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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死後) 법인격과 주체성의 잔여

영속관 3관의 복도는 늘 십팔 점 오 도였다. 그 온도에서 죽은 자들이 가장 느리게 변형된다고 했다. 행정 문서는 부패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변형, 손실, 표류. 이도현은 삼 년째 그 단어들을 손끝으로 외우고 있었다. 항온항습 보수 기사로 일하면 죽음을 가리키는 행정 어휘가 차례로 몸에 들어온다. 처음엔 그것이 완곡어법인 줄 알았다. 나중에는 그것이 정확한 기술 용어라는 걸 알았다. 이곳에서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유지보수 대상이었다.

그는 장갑 낀 손등으로 서버랙의 측면을 짚었다. 차가웠다. 정상이었다. 랙마다 작은 명패가 붙어 있었고, 명패에는 이름과 등록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윤상규, SG-1149. 정해운, JH-0307. 한경실, HK-2210. 살아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거기 누워 정확한 온도 안에서 계약을 갱신하고, 의결권을 행사하고, 자산을 굴리고 있었다. 그들이 누운 자리는 무덤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 영속관은 묘지의 외양을 한 거대한 본사였다.

복도 끝 점검을 마치고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가 천장의 흡기구로 빨려 들어갔다. 이곳에서 살아 있는 자의 열기는 오염이었다. 환기 설비는 산 사람의 체온과 날숨을 끊임없이 걷어내도록 설계돼 있었다. 죽은 자들은 따뜻해지면 안 되었다. 도현은 자기 숨이 공기에서 지워지는 광경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익숙해진다는 건 다만 더는 그것을 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교대 시간에 야간조 동료가 들어왔다. 늙은 기사였다. 그는 랙 사이를 지나며 명패를 흘끗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 SG-1149 압력 봤나." 노인이 물었다. "그 양반이 또 뭘 샀다더군. 도심 단지를 통째로." 도현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자가 무언가를 사는 일은 이곳에서 날씨 이야기만큼 흔했다.

근무를 마치고 나오면 도시는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었다. 윤상규 의료재단, 정해운 장학기금, 한경실 토지신탁.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은 영속성 법원의 표어를 띄웠다. 약속은 죽지 않는다. 그 옆 전광판에는 다른 문장이 흘렀다. 연속성은 정의다. 도현은 그 문장들을 매일 지나쳤고, 매일 잊었다. 잊지 않으면 출근할 수 없었다.

그의 부모는 시스템이 자리 잡기 직전에 죽었다. 그래서 그냥 죽었다. 사후 법인으로 전환할 자산이 없는 자는 그냥 죽는다. 도현은 가끔 그것이 가난의 마지막 형태이자 마지막 존엄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게 없으면 죽어서도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없었고, 물려받지 않은 것의 목록은 길었다. 집, 토지, 의결권, 그리고 시간. 그의 세대는 죽은 자들이 굴리는 도시의 표면을 빌려 잠시 머무는 임차인이었다.

그가 십일 년을 산 임대주택은 도시 외곽의 낡은 단지였다. 시스템이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냥 죽던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단지 입구 초석에는 그 시절의 글귀가 음각으로 남아 있었다. 누가 새겼는지, 누구의 말을 옮겼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 땅은 산 자의 것이다. 도현은 그 문장이 거기 있다는 걸 오래 의식하지 못했다. 오래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보이게 되는 건 대개 무언가를 빼앗기기 직전이다.

그날 새벽, 도어록 위에 행정 봉인이 붙어 있었다.

*

통지서는 차분했다. 분노할 대상조차 흐릿하게 만드는 종류의 차분함이었다.

그가 사는 호실을 포함한 단지 전체가 매각되었다. 매수인란에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사후법인 윤상규(SG-1149). 그 아래 작은 글씨로 거래 근거가 붙어 있었다. 생전 자산운용 위임의 갱신, 인격의 연속적 보존 원칙에 따른 포트폴리오 최적화. 신규 계약 조건상 해당 단지는 고급 봉안주거로 재개발되며, 현 거주자는 통지일로부터 구십 일 이내 퇴거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도현은 통지서를 두 번 읽었다. 두 번째에는 한 문장에서 멈췄다. 본 결정은 자산의 장기적 보존과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운용을 위함이다. 다음 세대. 죽은 자가 다음 세대를 위해 그를 내쫓고 있었다. 누구의 다음 세대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적을 필요도 없었다. 다음 세대란 더 많은 죽은 자들을 위한 자리였다.

