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1시간¶
알람이 울렸다. 늘 듣던 소리였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끌어왔다. 화면에 7시 02분. 손가락이 숫자 위에서 멈췄다. 알람은 6시에 맞춰져 있었고, 그 알람은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6시의 빛이었다. 아직 푸른 기가 남아 거리에 그림자가 길게 눕는 시간의 빛. 그러나 휴대폰은 7시를 가리켰다.
머리맡의 손목시계를 집었다. 7시 02분. 일어나 벽시계를 보았다. 7시 02분. 책상의 노트북을 열었다. 우측 상단에도 7시 02분.
모든 시계가 같은 시각에서 만났다. 같은 거짓말 위에서.
휴대폰이 손안에서 진동했다. 재난문자였다. 그 아래로 부재중 알림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 회사, 모르는 번호 둘. 나는 알림을 밀어내고 뉴스를 열었다.
화면 맨 위에 같은 문장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다.
전 세계 동시 의식 소실, 원인 불명.
영상을 눌렀다. 앵커의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했다. 그는 준비된 문장을 읽으면서도 그 문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국 시각으로 어젯밤 12시부터 새벽 1시 사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시차와 상관없이, 깨어 있던 사람도 자고 있던 사람도 한 시간을 잃었다고 했다.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앵커는 끝에 가서 같은 말을 두 번 했다. 침착하시기 바랍니다. 침착하시기 바랍니다.
화면을 껐다. 방은 조용했다. 시계만 일제히, 한 시간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수를 하려고 일어섰다. 잠옷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묵직한 것이 허벅지를 눌렀다. 어젯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을 넣었다. 차가운 금속이 잡혔다.
반지였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았다. 두꺼운 은빛 반지였다.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반지를 끼지 않고, 가져본 적도 없다. 음각으로 파인 글자들의 골 사이에 검붉은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피였다. 오래되어 색이 가라앉은 피였다.
창가로 가져가 골을 들여다보았다. 마른 피 사이로 글자가 드러났다.
서하. 다시 잊어도, 이것만은 돌려줘.
서하. 모르는 이름이었다.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발음해 보아도 입안에서 아무것도 깨어나지 않았다.
반지를 내려놓고 두 손을 펼쳤다. 손바닥에도 손등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오른손 검지의 손톱 밑, 살과 손톱이 만나는 가는 선에 검붉은 것이 끼어 있었다. 비누로 씻었다. 한 번 더 씻었다. 선은 옅어졌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누구의 피인지 알 수 없었다. 내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소매를 걷다가 왼팔 안쪽에서 가느다란 긁힌 자국을 보았다. 이미 딱지가 앉은, 손톱 길이만 한 상처였다. 언제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입은 것인지, 누군가에게 입힌 흔적인지도.
손톱 밑을 마저 닦아내려고 더운물을 세게 틀었다. 세면대에서 김이 올라와 거울이 차츰 뿌예졌다.
뿌연 면 위로, 아래쪽에, 손가락으로 그은 자국이 천천히 떠올랐다. 누군가 김 서린 거울에 써두었다가 말라붙은 글자가, 새 김을 만나 잠시 되살아난 것이었다. 획은 흐릿했다. 내 글씨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잊지 마.
그 아래로 한 글자가 더 시작되다 만 자국이 있었다. 무엇을 쓰려 했는지는 김이 걷히기 전에 풀려버렸다. 위에서부터 거울이 맑아졌고, 글자는 물방울이 되어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닦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거울 속 얼굴을 보았다. 어젯밤과 같은 얼굴이었다. 같은 얼굴이 나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그 얼굴이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엌으로 가 싱크대 옆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반지를 떨어뜨렸다. 뚜껑이 닫혔다. 손을 씻고 물을 한 잔 마셨다. 컵을 내려놓다가 벽시계를 보았다.
반지를 버릴 때 7시 02분이었다. 지금은 7시 06분이었다. 물을 한 잔 마시는 동안 4분이 지나 있었다. 그중 두세 분은 어디로 갔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손목시계도 휴대폰도 같은 자리에 와 있었고, 화면 위로 속보 한 줄이 지나갔다.
추가 의식 소실 보고, 일부 지역 수 초간.
수 초였다. 거리 어딘가에서는 수 초였고, 내 부엌에서는 몇 분이었다. 나는 그 차이를 오래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들여다보면 인정하게 될 것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들여다보는 사이, 숫자가 다시 움직였다. 7시 06분이 7시 09분이 되었다.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3분이 더 비었다. 쓰레기통 속에서 반지가 누워 있는 동안, 세상은 조금씩 시간을 흘리고 있었다.
쓰레기통으로 돌아가 뚜껑을 열고 반지를 다시 꺼냈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사라진 몇 분보다 더 무서웠으니까. 반지를 손바닥에 쥐자 숫자가 제자리에 멈췄다. 더는 새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시도했다.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 끝, 도로변 빗물받이 쇠창살 앞에 섰다. 반지를 창살 위에 올렸다. 손가락을 펴기만 하면 떨어질 자리였다.
손끝에서 힘을 빼는 순간, 발밑이 기울었다.
거리의 빛이 한 번 꺼졌다 켜졌다. 멀리서 자동차 경보음이 한꺼번에 울리기 시작했고, 길 건너 약국의 디지털 간판이 숫자를 잃고 점멸했다. 어느 집 창문 안에서 텔레비전이 검게 꺼졌다 다시 켜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부엌에서 샌 것이 몇 분이었다면, 지금 등 뒤에서 열리는 것은 몇 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한 시간이 천천히 입을 벌리는 느낌이었다.
반지를 다시 움켜쥐었다.
모든 것이 멈췄다. 경보음이 그쳤다. 약국 간판이 숫자를 되찾았다. 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놓여 있었다.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그 창살 앞에 서지 못했다.
