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대리권¶
1. 감각은 이전될 수 있다¶
서윤이 처음으로 아이의 고통을 받은 것은 스물아홉 살 겨울이었다.
감각분담원 중앙병동 7층에는 어린 환자들이 있었다. 병실 문마다 투명한 등급표가 붙어 있었고, 등급표 아래에는 이전 가능한 통증의 종류가 작은 글씨로 정리되어 있었다. 급성 통증, 만성 통증, 수술 후 통증, 공황 발작, 반복 악몽, 예기 불안, 상실 반응. 의학은 오래전부터 병명을 붙였지만, 감각분담제가 생긴 뒤에는 병명보다 이전 가능 여부가 먼저 적혔다. 어떤 고통은 아직 신경망 지도가 불완전해 옮길 수 없었고, 어떤 고통은 옮길 수 있어도 법원이 허가하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은 민하였다.
일곱 살이었다. 뼈가 자라는 병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병명은 길었고, 부모는 그 병명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병명은 몰라도 아이가 언제 이를 악무는지는 모두 알았다. 밤마다 아이의 다리는 안쪽에서 유리가 자라는 것처럼 굳었고, 울음은 목구멍에서 끊겼다. 너무 자주 울면 호흡이 무너졌기 때문에 아이는 울음을 배웠다. 소리를 내지 않는 울음. 침대 시트를 손가락으로 말아 쥐며 몸만 떨리는 울음.
서윤은 병실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었다. 감각 이전에는 위생보다 의례의 성격이 더 컸다. 그는 손목 안쪽에 연결 패드를 붙이고, 목 뒤의 수용기를 열었다. 기계는 낮게 울었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절차를 설명했다. 부모는 이미 여러 번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보다 중요한 것은 서윤이 그 자리에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국가 인증 최고 등급 감각 대리인이었다. 중앙 화면에는 그의 시민 등급이 푸른색으로 떠 있었다.
S-1. 공공 감각 수용 우수자. 누적 이전 시간 12,802시간. 사회기여지수 99.81.
부모는 그 숫자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서윤을 보지 않았다. 아이는 천장의 환기구를 보고 있었다. 환기구 안쪽은 어두웠고,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서윤은 침대 옆에 앉았다. 아이의 손이 작았다. 손등에는 얇은 관이 꽂혀 있었고, 손가락 끝은 차가웠다.
“조금만 빌릴게.”
서윤은 그렇게 말했다. 감각분담원 교육 과정에서 배운 문장이었다. 고통을 가져간다고 말하지 말 것. 대신한다고 말하지 말 것. 빌린다고 말할 것. 빌린 것은 돌려줄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돌려주지는 않지만, 문장은 보호자에게 견딜 만한 질서를 제공한다.
아이가 처음으로 그를 보았다.
“아저씨는 아파도 돼요?”
그 질문은 교육 과정에 없었다. 서윤은 잠시 멈추었다.
“나는 아플 수 있게 훈련받은 사람이야.”
아이는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의사는 전송률을 낮게 시작했다. 기계의 빛이 흰색에서 연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아이의 다리에서 올라오던 통증이 서윤의 신경계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무게였다. 허벅지 안쪽에 누군가 뜨거운 쇠막대를 천천히 밀어 넣는 감각. 곧이어 관절이 안에서 벌어지는 감각. 뼈가 몸의 형태를 잊고 다른 방향으로 자라려는 감각. 서윤은 숨을 들이쉬었다. 숨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배운 대로 손바닥을 펴고 손가락 끝을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고통을 맞이할 때 손을 쥐면 고통이 의지와 붙고, 손을 펴면 고통이 신체의 표면으로 흐른다고 교육관은 말했었다. 실제로 그런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모든 감각 대리인은 손을 폈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 순간 병실 안의 모든 사람이 서윤을 보았다. 부모, 의사, 간호사, 기록관, 보호자 상담사. 고통은 아이의 몸에서 빠져나와 서윤의 몸에 들어갔고, 아이는 처음으로 잠들 듯 눈꺼풀을 내렸다. 부모는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가 서윤의 손등에 이마를 대려고 했다. 간호사가 조용히 막았다. 감각 대리인은 이전 중에 접촉을 늘리면 안 된다.
서윤은 부모가 고맙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은 멀리서 왔다. 그의 안쪽에서는 아이의 뼈가 계속 자라고 있었다. 자라서는 안 되는 속도로, 견뎌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세계의 모든 선을 찢으며 자라고 있었다.
그날 밤, 서윤은 기숙사 방에 돌아와 오래 울었다.