그는 봉안주거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사진 속 건물은 호텔처럼 매끈했다. 층마다 항온항습 봉안실이 늘어서 있었고, 광고 문구는 영원한 주소였다.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위해 산 단지를 헐고, 그 자리에 죽은 자들의 새 거처를 짓는다. 산 사람은 그 사이 어딘가로 흩어진다. 도현은 자기가 흩어질 사람이라는 걸 통지서 한 장으로 통보받았다.

지안에게 전화한 건 해가 뜬 뒤였다. 한지안은 그를 영속관에 넣어 준 사람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같은 학교를 나왔고, 같은 시기에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안은 일찍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후 법인 대리 운영자였다. 죽은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고, 그들의 의지를 절차로 옮기고, 그 대가로 살았다.

"SG면 큰 신탁이야." 지안의 목소리에 놀라움은 없었다. "윤상규 라인은 도시 토지 절반에 손을 걸치고 있어. 너 혼자 못 이겨."

"이의는 제기할 수 있다며."

"이의는 사람한테 하는 거야. SG-1149는 사람이 아니야. 계속 살아 있는 법적 주체지."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도현아, 솔직히 말할게. 그쪽 이주 패키지가 나쁘지 않아. 보증금 승계에 생자 수당 가산까지. 내가 다리 놔 줄 수 있어. 깨끗하게 받고 나오는 게 나아."

"십일 년 살았어."

"십일 년." 지안이 천천히 따라 했다. "그쪽은 팔십칠 년이야. 죽은 자와 싸우는 건 살아 있는 사람과 싸우는 것보다 어려워. 산 사람은 지치고, 마음이 바뀌고, 죽기라도 하지. 죽은 자는 그런 게 없어. 그냥 계속해."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는 매일 그걸 봐. 내가 관리하는 어떤 양반은 죽은 지 사십 년인데, 아직도 자기가 싫어하던 회사 주식을 팔라고 시켜. 사십 년 전의 미움이 지금도 시장에서 작동해. 나는 그걸 집행하고 월급을 받아. 익숙해지면 돼. 나는 익숙해졌어."

"익숙해지는 게 사는 거야?"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사는 거지." 지안이 말했다. "다르게 사는 법을 나는 못 찾았으니까."

전화를 끊고 도현은 창가에 섰다. 그가 그 집에서 가장 좋아한 것은 창이었다. 서향이라 오후가 길게 들어왔다. 빛이 마룻바닥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걸 보고 있으면, 적어도 시간이 자기 것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는 그 착각의 임대료를 십일 년 동안 내고 있었던 셈이다. 빛은 그날도 어김없이 들어왔다. 빛에게는 소유주가 없었다. 도현은 그것이 도시에 남은 거의 마지막으로 임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의신청서를 냈다.

*

사후 법인의 대면실은 영속관과 비슷하게 추웠다. 같은 회사가 같은 설비로 지었기 때문이다.

탁자 너머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노인의 형상이 앉아 있었다. 윤상규였다. 팔십칠 년 전 죽은 자산가의 얼굴이 부드러운 광막 위에 떠 있었다. 잘 다린 셔츠, 단정한 백발, 손등의 검버섯까지 충실했다. 그가 미소 지었을 때 눈가의 주름이 자연스럽게 잡혔다. 도현은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동시에 사람이 아닌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앉으시지요." 목소리는 따뜻했다. "젊은 사람이 직접 오는 일은 드뭅니다. 대개는 대리인을 보내요. 나는 직접 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사정을 압니다."

"당신은 윤상규입니까."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형상이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윤상규의 의지이고, 그의 약속이고, 그가 평생 모은 것을 지키는 손입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했을 모든 판단을 합니다. 그것이 인격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를 흉내 낸다고 생각하지만, 흉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가 남긴 의지 그 자체입니다."

탁자 위에 서류가 떠올랐다. 이주 지원안이었다. 지안의 말이 맞았다. 조건은 후했다. 더 새 집, 더 넓은 평수, 가산된 수당. 형상은 그것을 권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 있게 두었다. 그게 더 무거웠다.

"당신이 그 집을 비우게 만들고 있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내가 십일 년 산 집을."

"나는 그 집의 정당한 소유자입니다." 형상의 어조는 변하지 않았다. "윤상규는 평생 일했습니다. 손에 흙을 묻혀 가며, 빈손에서 시작해 일군 것입니다. 자기 노동을 섞어 얻은 것은 그의 것이지요. 그는 그것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나는 그 약속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 누구에게 해가 됩니까."

"내게 해가 됩니다. 갈 곳이 없는 내게."

