를 발표했다.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AI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올해 추가 company-wide layoffs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메모에는 이 문장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우리 산업에서 본 가장 역동적인 시기다(This is the most dynamic I have seen our industry)." 같은 시기 엔비디아(NVIDIA)의 2025 회계연도 연간 매출은 1,305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4% 증가를 기록했다.
두 장면을 나란히 놓을 때 눈에 띄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언어다. 1977년의 발표문은 "불가피성"을 내세웠다. 생산성의 논리, 경쟁력의 논리, 구조 조정의 논리. 2026년의 메모는 "역동성"을 내세운다. AI의 역사성, 기회의 창, 산업 변혁의 언어. 두 언어는 다른 어휘를 사용하지만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시스템이 개별 생애에 부과하는 비용을 역사의 논리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 비용을 치르는 사람의 이름은 두 장면 모두에서 서사의 중심에 없다.
창조는 실제로 파괴를 먹고 자란다¶
기술 성장이 장기적으로 인류 전체의 물질적 조건을 끌어올린다는 주장은 상당한 역사적 근거를 가진 명제다.
요제프 슘페터(Joseph A. Schumpeter)가 1942년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에서 정식화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개념의 핵심은 이것이다. 자본주의는 내부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구조를 바꾸는 체계이며, 이 전복 과정 자체가 장기 성장의 동력이다. 인쇄술은 필경사를 대체했고, 자동차는 마부를 대체했으며, 디지털 유통은 오프라인 소매를 대체했다. 이 교체들은 개별 직업의 파괴를 동반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저렴하게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필리페 아기옹(Philippe Aghion)과 피터 호위트(Peter Howitt)의 창조적 파괴 성장 모형은 이 메커니즘을 이론화했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기술의 시장 지위를 박탈하는 "사업탈취 효과(business stealing effect)"가 다음 혁신의 유인을 만든다.
이 논리는 AI 기술에도 적용된다. 메타의 8,000명 해고는 같은 시기 AI 관련 역할로의 7,000명 재배치를 동반했다. 엔비디아의 기록적 매출은 AI 인프라 수요가 이미 독립적 성장 동력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기술 전환의 단기 비용이 장기 후생 이익보다 작다는 주장은, 역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할 때 명확히 반박하기 어렵다. 철강 노동이 사라진 자리에 서비스 경제가, 필름 현상소가 사라진 자리에 디지털 사진 산업이 성장했다. 장기 평균을 보면, 창조는 실제로 파괴를 먹고 자랐다.
이 입장을 약화시켜 반박하는 것은 논증의 정직성을 해친다. 기술 성장이 장기적으로 집합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주장은 방어 가능한 명제이며, 이 에세이의 비판도 그 명제를 기각하는 데 있지 않다. 비판의 지점은 다른 곳이다.
누가 폐허에 남겨지는가¶
집합적 이익의 실증은 개별 생애의 폐기가 그 이익의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제거하지 않는다.
영스타운의 한 노동자가 1977년에 해고되었을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50년 후 미국의 평균 실질소득이 상승했다"는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숙련이 경제적 의미를 잃은 신체, 공동체가 해체된 도시, 그리고 다음 생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긴박한 물음이었다. 시스템의 시간과 개별 생애의 시간은 같은 척도로 측정되지 않는다. 장기 평균이 오르는 동안 특정 집단의 구체적 삶은 전환 불가능한 방식으로 소진된다.
이 비대칭이 면죄부 서사가 작동하는 자리다. 1970-80년대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정치적 담론은 제조업 해체를 "구조 조정(restructuring)"이라고 불렀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제 경쟁의 압력, 시장의 논리, 효율화의 필연. 이 언어 체계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산출했다. 파괴의 원인을 탈인격화하는 것—결정을 내린 구체적 행위자들을 "시장의 힘"이라는 비인격적 행위자 뒤에 숨기는 것—과, 저항의 가능성을 언어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불가피한 것에 저항하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태도가 된다.