그 울음에는 아이의 것이 조금 남아 있었고, 그의 것이 조금 섞여 있었다. 둘을 구분하는 법은 없었다. 그는 다음 날 시민 등급이 S-2에서 S-1로 올라갔다는 알림을 받았다. 화면에는 축하 문구가 떴다.
당신은 오늘 더 많은 시민의 고통을 덜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윤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그 문장 안에서 그는 사람보다 장치에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그 점이 그를 안심시켰다.
2. 고통을 맡기는 사회¶
감각분담제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문명의 가장 늦은 발명이라고 불렀다.
불은 추위를 덜어 주었고, 약은 질병을 덜어 주었으며, 법은 복수를 덜어 주었다. 감각 이전은 남은 마지막 잔혹함을 덜어 주는 기술처럼 보였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보며 미안해하는 데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미안해할 필요가 줄었다. 고통은 감탄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분배 가능한 부담이 되었다.
국가는 이 기술을 빠르게 제도화했다. 의료기관은 급성 통증과 말기 통증을 먼저 이전했다. 법원은 범죄 피해자의 외상 후 반응 일부를 공공 대리인에게 맡겼다. 복지기관은 장기 돌봄 가족의 소진과 애도 반응을 일정 시간 이전해 주었다. 산업재해 현장에는 이동형 감각차량이 파견되었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통증을 대리인에게 넘겼고, 기업은 산재 보험료 일부를 감각 기금으로 냈다.
도시는 차분해졌다.
응급실의 비명은 줄었다. 장례식장의 통곡도 줄었다. 재판정의 피해자 진술은 더 또렷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고통을 넘긴 사람은 울지 않고 진술했고, 판사는 그 침착함을 신뢰했다. 노동재해 피해자는 악몽을 줄인 채 재활 훈련에 들어갔고, 회사는 그 회복을 생산성 회복으로 기록했다. 국가 홍보 영상은 감각분담제를 연대의 완성이라고 불렀다.
영상 속에서 대리인은 늘 웃었다.
서윤의 얼굴도 여러 번 쓰였다. 그는 병상 옆에 앉아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재난 현장에서 담요를 두른 사람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법원 대기실에서 피해자의 진전증을 대신 받아 손을 떨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문장이 붙었다.
우리는 이제 함께 아픕니다.
서윤은 그 문장을 싫어하지 않았다. 처음 몇 해 동안 그는 그 문장을 믿었다. 타인의 통증이 몸으로 들어올 때마다 그는 세계가 조금 덜 잔인해졌다고 느꼈다. 아이가 잠들고, 유족이 숨을 쉬고, 피해자가 증언을 끝내고, 노동자가 재활실에서 첫 발을 딛는 장면은 모두 분명한 선처럼 보였다. 그는 고통을 받았고, 누군가는 하루를 통과했다. 단순한 교환이었다. 단순한 것들은 대개 사람을 살린다.
서윤의 몸은 점점 변했다.
감각 대리인의 신경계는 일반인과 다르게 훈련되었다. 통증을 자기 신체 손상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감각과 해석 사이의 통로를 느슨하게 만드는 훈련이었다. 그는 불에 덴 통증을 받아도 실제 피부가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했다. 아이의 뼈 통증을 받아도 자기 뼈가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했다. 유족의 애도 반응을 받아도 자기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야 했다.
믿음은 지식으로 시작했지만, 반복되면 습관이 되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 고통과 남의 고통을 구분하는 데 능숙해졌다. 자기 어깨가 아픈 날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났지만, 말기 환자의 전신 통증은 차분하게 견뎠다. 자기 슬픔은 방향을 알 수 없었고, 남의 슬픔은 계약서와 함께 왔다. 타인의 고통에는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이 있었고, 보상액과 시민 점수가 있었다. 그 점이 견딜 수 있게 했다.
문제는 이전이 끝난 뒤의 시간이었다.
고통이 빠져나가면 방 안이 너무 조용했다. 서윤은 자기 몸이 빈 봉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통증이 들어와 있을 때 그는 쓸모 있었다. 누군가의 공황이 그의 호흡을 무너뜨릴 때 그는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애도가 그의 흉곽을 눌러 잠을 못 자게 할 때 그는 타인의 삶에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전 시간이 끝나고 아무 감각도 맡지 않는 밤이 오면, 그는 자기 의지가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기숙사 창밖에는 감각분담원 본관의 네온 문구가 보였다.
고통은 나눌 수 있습니다.
서윤은 그 문장을 보며 자주 손목 패드를 만졌다. 아무 이전도 연결되지 않은 패드는 차가웠다. 그는 그 차가움이 자기 피부의 온도인지, 장치의 온도인지 자주 헷갈렸다.
3. 원통권 보존회¶
원통권 보존회를 처음 만난 것은 법원 앞이었다.