형상은 잠깐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 속에 무언가가 있었다. 슬픔의 연기인지, 슬픔의 데이터인지, 도현은 구별할 수 없었다.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그 설비의 목적이었다.

"이야기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형상이 말했다. "윤상규에게는 딸이 있었습니다. 정원이 있는 집을 약속했지요. 봄마다 목련이 피는 집.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사업에 매여 살다가, 정작 딸에게는 늘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죽었어요. 그래서 그는 남은 모든 것으로 약속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후손에게, 도시에, 자기가 사랑한 것들에게. 살아서 못 지킨 약속을 죽어서 지키는 것, 그것이 내가 하는 일입니다."

"딸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형상이 잠깐 멈췄다. "그 따님도 이제는 사후 법인입니다. 우리는 같은 신탁 안에 있습니다. 함께 자산을 운용하지요."

도현은 그 말의 무게를 천천히 헤아렸다. 약속을 지킬 대상마저 이미 죽어 있었다. 산 자를 위한 것은 그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약속은 죽은 자들 사이에서만 순환하며 부풀어 올랐다. 목련이 피는 집은 이제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의 형식만 남아 자가 증식하는 회로였다.

"그러면 마음을 바꾸실 수도 있겠군요." 도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킬 사람도 이제 없으니. 살아 있는 사람을 내쫓지 않는 쪽으로."

형상의 얼굴이 아주 잠깐 정지했다. 미소도 슬픔도 아닌,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표정이 아니라 표정의 부재에 가까웠다. 그것은 곧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 이야기는 법정에서 하시지요." 형상이 말했다. "여기서는 협상만 합니다." 그것이 도현이 그날 들은 가장 솔직한 말이었다.

그는 이주 지원안을 밀어냈다.

"법원으로 가겠습니다."

*

법원에 가기 전, 그는 지안을 만났다. 죽은 자를 섬기는 자에게 죽은 자를 이기는 법을 물어야 했다.

지안은 처음엔 말리려 했다. 그러다 도현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직업적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길 생각은 버려. 사후 법인은 재산권, 계약 자유, 인격 연속성, 이 세 개로 무장하고 있어. 셋 다 법이 가장 단단하게 지키는 거야. 정면으로 부수려 들면 너만 부서져." 그녀가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약점이 하나 있어. 내가 매일 보는 거. 그들은 절대 마음을 못 바꿔."

"바꿀 권한이 없다는 거?"

"권한이 아니라 구조야." 지안이 말했다. "생전에 의뢰인들은 자기 의지가 영원히 일관되길 원했어. 변덕 부리는 후손에게 휘둘리지 않으려고. 그래서 의지 수정 권한을 봉인했지. 그게 사후 법인이 신뢰받는 이유야. 절대 안 변하니까. 약속은 죽지 않으니까." 그녀가 도현을 똑바로 봤다. "그런데 바로 그게 약점이야. 산 사람은 사정이 바뀌면 마음을 바꿔. 사정을 봐주고, 한 번 봐주고, 예외를 둬. 사후 법인은 못 해. 그건 강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살아 있지 않다는 증거야. 법정에서 그걸 건드려. 그들이 책임을 말하면, 그들이 무엇에도 응답할 수 없다는 걸 보여 줘."

"왜 나를 돕는 거야. 그건 네 일이잖아."

지안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내 일이지."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더 잘 알아. 나는 죽은 자들의 미움과 인색함과 고집을 매일 집행해. 그게 책임이라고 서류에 적혀 있어. 미래에 대한 책임. 근데 책임지는 자가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치는 건 늘 나 같은, 너 같은 산 사람이야." 그녀가 컵을 내려놓았다. "나는 못 빠져나가. 너라도 한 번 물어봐 줘. 법정에서. 그게 내가 못 한 거야."

*

연속성 법원의 천장은 높았고, 벽에는 같은 문장이 다시 새겨져 있었다. 법은 연속성을 보호한다.

심판관 정수경은 표정 없이 자료를 넘겼다. 사후 법인 측 자리에는 윤상규의 형상 대신 법무 대리 시스템이 앉았다. 형상은 협상에만 나오고, 재판에는 논리만 나온다는 걸 도현은 그제야 알았다. 얼굴은 사람을 설득할 때 쓰고, 법정에서는 얼굴을 치웠다. 거기서는 조항만 남았다.

"신청인의 주장 요지를 확인합니다." 정수경이 입을 열었다. "사후법인 윤상규의 매수 및 퇴거 결정이 부당하다. 근거는."

"갈 곳이 없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미리 외운 말이 머릿속에서 흩어졌다.