저커버그의 "역동성" 언어는 이 면죄부 구조의 현대적 판본이다. "역동적"이라는 단어는 기술 변혁의 긍정적 에너지를 가리킨다. 변화는 역동적이고, 역동적인 것은 좋은 것이며, 그 좋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구성원의 이탈은 조직의 건강을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 된다. 해고는 "성과 기반 관리(performance management)"의 언어로 재코딩된다. 1977년의 구조 조정이 외부 경쟁을 이유로 댔다면, 오늘날의 구조 조정은 내부 성과를 이유로 댄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시스템이 개별 생애에 부과하는 비용을 관리 언어로 정당화한다는 기능은 동일하다.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추적한 사제적 의미화 구조가 여기에서도 작동한다. 사제는 고통받는 자에게 고통의 원인을 외부의 구조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 결함으로 귀속시키는 해석을 이식한다. 고통을 외부 힘에 대한 저항 동기로 전환하는 대신, 자기 교정의 과제로 전환한다. 성과 기반 해고의 언어는 정확히 이 이동을 수행한다. 시스템의 전략적 결정이 개인의 능력 문제로 전환되는 순간, 구조적 책임은 소거된다. 니체의 계보학적 물음은 이 전환에 적용된다. 이 해석은 누가 발명했는가. 그것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반세기의 간격, 동형의 논리¶
두 입장—장기 집합 이익의 실증과 개별 생애에 대한 면죄부 구조 비판—은 같은 사실을 두고 다른 틀로 접근한다. 이 충돌의 구조를 명확히 해야 두 입장이 서로를 무한히 스쳐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충돌의 중심은 공약 가능성(commensurability)의 문제다. 장기 집합 이익과 단기 개별 손실은 동일한 가치 척도로 상호 대체될 수 있는가. 집합적 후생 증가가 특정 집단의 구체적이고 전환 불가능한 상실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경제학적 공리주의는 이 문제에 긍정으로 답한다. 칼도-힉스(Kaldor-Hicks) 기준은, 전체 이익이 충분히 크고 손실자에 대한 보상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면 그 변화는 효율적이라고 판정한다. 이 틀 안에서 영스타운의 5,000명 해고는, 장기 제조업 구조 조정이 전체 소비자 후생을 충분히 끌어올렸다면, 수용 가능한 비용이 된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이 보상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7년 이후 영스타운의 실업률은 수십 년간 전국 평균을 상회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시 인구는 전성기의 절반 이하다. 보상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 실제로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사실 사이에는 제도적 의지와 실제 이전 메커니즘의 거대한 공백이 있다. 면죄부 서사가 작동하는 것은 정확히 이 공백에서다. "시장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롭다"는 명제는 "따라서 지금의 파괴는 수용해야 한다"는 귀결로 이어지지만, 이 귀결이 성립하려면 시장이 실제로 손실자를 보상할 것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장기 이익의 서사는 현재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기능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 척도의 비대칭이다. 집합적 이익은 수십 년의 시간축 위에서 누적된다. 개별 생애는 그 시간축 안의 특정 구간에 위치한다. 1977년에 45세였던 영스타운 철강 노동자에게 "30년 후 미국 경제 전체의 후생이 상승했다"는 데이터는 현재의 손실을 복원하지 않는다. 그의 숙련이 경제적 의미를 잃은 것, 그의 공동체가 해체된 것, 그의 자녀가 그 도시에서 자랄 수 없게 된 것은 장기 평균 곡선이 상승한다고 해서 사후에 의미를 획득하지 않는다. 성장 서사는 이 시간적 비대칭을 감추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지금의 희생이 미래의 번영을 만든다"는 문장은, 희생하는 자와 번영을 누리는 자가 같은 사람인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그들이 다를 때, 이 서사는 비용의 비대칭 배분을 역사의 필연으로 위장한다.
성장 서사는 이때 고통을 계산 가능한 화폐로 바꾼다. 누가 지불했는지는 흐려지고, 무엇이 늘어났는지만 회계 장부에 남는다.
두 입장의 충돌은 결국 이 지점에서 갈린다. 낙관론은 집합 이익의 실증에서 개별 손실의 수용 가능성을 도출한다. 비판은 그 도출이 시간 척도와 보상 이행의 두 조건 위에서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반세기 전과 지금을 가르는 것은 이 조건의 충족 여부다.
전환 능력이 소멸할 때¶
두 입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판단 기준은 전환 능력(transition capacity)의 보존 여부다.
전환 능력은 단순한 재교육 프로그램이나 실업 급여를 가리키지 않는다. 파괴를 경험한 개인과 공동체가 새로운 경제적 맥락 안에서 의미 있는 참여의 가능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가의 물음이다. 전환 능력이 보존될 때, 파괴는 창조적 파괴의 의미를 획득한다. 전환 능력이 소멸할 때, 파괴는 단지 비용을 특정 집단에 영구 전가하는 메커니즘이 된다. 이 기준은 파괴 이후의 제도적 조건을 묻는다.
1977년 영스타운에서 전환 능력은 보존되지 않았다. 지역 사회의 노조와 종교 연합이 공장 노동자 공동 소유 방식의 재가동을 제안했다. 카터(Jimmy Carter) 행정부는 초기에 긍정적 신호를 보냈지만, 산업 로비의 압력 속에서 대출 보증을 철회했다. 제도적 전환 지원이 무너졌고, 노동자들은 다른 경로 없이 폐기되었다. 이것이 성장이 실제로 작동한 방식이었다. 파괴가 일어났고,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면죄부 서사만 남았다.