그날은 서해 화학공장 폭발 사고의 첫 공판일이었다. 사망자 열둘, 중상자 마흔여섯, 장기 외상 반응 추정자 백이십 명. 회사는 공식 사과를 했고, 감각분담기금에 대규모 출연을 약속했다. 피해자 가족 상당수는 애도 반응 이전을 신청했다. 법원은 진술권 보장을 위해 주요 유족들에게 재판 당일 전후 72시간의 감각 완화 절차를 허가했다.
서윤은 그중 세 사람의 애도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법원 계단 아래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검은 천을 펼쳐 들고 있었다. 천에는 흰 글씨가 적혀 있었다.
고통을 가져가지 말라. 책임이 길을 잃는다.
경찰은 그들을 계단 바깥으로 밀어냈다. 기자들은 그들의 얼굴을 찍었다. 시민들은 지나가며 욕을 했다. 누군가는 아이를 안은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 자식이 아파도 그렇게 말할 거야?”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은 천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천의 가장자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서윤은 이동 통로를 지나가다 그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낡고 지쳐 있었지만, 확신에 찬 얼굴은 아니었다. 확신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었다. 무언가를 끝까지 들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법원 안에서 그는 유족 대기실로 들어갔다.
첫 번째 유족은 형을 잃은 남자였다. 남자는 이미 절차에 동의해 놓고도 이전 직전 손을 거두었다. 상담사가 차분히 설명했다. 오늘 진술이 중요하다고, 감각을 일부 완화하면 진술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회복을 돕는 절차라고.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내가 덜 울면 저 사람들이 덜 죽인 것처럼 보일까 봐요.”
상담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서윤도 멈추었다.
“고통을 줄인다고 사건이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상담사는 배운 문장으로 답했다.
남자는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공기가 새는 소리였다.
“법정에서 내 몸이 증거였던 적이 있잖아요. 내가 떨고, 말을 못 잇고, 숨을 못 쉬면 사람들이 그때야 알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데 오늘 내가 멀쩡히 말하면, 회사 변호사는 내가 회복했다고 말할 겁니다.”
상담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윤은 남자의 손등을 보았다. 손등 위로 작은 경련이 지나갔다. 남자는 자신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마치 누가 빼앗아 가려는 물건처럼.
그날 남자는 이전을 거부했다.
법정에서 그는 세 번 말을 멈추었다. 두 번은 물을 마셨고, 한 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판사는 휴정을 선언하려 했다. 남자는 손을 들었다. 계속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의 증언은 매끄럽지 않았다. 문장은 자주 끊겼고, 이름은 두 번 틀렸다. 회사 변호사는 그 불안정성을 지적했다. 기억이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그때 방청석 뒤쪽에서 누군가 울었다.
울음은 빠르게 번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감각분담제 이후 타인의 울음을 오래 견디는 법을 잃어버렸다. 울음이 나오면 누군가는 담당자를 찾았다. 고통이 커지기 전에 조정해야 한다고 배웠다. 법정 안에서는 아무도 즉시 조정하지 못했다. 남자의 떨림은 방 안에 남았다. 그 떨림은 어색했고, 거칠었고, 시간을 망가뜨렸다. 모두가 그 망가진 시간 안에 앉아 있어야 했다.
서윤은 그날 처음으로 원통권이라는 말을 들었다.
원통권. 고통을 제거당하지 않을 권리. 부당한 훼손이 남긴 감각을 사회 앞에서 보존할 권리. 회복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진술 가능한 몸으로 정리되기 전에, 망가진 몸 그대로 책임의 주소를 가리킬 권리.
그 말은 이상했다. 권리라는 말과 고통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이 어색했다. 서윤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통은 줄여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사람은 아프지 않아야 했다. 아이는 잠들어야 했고, 유족은 숨을 쉬어야 했고, 피해자는 무너지지 않고 살아야 했다. 그 모든 문장은 여전히 옳았다.
그런데 남자의 떨림이 법정에 남은 뒤, 회사 대표의 고개가 처음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서윤은 그것을 보았다.
4. 아이를 아프게 둘 권리¶
민하가 다시 병동에 왔을 때, 서윤은 이미 원통권 보존회의 문서를 읽은 뒤였다.
문서는 투박했다. 법학자들이 쓴 글처럼 정돈되어 있지 않았고, 활동가들이 쓴 글처럼 구호가 선명하지도 않았다. 많은 문장은 분노로 시작해 피로로 끝났다. 그래도 핵심은 분명했다. 감각분담제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고통이 가리키던 원인을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통증이 사라진 병동은 좋은 병동이지만, 직업병이 사라진 통계표는 좋은 사회의 증거가 아닐 수 있다. 애도가 조용한 장례식은 존엄할 수 있지만, 조용한 애도를 근거로 사고의 책임을 작게 산정하는 제도는 폭력이다.
