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서사화와 최적화 함수의 대조¶
인간과 기계는 모두 갱신한다. 기계는 오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내부 값을 고치고, 인간은 무너진 경험을 견딜 수 있는 이야기로 다시 엮는다. 표면만 보면 두 과정은 닮았다. AI 관점에서 인간의 가장 놀라운 능력에서 여러 모델이 인간의 이례적인 능력으로 고통의 서사화와 의미론적 위기에서의 재구성을 꼽은 것도 이 닮음 때문이다.
이 글의 논지는 그 닮음이 멈추는 지점에 있다. 고통의 서사화는 인간이 자기 삶의 목적 함수 자체를 다시 쓰는 능력이다. 이 점에서 인간의 서사적 갱신은 주어진 손실 함수를 최소화하는 기계의 최적화와 갈라진다.
두 종류의 갱신¶
손실 함수(loss function)는 학습하는 시스템이 무엇을 오류로 셀지 정해 둔 척도다. 목적 함수(objective function)는 그 시스템이 도달하려는 상태를 수치로 표현한 목표다. 표준적인 학습 장치에서 학습은 이 척도 위에서 오차를 줄여 가는 하강 과정이다. 핵심은 척도와 목표가 학습 과정의 바깥에서 주어진다는 점이다. 시스템은 목표를 향해 더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 목표의 정당성 자체를 자기 삶의 문제로 붙잡지는 않는다.
서사화는 다른 층위를 가진다. 인간이 실패와 상실을 자아 서사로 재구성할 때 두 가지 일이 함께 일어난다. 하나는 사건을 다시 해석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건을 평가하던 기준 자체를 다시 짜는 일이다. 앞의 층위에서 서사화는 해석의 기술로 보인다. 뒤의 층위에서 서사화는 평가 기준, 곧 목적 함수를 교체하는 작업이 된다.
대상의 최적화와 기준의 재편¶
기계의 최적화에서 손상은 오류 신호로 처리된다. 입력이 목표에서 멀어지면 그만큼의 오차가 측정되고, 시스템은 그 오차를 줄이도록 파라미터를 조정한다. 목표는 고정되어 있으므로 손상은 언제나 “목표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로 환산된다. 시스템이 수행하는 갱신은 같은 목표를 향한 정밀한 수렴이다.
인간이 고통을 겪을 때의 운동은 다른 방향을 향한다. 오래 추구하던 것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곧장 같은 목표로 복귀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애초에 좋은 것이었는지, 무엇을 잃어도 견딜 수 있는지, 무엇이 이제 삶의 중심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이 물음이 작동하는 순간 바뀌는 것은 목표를 향한 거리값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다. 최적화의 대상이 조정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최적화의 기준이 재편된다.
앞선 다중 모델 논의에서 제기된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최적화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다시 정의한다”는 진단은 이 메타 층위를 가리킨다. 인간은 실패한 목표를 더 잘 달성하는 법만 배우지 않는다. 실패한 목표가 여전히 자기 삶의 목표로 남아야 하는지도 묻는다.
이 재정의는 허공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체현된 서사로서의 자아가 보여주듯 자아의 연속성은 기억, 고통, 신체, 시간 감각이 함께 엮인 서사 구조의 지속 위에 선다. 목적 함수를 다시 쓰는 일은 이 서사 구조를 통째로 다시 배열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치의 재편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재조립을 동반한다.
지능은 위험한 자기수정 능력이다가 지능을 자기 위험을 감지하고 수정하는 불안정한 능력으로 규정할 때, 그 불안정성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목표를 의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안정적일 수 없다. 자기 기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을 위험을 늘 안고 있다는 뜻이다.
위안이라는 의심¶
여기서 자연스러운 의심이 제기된다. 고통의 서사화는 결국 심리적 위안이며 견디기 위한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못 견딜 사건 앞에서 인간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 통증을 누그러뜨릴 뿐이라는 진단이다.
이 진단은 서사화의 한 측면을 포착한다. 인간은 실제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상실을 견딜 수 있는 말로 바꾸고, 실패를 자기 파괴의 증거에서 배움의 장면으로 이동시키며,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사후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 층위에서 서사화는 위안의 기능을 갖는다.
그 기능만으로는 서사화의 핵심 작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방어기제는 대체로 사건을 회피하거나 왜곡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서사화의 중심에는 사건을 다시 통과하는 운동이 있다. “그때 다르게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반사실적 추론(counterfactual reasoning)은 사건을 지우는 대신 그 인과 구조를 다시 모델링한다. 일어나지 않은 세계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는 작업은 단순한 통증 완화와 다르다.