책상 위에 반지를 올려놓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한쪽 면이 다른 쪽보다 아주 조금 두꺼웠다. 빛에 비추자 머리카락 한 올 굵기의 이음새가 보였다. 손톱을 밀어 넣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랍에서 가장 가는 일자 드라이버를 꺼내 이음새에 대고 천천히 힘을 주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반지 안쪽 면이 손톱만큼 열렸다. 그 틈에 검은 사각형이 박혀 있었다. 손톱보다 작은, 매끄러운 저장칩이었다.
칩을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너무 작아서 숨을 세게 쉬면 날아갈 것 같았다.
서랍 안쪽에 오래된 카드 리더기가 있었다. 칩을 끼워 노트북에 연결했다. 화면 구석에 새 장치가 떴다. 폴더도, 다른 무엇도 없었다. 파일 하나뿐이었다.
DO_NOT_REMEMBER.mp4
이름을 한참 보았다. 기억하지 마. 명령형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한 명령인지 알 수 없었다.
커서를 올리고 두 번 눌렀다.
검은 화면이 떴다. 영상은 시작되지 않았다. 재생 막대만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였다.
조금 쉬었으나 분명히 내 목소리였다. 내가 한 번도 녹음한 기억이 없는 목소리.
"네가 이걸 보고 있다면, 우리는 실패한 거다."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이 길었다. 그 사이로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숨소리도 내 것이었다.
"반지를 돌려주지 마. 그 사람이 다시 기억하면, 이번에는 전부가 깨어난다."
거기서 소리가 끊겼다. 검은 화면이 그대로 남았다. 재생 막대가 끝에 닿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듣지 않았다. 한 번으로 충분했다.
우리. 그 단어를 입속에서 굴려 보았다. 우리가 누구인지 몰랐다. 다시. 이번에는. 그 말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전에도 이 아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전에도 한 시간을 잃었고, 잊기 전에 나에게 말을 남겼다. 반지는 그 모든 잊음을 건너 살아남은 단 하나였다. 그래서 골에 새겨진 문장은 이것만은 돌려달라고 했다. 다른 모든 것은 잊혀도 좋다는 듯이.
반지에는 돌려주라고 새겨져 있었다. 칩에는 돌려주지 말라고 녹음되어 있었다. 같은 반지가 정반대의 두 말을 품고 있었다. 하나는 바깥에, 하나는 안쪽에. 어느 쪽이 먼저 쓰인 것인지, 어느 쪽이 나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침에 거울에서도 무엇인가 읽은 것 같았다. 잊지 말라는 말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글자가 정말로 거기 있었는지, 김이 만든 착시였는지조차 이제 확신할 수 없었다. 잊지 마. 기억하지 마. 돌려줘. 돌려주지 마. 누군가는 붙들라 했고 누군가는 놓으라 했다. 그 누군가가 전부 나일 수도 있었다.
손에 든 반지가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었다. 그것을 쥔 손이 어젯밤 무엇을 쥐었는지 나는 몰랐다. 그 손은 지금 내 명령을 따르고 있었고, 한 시간 전에는 다른 누구의 명령을 따랐을지도 몰랐다. 같은 손이었다. 떼어낼 수 없는, 내 어깨에 붙은 손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아침에 보았던 모르는 번호 중 하나였다.
화면 위에서 숫자가 떨었다. 받으면 저쪽에서 어떤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이고, 그 목소리가 서하일 수도 있었다.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로 갔다가, 멈췄다.
벨이 일곱 번 울리고 끊겼다.
벨이 끊기고 곧바로 문자가 왔다.
반지 아직 가지고 있죠.
나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발신자는 번호뿐이었다. 그런데 문장 끝의 마침표가 익숙했다. 내가 늘 찍는 방식의 마침표였다. 묻는 말이면서도 끝을 물음표로 열어두지 않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나뿐이었다.
답하지 않았다.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나는 그 한 줄을 들여다보았다. 발신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있는지, 이미 한 번 이 아침을 지나온 자리에 있는지, 마침표 하나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자리를 같은 곳에 열어둔 채 깜빡였다.
나는 칩을 반지 안에 다시 끼우고, 이음새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딸깍, 하고 반지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바깥에 새겨진 문장도, 안에 숨겨진 목소리도, 이제 같은 은빛 안에 함께 잠겼다.
반지를 오른쪽 주머니에, 아침에 그것이 들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넣었다.
신발을 신었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다. 서하를 찾아가는 길인지,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그것을 묻으러 가는 길인지, 그저 한 시간이 다시 와서 이 아침마저 가져가기를 기다리는 길인지, 나조차 알지 못했다.
문을 열었다. 복도 비상구의 시계도, 손목의 시계도, 창밖 도시의 모든 시계도, 여전히 한 시간 앞에서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구도 돌아가 본 적 없는 한 시간의 입구에서. 반지는, 주머니 속에서 너무 오래 쥐고 있던 탓에, 이제 내 체온과 구별되지 않았다.
이어 읽기¶
- 지워진 기억의 영수증 — 삭제된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영수증, 흉터, 사진, 미완의 문장으로 되돌아오는 짝이 되는 소설이다.
- 결과지 — 예측된 행동과 반항까지 기록되는 상황을 통해, 자유의 감각이 무너진 뒤에도 상처와 책임이 어떻게 남는지 보여준다.
- 라플라스의 개인 비서 — 미래 예측을 피하려는 선택까지 예측되는 세계에서, 선택의 소유감과 책임 감각이 어디에 남는지 묻는다.
-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존재인가 — 기억의 지속보다 과거 행위를 현재의 나에게 귀속시키는 책임 기제가 개인 동일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분석한다.
작성일: 2026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