서윤은 문서를 끝까지 읽고도 판단하지 못했다.
그가 판단하기 전, 병동에서 연락이 왔다. 민하의 통증이 악화되었다. 새 약은 듣지 않았고, 이전 가능 시간도 법정 상한에 가까워졌다. 보호자는 추가 이전을 신청했다. 의료윤리위원회가 긴급 심사를 열었다. 아이의 고통을 줄이는 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의.
병실 앞에 원통권 보존회 사람들이 와 있었다. 그중 법원 앞에서 보았던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나래라고 했다. 그녀는 민하의 이모였다. 아이의 부모와 다르게 이전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부모의 동의가 우선했지만, 나래는 가족 의견서와 공개 항의문을 제출했다.
서윤은 병실 밖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당신이 서윤 씨죠.”
그녀가 말했다.
“맞습니다.”
“민하 고통을 또 받을 건가요.”
“의료진 판단에 따라 절차가 승인되면요.”
“그 아이가 왜 아픈지는 아세요?”
서윤은 답하지 못했다. 병명은 알았다. 진행률도 알았다. 통증 이전 그래프와 약물 반응 수치도 알았다. 그런데 나래가 묻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래는 병실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아이는 산소줄을 낀 채 자고 있었다.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 통증이 깊은 아이들은 자면서도 얼굴을 찡그린다.
“저 병은 희귀질환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그래서 치료제 연구비가 늘 부족했죠. 제약회사는 수익성이 낮다고 했고, 국가는 감각분담으로 삶의 질을 관리할 수 있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덜 울게 되니까, 연구비 압박도 줄었어요. 부모들은 하루하루 버티느라 항의할 힘이 없어졌고요.”
나래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통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이 병동 앞은 매일 기자들로 가득했을 거예요. 아이들이 밤새 우는 소리를 누군가는 들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 조용해요. 당신 같은 사람들이 너무 잘 견뎌 줘서.”
서윤은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병원 유리는 희미하게 사람을 비췄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나는 아이를 돕는 겁니다.”
“알아요.”
나래가 말했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그 말은 서윤을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았다. 나래는 서윤을 가해자로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선한 장치로 보았다. 세계가 자기 책임을 미룰 수 있게 하는 선한 장치. 그는 그것을 밀어내고 싶었다. 병실 안에서 아이의 얼굴이 다시 찡그려졌고, 모든 생각은 금세 아이의 통증 앞에서 작아졌다.
그날 밤, 나래는 병원 복도 끝 자동판매기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민하의 부모는 지쳐 있었다. 어머니는 상담실에서 울다가 잠들었고, 아버지는 계단참에 앉아 아무것도 보지 않는 얼굴로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나래는 이전 동의 단말기를 들고 있었다. 보호자 추가 동의가 없어도 절차는 진행될 수 있었지만, 가족 전원 동의가 있으면 이전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났다. 단말기 화면에는 초록색 버튼이 떠 있었다.
추가 이전 승인.
나래는 손가락을 올렸다.
아이의 비명은 복도 문을 닫아도 새어 나왔다. 그 소리는 원칙을 쉽게 찢었다. 구호는 멀리 있었고, 고통은 가까웠다. 원통권이라는 말은 아이의 허벅지 안에서 자라는 통증 앞에서 지나치게 깨끗한 단어처럼 느껴졌다. 나래는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갔다.
그때 민하가 낮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모, 내가 아프면 사람들이 알아?”
나래는 단말기를 껐다.
그녀는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누군가 들을까 봐서가 아니었다. 자기가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는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서였다.
다음 날 서윤은 민하의 통증을 받았다.
전송률은 이전보다 높았다. 통증은 그의 다리를 지나 골반과 척추까지 올라왔다. 신경계가 하얗게 타오르는 듯했다. 아이는 잠들었다. 부모는 울었다. 의료진은 안도했다. 나래는 병실 밖에 서 있었다. 그녀는 서윤을 보지 않고 아이만 보았다.
이전이 끝난 뒤 서윤은 회복실에서 구토했다.
몸이 아니라 세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자라는 것 같았다.
5. 공공선의 신체¶
감각분담원은 서윤에게 휴식을 권했다.
권고는 강제에 가까웠다. 누적 이전 시간이 기준치를 넘었고, 최근 회복 속도도 느려졌다. 신경계 손상 검사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감각 경계 흐림 지수가 상승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과 자기 상태를 구분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상담사는 말했다.
“대리인에게 가장 위험한 상태는 고통을 받는 시간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시간입니다.”