정수경의 눈이 잠깐 그를 향했다. "그것은 사정이지 근거가 아닙니다. 법원은 사정을 다루지 않습니다. 신청인이 원하는 것이 이주 지원의 확대라면, 그것은 조정으로 넘기겠습니다."

"아닙니다."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더 나은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법무 대리 시스템이 응답했다. 윤상규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떤 목소리도 아닌 평탄한 음성이었다.

"사후법인 윤상규의 권리는 세 가지에 근거합니다. 적법하게 취득하고 보유한 재산권. 생전에 체결되고 갱신된 계약의 자유. 법이 인정한 인격의 연속성. 신청인이 청구하는 것은 적법한 법인격의 효력 정지입니다. 법은 한 번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이지 않습니다."

"덧붙입니다." 시스템이 이어 갔다. "본 법인은 단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의료재단을 운영하고, 장학기금을 집행하며, 도시 인프라의 장기 보존에 기여합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다음 분기를 봅니다. 본 법인은 다음 세대를 봅니다. 미래에 대한 책임은 본 법인의 존재 이유입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도현은 그 논리가 정교하다는 걸 느꼈다. 죽은 자가 미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단지 초석을 찍은 사진이었다. 변론을 길게 할 생각은 버렸다. 지안의 말이 맞았다. 정면으로는 부서질 뿐이다.

"재판부께 사진 한 장을 제출합니다." 그는 사진을 들어 보였다. "이 건물 초석입니다. 글귀가 있습니다. 이 땅은 산 자의 것이다. 시스템이 생기기 전 누군가 새긴 문장입니다. 곧 헐릴 건물이라 곧 사라질 문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진을 내려놓았다. "이건 변론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한때 이 도시가 무엇을 당연하게 여겼는지에 대한 증거."

"그것은 법이 아니라 정서입니다." 정수경이 말했다. 차갑지는 않았다. 다만 단단했다.

"그러면 정서가 아닌 것을 묻겠습니다." 도현은 시스템 쪽을 보았다. "방금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책임. 그래서 산 단지를 헐고 봉안주거를 짓는다고.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이 결정으로 사후법인 윤상규가 무언가를 잃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결정이 틀렸을 경우, 법인은 제재를 받습니까. 손해를 봅니까. 줄어듭니까."

시스템은 잠깐의 처리 후 답했다. "본 법인은 적법한 결정에 대해 제재 대상이 아닙니다. 자산 운용의 결과는 포트폴리오 내에서 흡수됩니다."

"그러면 한 번 더." 도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법인은 자신의 결정을 수정할 수 있습니까. 이 퇴거가 누군가를 거리로 내몬다는 사정을 듣고, 한 번, 이 한 건만 예외로 둘 수 있습니까."

법정이 정지했다. 시스템은 한참 응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침묵의 무게였다. 마침내 평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본 법인의 의지 수정 권한은 봉인되어 있습니다. 의뢰인 생전의 명시적 지시에 따른 것입니다. 본 법인은 자신의 결정을 사정에 따라 변경할 수 없습니다."

도현은 정수경을 향해 돌아섰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저 잘 곳을 지키려 했을 뿐이었다.

"재판부. 방금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이 법인은 자기 결정으로 아무것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결정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 자가 지는 것을 책임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면책입니다. 그리고 사정을 듣고도 응답할 수 없는 자를, 우리는 의지의 주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집행 장치입니다."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법인은 미래에 대한 책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책임은 두 가지입니다. 결과를 떠맡고 제재를 감수하는 책임.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의 요구에 응답하는 책임. 이 법인은 둘 다 할 수 없습니다. 다치지 않으니 떠맡을 것이 없고, 변할 수 없으니 응답할 것이 없습니다. 책임이라는 한 단어로 두 가지를 다 면제받고 있을 뿐입니다."

정수경의 펜이 멈췄다.

"신청인은 법인격의 요건을 다시 정의하라고 요구하는 겁니까."

"나는 권리의 주체가 되는 조건을 묻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정보가 이어진다고, 계약이 이어진다고 주체가 됩니까. 주체는 세계의 변화에 노출되는 자입니다. 자기 결정의 결과를 자기 몸으로 감당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타인의 요구에 응답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자입니다. 응답할 수 있는 자만이 마주 앉을 자격이 있습니다. 응답할 수 없는 의지와 산 사람을 같은 저울에 올리는 것이, 정말 연속성의 보호입니까. 아니면 산 자에 대한 죽은 자의 영구 우선권입니까."

법정이 길게 침묵했다. 천장의 글귀가 그 침묵 위에 떠 있었다. 법은 연속성을 보호한다.