메타의 2026년 해고에서 전환 능력의 보존 여부는 진행 중인 물음이다. 7,000명 재배치가 AI 역할을 향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지만, 이 재배치 역시 새로운 성과 기준에 맞지 않는 이들의 이탈을 전제로 한다. 성장이 만드는 새 역할은 이전 역할을 잃은 사람들에게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전환 능력은 시장이 자동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며, 이 사실이 면죄부 서사가 계속해서 기능하는 이유다. 서사가 책임을 소거하는 동안, 전환의 조건을 실제로 만들 제도적 행위는 지연된다.
한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전환 능력의 보존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아니라 성장 조건론에 불과하며, 결국 더 나은 복지 국가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이 반론은 부분적으로 옳다. 이 글은 기술 성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면죄부 서사 비판은 단순한 정책 처방 이상이다. 면죄부 서사는 전환 능력의 보존을 시장의 자발적 부산물로 위치시킨다. 그 위치 설정이 보존의 의무를 구조적으로 회피하게 만드는 인식론적 조건으로 기능한다. 언어가 바뀌지 않으면 제도도 바뀌지 않는다.
AI 성장의 다음 판본을 예비하며¶
산업 자본주의의 폐허 서사가 테크 자본주의의 역동성 서사로 교체되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 AI 성장 국면에서 이 교체는 훨씬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엔비디아의 2025 회계연도 매출 1,305억 달러는 AI 인프라 투자 폭발의 표지다. 메타의 2026년 자본 지출 계획도 1,000억 달러를 훌쩍 넘는 규모로 제시된다. 이 규모의 투자는 특정 인지 노동의 단가를 급격히 낮추는 방향으로 흐른다. 코딩, 법률 문서 작성, 데이터 분석, 콘텐츠 제작, 고객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이 압력권 안에 있다. 슘페터적 메커니즘은 동일하게 작동한다. 새 기술이 기존 노동의 시장 가치를 박탈하면서 성장이 일어난다.
이 국면에서 면죄부 서사는 더욱 정교해진다. 러스트 벨트의 언어는 외부적 불가피성을 주장했고, 성과 기반 해고 언어는 내부적 능력 부족을 주장했다. AI 전환의 언어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활용하면서 세 번째 요소를 추가한다. 기술 발전 자체가 기업 재편을 넘어 인류 전체의 방향이라는 문명론적 서사다. 저커버그는 해고 메모에서 AI를 기업 재편의 중심 이유로 제시했고, 그 전환을 산업의 "역동성"이라는 언어로 설명했다. 파괴의 공지와 산업 미래의 선언이 같은 문서 안에 공존했다. 면죄부는 이제 개별 기업의 결정이나 시장의 논리를 넘어, 문명의 방향성으로 격상된다.
경고가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AI 전환의 속도는 러스트 벨트 해체보다 훨씬 빠르다. 제조업 구조 조정은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났고, 그나마 정치적 반응과 제도적 대응의 시간이 있었다. AI 기반 인지 노동의 대체는 몇 년 안에 구조적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전환 능력의 보존 여부를 논의할 시간이 압도적으로 짧다. 둘째, AI 전환의 폐허는 러스트 벨트의 폐허보다 비가시적이다. 공장이 닫히는 것은 지리적으로 확인 가능하고 정치적으로 동원 가능한 사건이었다. 소프트웨어 도구가 특정 인지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분산되고, 점진적이며, 개인의 경력 감소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폐허가 공간적으로 집중되지 않으면, 집합적 저항과 제도적 대응이 훨씬 어렵다.
성장이 폐허를 필요로 한다는 명제는 과장이 아니다. 성장 메커니즘의 핵심에는 기존 가치의 박탈이 있다. 문제는 파괴 이후 전환 능력이 누구에게 주어지고 누구에게 주어지지 않는가이다. 면죄부 서사는 이 물음을 "역동성"과 "불가피성"의 언어로 대체하면서, 배분의 정치를 역사의 논리로 위장한다. AI 시대의 다음 판본은 이 위장을 문명의 이름으로 수행할 것이다. 그 정교함에 앞서 물음을 고정해 두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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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정보¶
초안 작성: Claude · Claude Sonnet 4.6 · Adaptive Thinking
검토·개고: ChatGPT · GPT-5.5 Extended Thinking
참고자료¶
- Joseph A. Schumpeter,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Harper & Brothers, 1942)
- Philippe Aghion and Peter Howitt, "A Model of Growth Through Creative Destruction," Econometrica 60, no. 2 (1992)
- Friedrich Nietzsche,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
- NVIDIA, "NVIDIA Announces Financial Results for Fiscal Year 2025," Press Release (February 26, 2025)
- Reuters, "Meta CEO tells employees he does not expect more company-wide layoffs this year" (May 20, 2026)
- Reuters, "Meta shares fall on concerns over AI spending, legal scrutiny" (April 29, 2026)
- Youngstown Sheet and Tube Company 폐쇄 관련 역사 기록: Belt Magazine (2017), Bill Moyers.com (2017), Orion Magazine (2014) 등
인포그래픽¶

작성일: 2026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