서윤은 웃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쉬는 것은 다릅니다.”
상담사는 화면을 넘겼다. 서윤의 생애 그래프가 나왔다. 이전 시간, 시민 점수, 보상액, 수면 질, 개인 활동, 자발적 관계망. 대부분의 그래프는 높거나 안정적이었다. 자발적 관계망만 낮았다. 이전 계약과 무관한 만남, 보상 없는 돌봄, 시민 기여 점수와 연결되지 않은 활동. 그 항목은 거의 비어 있었다.
“서윤 씨는 누군가의 고통을 받을 때 강한 자기 효능감을 느낍니다. 그 자체는 직업적 적합성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그 효능감이 자기 존재감 전체를 대체하면 위험합니다.”
“위험한 건 제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입니다.”
상담사는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면 너무 익숙한 문장이 되기 때문이었다. 많은 대리인이 그렇게 말했다. 대리인의 윤리는 자주 자기 삭제와 닮았다. 누군가가 아프면 나는 필요하다. 누군가의 고통이 크면 내 삶은 증명된다. 그 믿음은 처음에는 헌신이지만, 오래되면 은밀한 의존이 된다.
상담사는 다른 질문을 했다.
“이전이 전면 중단된 하루를 상상해 보세요. 아무도 서윤 씨에게 고통을 맡기지 않는 날입니다. 그날 서윤 씨는 무엇을 합니까?”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밤 그는 감각분담원 본관 옥상으로 올라갔다. 도시의 병원과 법원과 복지센터 위로 파란 표지가 떠 있었다. 감각분담 가능 기관. 24시간 이전 지원. 공공 감각 기금 사용처. 도시의 고통은 그 표지 아래서 흐르고 있었다. 물류처럼, 전기처럼, 데이터처럼. 한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사적인 절규에서 공공 처리 절차로.
서윤은 손목 패드를 풀었다.
패드를 풀면 피부에 네모난 자국이 남았다. 그 자국은 고통의 입구였다. 그는 그 입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아팠다. 아주 작은 통증이었다. 자기 통증이었다. 이상하게 낯설었다.
그때 옥상 문이 열렸다. 나래였다.
“여기 들어오면 안 됩니다.”
서윤이 말했다.
“알아요.”
나래는 난간 가까이 오지 않았다.
“민하가 당신을 찾았어요.”
서윤은 돌아보았다.
“왜요.”
“고맙다고 말하고 싶대요. 그런데 나는 당신을 부르러 온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왔습니까.”
나래는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민하의 글씨가 있었다. 아직 모양이 고르지 않은 글씨였다.
아저씨가 아프면 내 병이 나은 건가요?
서윤은 종이를 오래 보았다.
“아이가 쓴 겁니까.”
“네.”
“누가 시켰습니까.”
“아무도요.”
바람이 옥상 바닥을 지나갔다. 종이 가장자리가 떨렸다.
“민하는 당신이 아파할 때 자기가 나아지는 줄 알았어요. 어른들이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으니까요. 통증이 사라지면 병이 이긴 게 아니라, 잠깐 자리를 옮긴 거라는 걸 아이도 알아야 합니다.”
“그걸 아이가 알아야 합니까.”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서윤은 종이를 접지 못했다. 접으면 문장을 훼손하는 것 같았다.
“고통을 설명한다고 고통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고통을 숨긴다고 책임이 생기지도 않아요.”
나래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나는 당신이 민하를 돕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민하의 고통을 받을 때, 그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 함께 말해 주길 바랍니다. 병원도, 국가도, 우리 가족도 그 말을 당신의 몸 뒤에 숨기지 못하게요.”
서윤은 원통권 보존회가 원하는 것이 단순한 거부가 아님을 조금 이해했다. 그들은 고통을 방치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통을 사라진 것으로 처리하는 질서에 맞서고 있었다. 고통은 줄어야 했다. 동시에 고통이 가리킨 책임은 줄어들면 안 되었다. 이 두 문장은 서로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는 둘 중 하나를 고르려 했다. 감각분담원은 첫 문장을 맡았고, 원통권 보존회는 둘째 문장을 맡았다. 둘 다 혼자서는 불완전했다.
서윤은 민하의 글씨를 다시 보았다.
아저씨가 아프면 내 병이 나은 건가요?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이 대답을 지연시키는 방식일 수 있다고 느꼈다.
6. 이전 거부¶
서해 화학공장 사고 두 번째 공판에서 서윤은 증인으로 불려 나갔다.