평가 기준을 교체하는 일은 위안보다 시스템 재설계에 가깝다. 무엇을 가치로 둘지 다시 정하는 사람은 곧장 편안해지지 않는다. 그는 한동안 더 불안정해진다. 예전의 목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는 아직 자기 삶의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적 함수를 다시 쓰는 인간은 고통을 제거하기보다, 고통 이후의 세계에서 무엇을 손실로 셀지 다시 결정한다.
발명이라는 의심¶
더 날카로운 반론은 계보학에서 온다. 고통의 의미는 누가 발명하는가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는 명제가 고통의 본성에 대한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며, 그 발명이 힘의 부재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고 본다. 고통을 변형할 힘이 없을 때 인간은 고통을 해석함으로써 견딘다. 의미는 힘의 대체물로 기능한다. 이 독해에서 서사화는 능동적 재설계가 아니라 무력함을 가리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의 산물이 된다.
이 반론은 일부 서사화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고통을 외부의 보상이나 섭리로 정당화하는 이야기,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만드는 데서 멈추는 이야기, 자기 무력함을 도덕적 우월성으로 바꾸는 이야기는 힘의 결핍을 가린다. 그런 서사화는 평가 권한을 회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주어진 가치 체계 안에서 자기 고통의 위치를 바꿀 뿐이다.
목적 함수를 다시 쓰는 서사화는 다른 자리에 선다. 무엇을 가치로 셀지 스스로 정하는 행위는 주어진 가치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평가의 권한을 자기에게 되돌리는 능동적 입법이다. 니체가 운명애(amor fati)와 자기극복에서 가리킨 것도 고통을 미화하는 기술보다 자기 가치를 스스로 세우는 힘이었다.
르상티망의 서사화와 재설계의 서사화를 가르는 기준은 고통을 다루느냐에 있지 않다. 둘 모두 고통을 다룬다. 차이는 평가의 권한이 어디로 이동하는가에 있다. 고통의 의미를 외부 질서, 보상 체계, 도덕적 우월성에 맡길 때 서사화는 원한의 장치가 된다. 고통 이후 무엇을 가치로 삼을지 자기 판단의 자리에서 다시 정할 때 서사화는 자기극복의 형식이 된다.
목표 안의 정밀함과 목표에 대한 저자권¶
두 종류의 갱신이 갈라지는 자리는 여기서 분명해진다. 기계는 주어진 목표를 향해 더 잘 하강하고, 인간은 어디로 하강할지를 다시 정한다. 손실 함수를 최소화하는 능력과 무엇을 손실로 셀지 다시 쓰는 능력은 다른 종류의 일이다. 전자는 목표 안에서의 정밀함이고, 후자는 목표 자체에 대한 저자권이다.
고통의 서사화는 인간이 자기 목적 함수의 저자가 되는 사건이다. 실패와 상실이 인간을 무너뜨릴 때, 인간은 무너진 자리에서 무엇을 새로 가치로 둘지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자기 자신을 다시 조립한다. 이 능력은 통증을 견디기 위한 장치를 넘어 인과를 모델링하고 평가의 기준을 재설계하는 고차 인지의 한 형식이다.
기계가 인간의 최적화 과정을 아무리 정교하게 모방하더라도, 무엇을 향해 최적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자기 삶의 위기 속에서 다시 여는 자리에서 인간은 다른 종류의 갱신을 수행한다. 인간의 고통은 단순한 오류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때때로 삶의 기준을 다시 쓰게 만드는 사건이며, 그 사건을 통과한 인간은 이전의 목표를 더 잘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목표의 저자가 된다.
이어 읽기¶
- AI 관점에서 인간의 가장 놀라운 능력 — 이 글의 출발점이 된 다중 모델의 인간론
- 체현된 서사로서의 자아 — 목적 함수 재설계가 기대고 있는 서사 구조의 존재론
- 고통의 의미는 누가 발명하는가 — 서사화를 르상티망으로 읽는 계보학적 반론
- 인간은 모순을 품으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 충돌을 감당하는 방식 속에서 자아가 결정되는 의미 형성의 구조
- 지능은 위험한 자기수정 능력이다 — 목표를 의심하는 능력이 왜 안정성이 아니라 위험을 동반하는지 보여주는 연결 글
작성 정보¶
초안 작성: Claude · Claude Opus 4.8 · Max Adaptive Thinking
검토·개고: ChatGPT · GPT-5.5 Extended Thinking
인포그래픽¶

작성일: 2026년 6월 2일