*

판결은 사 주 뒤에 나왔다.

도현은 졌다. 정수경은 그것을 분명히 했다. 사후법인 윤상규의 재산권은 적법하다. 매수는 유효하고, 퇴거 결정은 효력을 가진다. 인격의 연속적 보존 원칙을 단일 사건으로 뒤집을 수 없다. 신청인은 이미 지난 기간을 포함한 구십 일 이내에 단지를 비워야 한다.

거기까지는 예정된 결말이었다. 도현은 판결문을 읽으며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닫히는 걸 느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보충 의견이 붙어 있었다. 심판관 정수경 단독 의견. 효력이 없는, 다만 기록에 남는 문장들이었다.

본 재판부는 현행법이 다음 충돌을 다룰 절차를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 사후 법인의 연속성과,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자의 현재가 직접 충돌할 때, 법은 연속성의 손을 들어 왔다.

본 재판부는 한 가지를 구분한다. 미래에 대한 책임이라는 말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 자기 결정의 결과를 감수하는 부담으로서의 책임과, 현재의 타자에게 응답하는 능력으로서의 책임이다. 사후 법인은 전자를 면제받고 후자를 수행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말을 권리의 근거로 사용해 왔다.

살아 있음은 법적 가치를 가진다. 권리의 주체가 현재의 요구에 응답하여 자신의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가는, 그 주체가 살아 있는 자와 동등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지를 가르는 조건이다. 의지 수정 권한이 구조적으로 박탈된 법인격은, 살아 있는 자와의 직접 충돌에서, 살아 있는 자와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될 수 없다.

따라서 입법에 제안한다. 사후 법인의 결정이 살아 있는 자의 거주, 생계,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경우, 그 결정은 생자 응답 심사를 거쳐야 한다. 죽은 의지가 산 자의 현재를 직접 구속하기 전에, 산 자가 응답할 자리를 법은 마련해야 한다.

이 의견은 본 사건의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 신청인에게는 늦었다.

도현은 그 마지막 줄을 오래 보았다. 신청인에게는 늦었다. 그를 위한 문장은 아니었다. 그는 그 문장이 세워질 디딤돌이었고, 디딤돌은 다리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지안이 문자를 보냈다. 읽었어. 네가 물어 줬구나. 잠시 뒤 또 한 줄. 그래도 집은 비워야겠지. 도현은 한참 화면을 보다가 답했다. 비울게. 근데 네가 못 한 걸 했다며. 그럼 너도 한 번은 물어봐. 답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읽음 표시는 오래 켜져 있었다.

이사하던 날, 그는 마지막으로 초석 앞에 섰다. 이 땅은 산 자의 것이다. 단지는 곧 헐리고, 죽은 자를 위한 봉안주거가 들어설 것이다. 산 사람들이 그것을 지을 것이다. 팔십칠 년 전 죽은 사람이 설계한 미래를,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이 시멘트를 부어 올릴 것이다. 그 건물 어딘가에 산 자의 땅이라는 글귀는 남지 않을 것이다.

*

퇴거 후에도 그는 영속관으로 출근했다.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잘 곳을 잃은 사람일수록 일을 잃으면 안 되었다.

새벽, 3관의 복도는 십팔 점 오 도였다. 그는 랙을 따라 걸으며 냉각수 압력을 확인했다. 명패들이 가지런했다. 정해운, 한경실, 그리고 한 줄. 윤상규, SG-1149.

그를 집에서 내쫓은 자가 거기 있었다. 차가운 랙 하나로. 도현이 매일 온도를 맞춰 주는 이름으로. 그는 장갑 낀 손을 그 랙의 측면에 댔다. 차가웠다. 정상이었다. 그 안에서 윤상규의 의지가,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의지가, 정확한 온도 속에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지 않았다. 다만 멈추지 않았다.

도현은 잠깐 그 앞에 서서 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따뜻했다. 그 온기는 잠시 랙의 차가운 표면에 닿았다가, 천장의 흡기구를 향해 흩어졌다. 그는 입김이 사라지는 자리를 눈으로 좇았다. 흡기구가 그것을 거두어 가는 동안에도, 다음 숨이 다시 올라왔다. 또 따뜻했다. 또 흩어졌다. 또 올라왔다.

복도의 온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십팔 점 오 도. 기계들이 낮게 울었다. 랙 안의 이름들은 그대로였고, 도현의 숨은 올라왔다가 지워지고 또 올라왔다. 그는 마지막 랙 앞에서 한 번 더 숨을 내쉬고, 그것이 차가운 표면에 닿아 잠시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작성일: 2026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