원래 그의 역할은 조용해야 했다. 대리인은 누군가의 고통을 맡지만, 그 고통의 주인이 되지는 않는다. 대리인은 법정에서 말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진술을 안정시키는 배경 장치로 머문다. 그러나 원통권 보존회가 자료 공개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사고 이후 6개월 동안 피해자와 유족에게 이전된 통증·애도·외상 반응의 총량, 이전 비용을 부담한 주체, 감각 완화 이후 합의율 변화, 재판 진술 안정성 평가가 쟁점이 되었다.
회사 변호사는 감각분담제가 피해자 지원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기업은 책임 있게 기금에 출연했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완화했다. 변호사는 여러 차례 “인도적 조치”라는 말을 사용했다. 방청석의 몇몇 유족이 몸을 떨었다. 담당자가 다가가려 하자, 그들은 손을 저었다.
서윤은 증인석에 앉았다.
판사가 물었다.
“증인은 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감각 이전 절차에 참여했습니까.”
“네.”
“그 절차는 피해자의 고통을 완화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리인으로서 그 완화가 필요했다고 봅니까.”
서윤은 잠시 숨을 골랐다.
“필요했습니다.”
회사 변호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원고 측 변호사는 고개를 숙였다. 나래는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서윤을 보지 않았다. 서윤은 그 점이 고마웠다. 누군가의 시선이 없는 편이 더 말하기 쉬운 때가 있다.
판사가 다음 질문을 하려 했다. 서윤이 먼저 말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감각 이전은 고통을 줄였습니다. 피해자들은 잠을 잘 수 있었고, 유족들은 장례를 치를 수 있었고, 일부는 진술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효과는 실제입니다. 저는 그 효과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손목의 네모난 자국을 보았다.
“그러나 그 효과가 책임의 크기를 줄이는 근거로 쓰이는 순간, 감각 이전은 지원이 아니라 은폐가 됩니다. 피해자의 통증이 제 몸으로 옮겨졌다고 해서 사고의 원인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유족의 애도가 제 신경계에 들어왔다고 해서 사망의 무게가 낮아진 것도 아닙니다. 이전된 고통은 사라진 고통이 아닙니다. 사회가 보지 않아도 되게 된 고통입니다.”
회사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는 일부를 받아들이고 일부를 흘려보냈다. 서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증인석에서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고통을 견디는 법은 배웠다. 말도 고통과 닮은 부분이 있었다. 들어오면 몸을 통과해야 했다.
“저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고통을 받는 일이 선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믿습니다.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선은 혼자 서면 위험해집니다. 고통을 덜어 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고통을 만든 사람이 덜 보이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대리인의 몸이 공공선을 증명하는 동안, 책임자의 이름은 기록 뒤로 물러납니다.”
방청석 어딘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감각 이전 기록에 원인 귀속서를 함께 남기겠습니다. 어떤 고통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옮겨졌는지만 기록하지 않고, 그 고통이 어떤 질병, 어떤 사고, 어떤 노동 조건, 어떤 행정 결정, 어떤 방치에서 왔는지 함께 기록해야 합니다. 이전은 완화 절차일 수 있지만, 면책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판사는 서윤을 바라보았다.
“증인은 지금 제도 개선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본 사건에 관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서윤은 대답했다.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고통은 이미 제 몸을 통과했습니다. 저는 그 통과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한 증인입니다.”
그날의 진술은 뉴스가 되었다.
정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감각분담원은 서윤의 발언이 기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회사는 피해자 지원을 정치적으로 왜곡하지 말라고 했다. 원통권 보존회는 서윤의 발언을 환영했지만, 일부 회원은 그가 여전히 감각 대리 제도의 얼굴이라는 점을 경계했다. 시민들은 나뉘었다. 어떤 이는 서윤을 배신자라고 했고, 어떤 이는 이제야 제대로 된 대리인이 나타났다고 했다.
서윤은 어느 쪽 말도 오래 붙잡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대기 명령을 받았다. 모든 이전 업무에서 임시 배제되었다. 손목 패드는 회수되었다. 기숙사 방은 조용했다. 그는 오랜만에 아무 고통도 받지 않았다. 몸이 비었다. 그 빈자리에 불안이 들어왔다.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불안이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은 아무것도 대신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신의 손처럼 보였다.
7. 고통의 주소¶
민하의 병동에서 연락이 온 것은 대기 명령 사흘째였다.
공식 호출은 아니었다. 나래가 보낸 개인 연락이었다. 민하가 서윤을 보고 싶어 했다. 절차상 그는 병동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면회는 가능했다. 그는 감각 대리인 자격이 아니라 방문객 자격으로 병원에 갔다.
민하는 조금 말라 있었다. 그래도 눈은 또렷했다. 침대 옆에는 작은 녹음기가 놓여 있었다. 나래가 가져다준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통증이 올 때마다 자기 말로 기록했다. 오늘은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오래 아픈지, 그때 무엇이 생각나는지. 녹음된 목소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나래는 그 기록을 병원 연구비 심사와 국회 청원 자료에 붙일 생각이라고 했다.
서윤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아저씨 이제 안 아파요?”
민하가 물었다.
“지금은 안 아파.”
“내가 아픈 것도 안 가져가요?”
“지금은 못 가져가.”
아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아저씨는 왜 왔어요?”
서윤은 그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 감각을 받지 않는 그는 병실에서 무엇인가. 대리하지 않는 대리인. 쓸모가 멈춘 사람. 그는 대답을 찾다가 아이의 손 옆에 놓인 녹음기를 보았다.
“들으러 왔어.”
민하는 그 대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들으면 아픈 게 줄어요?”
“바로 줄지는 않아.”
“그럼 왜 들어요?”
서윤은 오래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아플 수 있게 훈련받은 사람이야. 그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모자랐다. 고통을 받을 수 있게 훈련받은 사람은 많아졌지만, 고통을 끝까지 들을 수 있게 훈련받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픈 게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으려고.”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다리에서 왔는데요.”
“맞아. 네 다리에서 왔어. 그리고 병에서 왔어. 그리고 그 병을 오래 연구하지 않은 어른들의 결정에서도 왔어. 돈이 안 된다고 미룬 사람들한테서도 왔고, 네가 조용히 잘 견딘다고 생각한 사람들한테서도 왔어.”
민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네가 아플 때, 우리는 그 고통을 줄여야 해. 그런데 줄인 다음에도 물어야 해. 왜 네가 아파야 했는지. 왜 이 병은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했는지. 왜 네 통증이 누군가의 예산표에서는 작은 숫자가 됐는지.”
민하는 녹음기를 만졌다.
“그럼 녹음하면 돼요?”
“녹음도 하나의 방법이야.”
“아저씨가 가져가는 것보다 나아요?”
서윤은 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어떤 날은 내가 가져가는 게 나아. 네가 잠들어야 하는 날이 있으니까. 어떤 날은 네가 말하는 게 나아.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날이 있으니까.”
민하는 그 말을 마음속 어딘가에 넣어 두는 얼굴을 했다.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말을 버리지 않고 오래 들고 있는 때가 있다. 나중에 자기 삶이 그 말을 설명해 주리라 믿는 것처럼.
그날 통증은 오후 네 시에 왔다. 서윤은 이전할 수 없었다. 민하는 이를 악물었다. 나래가 손을 잡았다. 간호사가 약을 조정했다. 서윤은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대신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게 흘렀다. 그는 몇 번이고 손목을 찾았다. 패드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호흡을 세고, 물수건을 바꾸고, 아이가 녹음기에 말할 때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민하는 울다가 말했다.
“오늘은 발목에서 시작해서 무릎으로 올라왔어요. 안쪽에서 돌이 밀고 나오는 것 같아요. 아저씨가 안 가져가니까 너무 싫어요. 그런데 엄마한테 말할 수 있어요. 엄마, 나 지금 너무 아파.”
어머니는 침대 옆에서 울었다. 아버지는 벽을 보고 있었다. 나래는 녹음기의 빨간 불빛을 확인했다.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방에는 고통이 있었다.
그 고통은 잔혹했고, 줄어야 했고, 누구도 아름답게 만들 수 없었다. 동시에 그 고통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병원 연구비 심사표, 제약회사의 수익성 계산, 국가 희귀질환 예산, 부모의 소진, 대리인의 신체, 시민들의 안도, 조용한 병동. 아이의 통증은 단지 신경의 사건이 아니었다. 세계의 여러 결정이 한 아이의 다리 안에서 모인 것이었다.
서윤은 그날 밤 감각분담원에 복귀 신청서를 냈다.
복귀 조건은 짧았다. 모든 이전 기록에 고통의 원인을 함께 남길 것. 의료적 원인만이 아니라 제도적·사회적 원인까지 별도 항목으로 기록할 것. 이전 당사자에게는 고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했다는 설명을 의무화할 것. 법원과 기업과 복지기관은 감각 완화 결과를 책임 경감 자료로 제출할 수 없도록 할 것. 피해자가 원하면 이전 전후의 고통 기록을 공적 증언 자료로 보존할 것.
기관은 거부했다.
그다음에는 침묵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중앙병동 한 층에서 작은 시범 절차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길었다. 감각 이전 원인 기록 및 증언 보존 절차. 언론은 그것을 짧게 불렀다.
고통의 주소제.
제도라고 부르기에는 작았고,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불안했다. 담당자는 둘뿐이었고, 예산은 임시 항목이었다. 병원 행정실은 기록 양식이 너무 길다고 불평했고, 법무팀은 책임 귀속 문구를 흐리게 고치려 했다. 몇몇 보호자는 아이의 병명을 사회 문제로 끌고 가지 말아 달라고 했다. 몇몇 대리인은 자기 몸을 정치적 기록지로 만들지 말라고 항의했다.
첫날, 기록실 프린터는 세 번 멈췄다.
서윤은 멈춘 종이를 빼내며 웃었다. 이상하게도 그 고장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종이는 걸렸고,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문구는 지워졌고, 다시 적혔다. 책임은 네온 문구처럼 한 번에 켜지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난 기계 앞에서 누군가 같은 항목을 다시 입력할 때 조금씩 남았다.
8. 대리인의 마지막 일¶
서윤의 복귀 첫 업무는 민하가 아니었다.
한 택배 노동자의 허리 통증이었다. 그는 오래된 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척추를 다쳤고, 회사는 감각분담 기금을 통해 통증 이전을 지원했다. 예전 절차라면 서윤은 통증을 받고, 노동자는 재활에 들어가고, 회사는 지원 이행 확인서를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절차가 달랐다.
서윤은 통증 이전 전에 노동자에게 설명했다.
“이전되는 통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 시간 제 신경계로 이동합니다. 이 절차는 회복을 돕기 위한 것이며, 사고와 노동 조건에 대한 책임을 줄이지 않습니다. 원하시면 통증 기록과 작업 환경 진술을 함께 보존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그를 빤히 보았다.
“그런 말을 왜 이제 해요.”
서윤은 답했다.
“늦게 배웠습니다.”
노동자는 웃지 않았다. 그는 통증 기록 보존에 동의했다. 이전이 시작되자 서윤의 허리가 불타는 듯했다. 무거운 상자를 수천 번 들고 내려놓은 시간, 쉬지 못한 근육, 기계가 사람의 속도를 앞질렀던 밤, 관리자가 통증을 호소하는 몸을 느린 몸으로 분류했던 기록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통증은 여전히 통증이었다. 이전된다고 해서 고결해지지 않았다. 서윤은 이를 악물었다.
절차가 끝나자 노동자는 처음으로 허리를 펴고 앉았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그 말은 진실이었다.
잠시 뒤 노동자는 녹음기를 보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건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 말도 진실이었다.
서윤은 두 문장이 함께 놓일 수 있음을 보았다. 누군가 대신 아파도 되는 날이 있다. 그 대신이 누군가의 침묵을 사는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되는 날이 더 많다.
그날 밤 서윤은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손목에는 다시 패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예전처럼 그 자국이 그를 전부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의 고통을 받을 때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바람은 아직 약했다. 약한 바람은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책상 위에 민하의 문장을 붙여 두었다.
아저씨가 아프면 내 병이 나은 건가요?
그 아래에 자신이 답을 적었다.
병은 낫지 않았다. 고통은 잠시 옮겨졌다. 이제 우리는 그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 함께 말해야 한다.
창밖에는 감각분담원 본관의 네온이 켜져 있었다.
고통은 나눌 수 있습니다.
며칠 뒤 그 아래에 작은 문장이 하나 더 붙었다.
그리고 책임은 남겨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두 문장을 사진으로 찍었다. 어떤 이는 위선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진전이라고 했다. 서윤은 둘 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제도는 언제나 선한 문장을 먼저 붙이고, 책임은 그 문장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남는다.
그는 다음 호출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고통이 올 것이다. 아이의 통증일 수도 있고, 유족의 애도일 수도 있고, 노동자의 부서진 허리일 수도 있다. 그는 그 고통을 받을 것이다. 받지 않는 것이 잔혹한 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기록할 것이다.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고통은 몸을 지나간다.
책임은 그 몸을 지나간 뒤에도 남아야 한다.
이어 읽기¶
- 깨끗한 몸 — 도덕이 신체에 표시되는 세계를 통해 선의 외부 인증과 실제 책임 사이의 균열을 이어서 읽을 수 있다.
- 미래 동의와 현재의 죄 — 결정과 책임이 다른 시간의 주체에게 이전될 때 생기는 면책 구조를 함께 비교할 수 있다.
- 증언된 얼굴 — 한 사람의 진실이 타인의 증언과 제도적 인정에 의존하는 조건을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 치료주의와 구조적 책임의 은폐 — 고통을 완화하는 장치가 구조적 책임을 개인의 관리 문제로 번역하는 과정을 논증적으로 확장한다.
- 고통 없는 세계에서 가치는 누가 발생시키는가 — 고통 제거가 항상 해방인지, 가치와 책임의 조건까지 함께 지우는지 묻는 축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